독립·민주·애국의 길을 걷다
천안 - 잊힌 영웅들을 위한 진혼곡
유관순 열사·이동녕 선생 뒤엔
아우내 만세운동 참여한 60명
한국광복군 제3지대 제2구대 대원 등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동지’ 있어
독립기념관 내 각종 조형물·기념공원
자주·독립 역사 만날 수 있는 교육의 장
소망 적힌 낡은 태극기
휘날리는 글씨 속
무명영웅들의 꿈과 희망을 보다
“우리 3월 1일 기념 만세를 부를까요? 우리 만세를 부르다 죽어도 괜찮지요? 의(義)를 위하여 죽어도 괜찮지요?” - 옥중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유관순 열사의 말
그 어느 때보다 암울했던 시간, 출구조차 보이지 않던 수탈의 나날 속에서 빛을 향해 나아갔던 이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서대문형무소에서 스러져 가던 유관순 열사가 옥중 독립만세운동을 독려하기 위해 동료들에게 남긴 짧은 세 문장이 가진 울림은 이를 대변하는 듯하다. 마치 데이트를 신청하듯이 언뜻 가벼운 어조로 ‘죽음’을 입에 담은 소녀. 그가 이렇게 덤덤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렇듯 대한민국의 독립은 특별한 영웅 몇 명이 이뤄 낸 것이 아니다.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는 모든 이의 피와 땀이 모여 성취한 이 놀라운 결과를 ‘독립운동의 성지’ 천안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글=맹수열/사진=한재호 기자
‘독립운동의 성지’에서 찾은 잊힌 영웅들
대한민국 독립운동 역사를 생생히 기록하고 있는 독립기념관에는 정부가 천안을 건립 부지로 선정한 이유가 설명돼 있다. △대한민국의 가운데 위치해 전국의 관람객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 △건립 부지 내 주민이 적고 토지 매입비용이 비교적 저렴한 곳 △독립유공자와 충신이 많이 배출된 역사성이 있는 곳. 이처럼 천안에는 유독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가 많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했지만, 그 빛을 보지 못한 채 머나먼 중국 쓰촨성에서 서거한 석오 이동녕 선생, 대한독립과 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를 역설했던 유석 조병옥 선생, 만세운동의 상징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로 꼽히는 유관순 열사 등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지역이 바로 천안이다.
하지만 천안의 독립운동 역사를 찬찬히 뜯어보면 그 이면에 자리 잡은 또 다른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이들과 같이했던 수많은 동지. 한때 잊혔던 이들의 불꽃같은 삶은 이제 천안에서 영원한 자유와 함께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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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서 ‘영웅’, 그리고 함께한 이들
유관순 열사의 생가가 있는 충남 천안시 병천면 일대는 ‘유관순 열사 사적지’란 이름으로 크게 조성돼 있다. 1919년 4월 1일 호서지역 최대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18세 소녀의 정신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위인’ 반열에 이름을 올린 유관순 열사인지라 사적지 역시 넓고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었다.
한적하고 평범한 시골 마을. 하지만 사적지에 들어서면 입구부터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입구에 조성된 ‘열사의 거리’에는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이동녕 선생, 조병옥 선생 등 천안 출신 독립운동가와 이순신 장군 등 호국영웅의 공적을 적은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한여름 사방에 만발한 무궁화길을 따라 사적지로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유관순 열사를 만나게 된다.
지방자치단체가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는 기념관엔 유관순 열사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눈길을 끄는 건 그가 갓 태어난 조카를 위해 직접 선물한 것으로 알려진 뜨개모자. 평소 주변의 삶을 살뜰히 챙겼던 마음, 대한민국 독립을 향한 열망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여겨지는 소중한 자료다. 유관순 열사와 더불어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에 수용됐던 임명애 선생이 아기를 낳고 재수감되자 병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함께 아기를 돌봤던 따뜻한 마음 역시 그의 애민(愛民)을 엿볼 수 있는 대목. 기념관에서 평범한 소녀가 위대해지는 여정을 돌아볼 수 있었다.
유관순 열사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추모각과 아우내 만세운동의 거사를 알리기 위해 봉화를 올린 봉화지 등 주요 사적지가 중앙에 있는 탓에 언뜻 놓치기 쉬운 곳이 바로 순국자 추모각이다. 유관순 열사 추모각 옆 소박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면 나오는 이곳에는 아우내 만세운동에 동참했던 60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한 분 한 분을 기억하기 위해 위패를 따라가다 보면 낯익은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유중권’ ‘이소제’. 바로 유관순 열사의 부모님이다. 사실 두 사람은 유관순 열사보다 먼저 일제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순국선열. 3000명이 참여한 아우내 만세운동 당시 일본 헌병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했고, 여기에 유관순 열사의 부모님도 포함됐다. 1919년 9월 2일 그의 체포 소식을 보도한 ‘신한민보’도 ‘한 이화 여학생의 체포-소녀의 양친은 원수에게 피살’이라고 제목을 달아 두 사람의 순국 사실을 알렸다.
두 사람 외에도 순국자 추모각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만세운동의 주역들이 영면을 취하고 있다. 만세운동의 ‘아이콘’이 열사였다면 그 뒤에는 이들을 비롯한 3000명의 숨은 영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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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위해 바친 헌신, 영원히 기억에 남아
유관순 열사 사적지에서 멀지 않은 곳엔 석오 이동녕 선생의 생가와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이동녕 선생이 태어난 충남 천안시 목천읍 동리 입구엔 ‘애국지사의 마을’이란 표지석이 당당하게 서 있다. 개성 강한 임시정부 구성원들 사이에서 ‘웃어른’으로서 중심을 잡던 선생의 무게감을 생각하면 이런 자부심은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기념관 앞에는 평생 선생이 천착했던 단어를 만날 수 있다. ‘大義(대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고 행해야 할 큰 도리’를 실천하기 위해 이동녕 선생은 언론·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1898년부터 ‘제국신문’ 논객으로 활동한 ‘언론인 석오’는 ‘현대에는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 될 것’이라며 국민참정권을 적극 주장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앞선 그의 놀라운 통찰력과 민주주의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유복한 양반가에서 태어난 이동녕 선생은 독립운동에 투신한 뒤 만주, 러시아 연해주, 중국 상하이·항저우·광저우·류저우·치장 등 곳곳을 누비며 부평초 같은 삶을 살았다. 평생을 독립을 위해 달려왔지만, 그가 눈감은 곳은 중국 최서단 쓰촨성 치장현이었다. 기념관에서 1㎞ 정도 떨어진 선생의 생가를 대신 방문하며 어린 시절 바랐던 그의 꿈과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놓지 않았던 독립을 향한 열정이 교차함을 느낄 수 있었다.
‘국민 주권’의 시작…“모두가 영웅”
독립기념관은 자주와 독립정신을 지켜 온 우리 민족의 뜨거운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추모와 교육의 장이다. 너른 부지 곳곳에 조성된 각종 조형물과 기념공원, 방문객을 위한 체험공간은 무더위에도 많은 이를 반기고 있었다.
독립기념관 한가운데 세워진 상징건물 ‘겨레의 집’ 한편엔 낡은 태극기가 하나 걸려 있다. 광복 직후 중국 안후이성 푸양에 주둔하던 한국광복군 제3지대 제2구대 대원들의 소망이 적힌 태극기. 휘날리는 글씨 속에서 독립을 위한 무명영웅들의 꿈과 희망이 엿보였다.
본격적인 관람에 앞서 전시관 앞에서 한 무리의 어린이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에게 물었다. “혹시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가 있나요?”
한참을 머뭇거리던 어린이들에게선 단편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유관순 누나요. 제일 유명하잖아요.” “김구요. 아까 오다가 포스터를 봤어요.” ‘그래도 아는 이름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6개 구역으로 나눠진 전시관은 한민족의 역사부터 조국의 역경과 독립운동, 광복에 이르는 여정을 차례로 볼 수 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마지막 6전시관 ‘새로운 나라’. 독립운동을 통해 새롭게 세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살펴보고 임시정부가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로 이어졌음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가 방문객을 맞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이 짧은 문장은 대단한 여운을 남긴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는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을 이미 오래전 우리가 해냈다는 사실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임시정부의 목표는 일제에 빼앗긴 국토를 되찾고 독립된 국가를 세우는 것. 치열한 독립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민중이 일어선 만세운동과 기꺼이 총을 잡은 광복군의 분투가 기폭제가 돼 독립된 국가의 주권을 국민이 가져야 한다는 사상이 싹텄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는 이렇게 얼굴 없는 수많은 영웅의 힘으로 이뤄졌다.
전시실을 나서는 길,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소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예의 같은 질문.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가 있나요?” 한참을 생각하던 소년은 이렇게 답했다.
“사실 잘 몰랐는데, 오늘 전시를 보며 여러 이름을 알 수 있었어요. 이렇게 많은 분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모두가 영웅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문득 전시관 한편에 적힌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속 한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우리나라 청년 남녀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다란 생각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에 눈을 떠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기르기로 낙을 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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