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꽃, 별이 지나’
화려한 무대 장치·영상 없이
배우들 육체에 모든 것 맡겨
짧게 사라지든 오래 빛나든
결국은 피고 지는 모든 존재
반복되는 헤어짐 슬프지만
잘 배웅하고 다시 살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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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에서 수없이 헤어진다. 손을 놓는다. 등을 본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는다.
별처럼 많은 이별을 하면서도 배웅은 좀처럼 하지 못한다. 떠나는 사람을 오래 바라보고, 마음속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일. 어쩌면 이별을 붙잡기보다 배웅 쪽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연극 ‘꽃, 별이 지나’를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명문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가 자신들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무대 언어를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 꺼내 놓은 작품이다. 극단 창립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신작으로, 이번이 재연이다.
화려한 영상, 요란한 무대장치를 창고에 밀어 넣고 배우들의 순수한 육체에 모든 것을 맡긴 연극이다. 배우들은 대사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급기야 마임과 같은 몸짓까지 동원해 작가가 쓴 대본의 문자를 시각화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미호는 친구 희민의 생일을 위해 꽃을 만든다. 꽃을 고르고, 줄기를 자르고, 흩어진 잎을 모은다. 이 과정에서 묻어 둔 얼굴이 하나씩 나타난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던 오빠 정후,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보낸 엄마와 할머니, 사랑하면서도 상대의 아픔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희민과 지원. 미호의 오늘 속으로 어제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다.
무대 오른쪽에는 꽃과 화분이 빼곡하다. 미호의 꽃집이다. 반대편에는 회색 벽, 문, 냉장고, 계단이 놓였다. 중앙 뒤편의 겹친 사각 프레임은 마치 집의 평면도처럼 보인다. 열어 보지 못한 기억의 서랍 같기도 하다.
각각의 공간이 한곳에 펼쳐져 있다. 제주도의 꽃집 옆에 옛집이 있는 식이다. 이렇게 오늘 옆에 어제가 놓였다. 사람들은 떠났지만 그들이 머물던 시간은 아직 미호 곁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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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에서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사건이 아니다. 치매 노인의 죽음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된다. 이름을 잊고, 집을 잊고, 가족의 얼굴을 잊어 간다. 남은 사람은 그 작은 죽음을 매일 목격하며 산다.
미호의 오빠 정후(진선규 분)는 그 시간을 고통스럽게 견뎠다. 할머니를 씻기고, 먹이고, 위험한 행동을 막았다(툭하면 냉장고에 들어가기도 한다). 반면 미호(박소진 분)는 멀리 있었다.
미호의 죄책감은 할머니의 죽음을 지키지 못했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동안의 고단함을 오빠에게 떠넘겼다는 빚이 남아 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죽은 사람을 잊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데 있지 않다.
지나간 사람과 시간을 기억하되 그 기억에 붙잡혀 현재의 삶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데 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하는 시간은 잠시 겹칠 뿐이며, 그 겹침이 끝난 뒤에도 각자의 시간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이 마지막으로 건네는 말은 ‘잊어라’가 아니라 ‘살아라’다.
“늦어도 돼. 잘 오기만 하면 돼.”
진선규의 연기는 늘 그렇듯이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좋다. 치매 할머니를 돌보는 삶의 고단함과 애정·미움·미안함을 늘어진 어깨, 마지못해 웃는 웃음, 아주 잠깐 멎는 숨에 눌러 담은 연기다. 그의 무대 연기를 좋아하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연기적 맨얼굴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서다.
그와 호흡을 맞춘 할머니 역의 이다아야는 공연계에서 김히어라만큼이나 독특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처음엔 배우가 아니라 안무가인 줄 알았다. 실제로 그는 현대무용에 가까운 안무를 보여 줬는데 치매노인의 기억이 엉키고 감각이 허물어져 가는 과정을 말, 노래가 아닌 온전히 몸의 선으로 표현해 냈다. 몇 번이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이 작품의 모든 안무는 김설진이 만들었다.
드라마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걸그룹 ‘걸스데이’ 출신 배우 박소진. 밝은 얼굴 뒤에 죄책감을 숨긴 미호를 차분하게 잘 끌고 갔다. 미호는 꽃을 다루며 사람 사이의 거리를 배우는 인물이다. 꽃은 묘한 물성을 갖고 있다. 모으면 아름답지만, 너무 가까이 붙여 두면 향기마저 상처가 된다. 숨 쉴 틈을 잃으면 함께 시든다. 꽃다발은 서로 다른 꽃을 하나로 묶지만, 각 줄기에는 제 자리가 있다. 가족도, 연인도 비슷하다. 잡아 주는 손이 필요한 만큼 놓아 주는 손도 필요하다.
희민(차용학 분)과 지원(정예인 분)의 에피소드는 통증을 남긴다. 때로는 배우의 연기에 베일 때가 있는데, 정예인의 지원이 그랬다. 보는 내내 쓰렸다.
이 작품의 제목에서 ‘지나’라는 단어가 궁금했다. ‘꽃, 별이 지나’의 ‘지나’. ‘꽃이나 별이 진다’의 ‘지나’인지, ‘지나간다’의 ‘지나’인지 알기 어려웠다. 혹은 둘 다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의 작가이기도 한 민준호 연출의 답은 이런 것이었다. “꽃은 우리보다 생이 짧아 잠시 피고 진다. 별은 우리 시간보다 훨씬 생이 길어 영원할 것 같지만, 결국 피고 지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꽃과 별이 지는 시기 혹은 그 모든 것이 지난 후의 고민을 제목에 담고 싶었다.”
예상대로 중의적인 ‘지나’라는 얘기인데, 이 제목은 놀랍게도 작가가 아니라 안무가 김설진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꽃이 진다. 별도 진다. 어떤 생은 짧게 피었다 사라지고, 어떤 생은 오래 빛난다.
아직 남은 사람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 못한 말을 뒤늦게 건네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하루를 살아 내는 것. 그게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 배웅이 아닐까.
배웅하지 않았다면, 아직 이별하지 못한 것이다.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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