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의 사원’ 김혜준, 성장캐의 서사
‘첫사랑·로코 퀸’ 수식어 대신
독특한 장르물로 필모 쌓아와
약점 될 수도 있는 수수한 외모
평범함 비트는 연기로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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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중문화 업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궤적을 그리는 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김혜준이 아닐까.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두 작품의 결이 너무나 다르고, 캐릭터도 완전히 상반된 면모를 보이고 있어서다. 한 작품은 피와 총알이 난무하는 하드보일드 액션 스릴러 ‘킬러들의 쇼핑몰2’이고 다른 한 작품은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로맨틱 코미디 ‘최애의 사원’이다.
사실 여배우들의 연기 성장과정에는 하나의 패턴이 있다. ‘국민 첫사랑’ ‘로코 퀸’ 같은 수식어를 먼저 얻는 안전하고 대중적인 선택을 우선적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혜준은 데뷔 이래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러한 전형적인 노선을 걸어온 적이 없다. 잔혹한 궁중암투의 중심에 선 서늘하고 야심 찬 중전(‘킹덤’)부터 해맑은 얼굴로 잔혹한 살인을 일삼는 사이코패스(‘구경이’), 신인류로서 거침없는 행동력을 보여 주는 조력자(‘커넥트’), 생존을 위해 총알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곳에서 사투를 벌이는 성장형 킬러(‘킬러들의 쇼핑몰’)까지 그녀의 필모는 이질적이고도 독특한 장르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김혜준이 데뷔 후 처음으로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한 ‘최애의 사원’에서의 상반된 매력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쉬운 길이 아니라 오히려 어려운 길을 걸어온 그녀였기에 이 평범해 보이는 로맨틱 코미디 역시 또 하나의 도전처럼 여겨진다.
2015년부터 영화와 드라마의 단역 및 주·조연을 거친 김혜준은 2019년 드디어 배우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백 대 1의 경쟁을 뚫고 영화 ‘미성년’의 주리 역에 발탁된 그녀는 그해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받았고,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에서도 계비 조씨 역할로 화제가 됐다. ‘킹덤’에선 베테랑 배우들과의 호흡이 미숙하다는 지적을 받으며 연기력 논란에도 휩싸였지만, 첫 사극 도전이 주는 부담감과 아직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던 캐릭터의 한계가 겹쳐 생겨난 것이었다.
김혜준은 그런 대중의 비판에 흔들리지 않고 ‘킹덤’ 시즌2에서 완벽히 다른 차원의 연기를 선보이며 세간의 평가를 180도 뒤집어 놨다. 꼭두각시 중전의 모습에서 내재된 야망과 광기를 폭발시키는 극의 메인 빌런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 낸 것이다. “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다른 평가를 받기 위해 독기를 품고 노력했다”는 인터뷰 내용처럼 김혜준은 회피보다 수없이 부딪치고 깨지며 성장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영애와 연기 대결(?)을 펼친 ‘구경이’에서도 김혜준의 캐릭터와 연기는 독보적이었다. 해맑은 얼굴로 끔찍한 살인을 계획하고 저지르는 연쇄살인마 역에 천진난만한 ‘똘끼’와 아이 같은 해맑은 웃음을 더함으로써 때론 발랄하다가 때론 살벌해지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을 구현해 냈다. 순수함과 혼란스러움이 더해진 내면을 연기로 표현함으로써 독특한 매력의 연쇄살인마를 그려 낸 것이다. 무엇보다 대선배라고 할 수 있는 이영애와 완벽한 호흡을 보여 준 작품이기도 하다. 김혜준은 그 거대한 존재감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대등한 에너지를 발산함으로써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 냈다.
이후 김혜준은 디즈니+ 시리즈 ‘커넥트’에서 액션 연기의 경험을 넓혔고, 영화 ‘싱크홀’에선 재난 코미디라는 독특한 영역에 뛰어들었다. ‘킬러들의 쇼핑몰’에서 김혜준은 드디어 액션 스릴러물의 원톱 주인공으로서 무게감을 분명하게 증명해 낸다. 시즌1이 영문도 모른 채 벼랑 끝으로 내몰려 생존에 급급했던 ‘생존형 성장’ 캐릭터의 면모를 그렸다면 시즌2에서는 서서히 각성하며 킬러의 자질을 드러내는 보다 주체적인 인물을 보여 준다. 살벌한 에이스 킬러들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상대를 대응하는 서늘하고 침착한 모습이 시즌1과는 완전히 다른 성장캐의 든든함을 구축한다.
김혜준이 ‘킬러들의 쇼핑몰’에서 보여 주는 이런 성장캐다운 면면은 그의 연기 성장과정과 겹쳐지는 면이 있다. 그녀는 현장에서 만난 대선배 배우들과 연기 호흡을 계속 맞춰 왔는데, 그때마다 빈 도화지처럼 그들의 연기 자양분을 흡수했다. 배우이면서 감독이었던 김윤석과 호흡을 맞춘 ‘미성년’에서는 연기의 디테일을 배웠고 ‘킹덤’에서는 류승룡으로부터 캐릭터를 지탱하는 묵직함을 습득했다. ‘구경이’의 이영애에게선 현장을 아우르는 여유와 후배를 품는 포용력, ‘싱크홀’의 차승원·이광수로부터는 희극적인 타이밍과 인간적 배려를, ‘킬러들의 쇼핑몰’의 이동욱에게선 체력적 한계를 뛰어넘는 프로의식과 전우애를 체득했다.
이제 ‘최애의 사원’으로 김혜준은 로맨틱 코미디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12년간 열렬히 덕질하던 아이돌그룹의 멤버를 보다 가까이서 보기 위해 그 최애가 세운 패션회사에 입사해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다. 여기서도 김혜준은 순수하면서도 발랄한 소녀 감성의 팬심 가득한 성덕을 연기하는데, ‘구경이’에서도 나왔던 이미지이지만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랑스러움을 보여 준다. 김혜준이 가진 장점은 스스로도 말했듯이 “튀거나 화려한 스타일이 아닌 평범함”에 있다. 그렇기에 그 평범함을 살짝 비트는 것으로 순수한 소녀가 됐다가도 금세 살벌한 사이코패스로 돌변하기도 한다. 본래의 이미지는 순수하고 무해한 느낌이지만, 그런 얼굴로 서슴없이 저주를 퍼붓거나 살인계획을 짜는 모습은 더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한다.
흔히들 평범하다는 건 약점이라고 여긴다. 그 평범함은 오히려 빈 도화지로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말해 주는 게 아닐까. 물론 그 빈 도화지를 가능성으로 바꾸기 위해선 회피가 아닌 부딪쳐 깨지더라도 도전하는 과정이 전제돼야 하지만, 그 도전이 성공했을 때의 파괴력은 더 커질 수 있다. 김혜준이 전형성에서 탈피해 성장한 과정과 그 결과가 보여 주는 것처럼. 사진=디즈니+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기고·방송·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MBC·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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