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미국의 서반구 우선주의 구현 동향 ⑤ 쿠바 취임 즉시 강압 정책 재개 공식화 올해들어 에너지 봉쇄 등 더 강화 관광산업 기관들 전방위적 제재 의료진 파견 등 노동력 수출 견제도 완화 조건 내세워 내부 변화 유도 정권 전복 위한 군사 행동 전망도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군이 친미 독재정권을 종식하면서 미국과 쿠바의 대립은 본격화됐다. 카스트로 정권이 쿠바 내 미국 기업 자산을 국유화하자 미국이 공식 단교를 선언하면서 전면적인 경제·금융·무역 봉쇄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냉전기 양국 관계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라는 최악의 충돌 국면에 직면했다. 이후 미국은 쿠바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 동시에 경제 고립 조치에 착수했다.
양국 관계는 오바마 행정부 시기를 거치며 극적으로 전환됐다. 이 시기 미국이 50년 넘게 계속된 쿠바 고립 정책의 완전한 실패를 선언하면서 과감한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15년 양국은 1961년 단교 이래 54년 만에 국교를 재개했다. 특히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은 양국 관계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후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쿠바를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고 여행·송금 제재를 복원했다. 이 시기 양국 관계가 냉전 시기 수준으로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월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쿠바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철회하는 내용이 담긴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2기는 1기의 연장선에서 쿠바에 대한 적대적 정책을 고수하는 모습이다. 특히 인권·민주주의를 강조해 온 기존 행정부와 달리 서반구 우선주의 관점에서 쿠바 문제를 재정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1월 29일 행정명령은 이러한 접근법을 명확히 보여줬다. 쿠바 정부를 미국의 국가안보와 외교정책에 ‘비상하고 특별한 위협(unusual and extraordinary threats)’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근거로는 쿠바가 미국에 적대적인 세력과 협력해 왔다는 점을 들었다. 쿠바가 러시아의 해외 최대 규모 신호정보 시설을 유치했으며, 중국과는 국방·정보 분야 협력을 심화해 왔다는 내용이다. 하마스·헤즈볼라 등 친이란 대리 세력에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해 왔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이러한 평가는 쿠바가 미국 본토 최근접 지역에서 적대세력이 군사·정보 능력을 투사하는 거점으로 부상했다는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20일 취임 즉시 발동한 행정명령을 통해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쿠바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철회했다. 대쿠바 제재를 규정한 국가안보대통령각서(NSPM-5) 폐지 조치도 철회됐다. 전임 행정부의 유화정책을 폐기하면서 대쿠바 강압 정책 재개를 공식화한 것이다. 미국은 같은 해 6월 30일부로 재발동한 NSPM-5를 통해 “쿠바 정권으로 유입되는 자금을 차단하겠다”고 밝히면서 쿠바 정권에 과도한 이익을 가져다 준 기존 경제 관행을 끝내겠다고 명시했다. 쿠바 군부 및 군부 산하 기업과의 직간접적 금융거래를 금지함으로써 정권의 수입원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쿠바 정권에 대한 미국의 강압은 2026년 1월 29일의 행정명령을 통해 한층 강화됐다. 에너지 봉쇄 조치가 대표적이다. 쿠바에 석유를 직간접적으로 판매 및 제공하는 국가의 대미 수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쿠바와 거래하는 제3국까지 압박하는 2차 제재 방식이다. 목적은 쿠바의 에너지 수입 경로를 차단해 정권 유지 비용을 높이고, 쿠바를 지원해 온 역내외 국가에도 비용을 부과하는 데 있다.
쿠바 관광산업에 대한 제재도 본격화됐다. 관광산업을 민간경제 영역이 아닌 쿠바 정권의 수입원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NSPM-5는 쿠바 군·정보·보안 당국의 통제를 받거나 이들을 위해 활동하는 기업과 하위기관의 명단을 작성하고, 이들과의 직간접적 금융거래를 금지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쿠바 당국이 통제하는 관광산업 종사 기관들에 대한 전방위적 제재에 착수했다.
미국의 본토 안보 논리는 쿠바 국적자에게도 적용됐다. 미국 내 쿠바 국적자에 대한 최종 추방명령 집행과 미국 사법 정의로부터 도피한 인물의 송환 문제를 명시했다는 측면에서다. 쿠바 국민에 대한 부분적 입국 제한 조치도 도입됐다. 쿠바가 미국과 충분히 법 집행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며, 미국의 추방 대상자를 수용하지 않았고, 비자 초과체류 비율이 높다는 점 등에 근거한 조치다.
쿠바의 해외 의료진 파견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압박도 가시화됐다. 쿠바 외교의 핵심 수단이자 주요 외화 획득원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는 2025년 2월부로 이 프로그램에 관여한 쿠바 전·현직 정부 관리 또는 제3국 정부 관리와 그 직계가족까지 비자 제한 대상에 포함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쿠바의 노동력 수출 프로그램에 협력하는 주변국에도 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는 쿠바의 서반구 내 연성권력(soft power) 네트워크를 견제하는 동시에 역내 국가들이 쿠바와 협력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효과를 창출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미국은 쿠바 정권을 압박하는 동시에 내부 변화도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4월 아바나에서 개최된 비공개 회동에서 쿠바는 미국의 에너지 봉쇄 조치 해제를 최우선 의제로 제기했다. 이에 미국은 제재 완화 조건으로 정치적 억압 중단, 정치범 석방, 경제 자유화 등의 조치를 언급했다. 쿠바 정치·경제 거버넌스의 개혁을 요구한 것이다. 미국은 쿠바 사회의 변화 필요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인터넷 접근권 확대, 언론과 결사의 자유 등 쿠바 국민에 대한 다양한 지원 방침을 밝힌 이유다.
미국의 제재는 쿠바 정권에 외교적·경제적 고립과 재정적 압박을 가했다는 점에서 정책 효과를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첫째, 금융거래 제한과 미국 시장 접근 차단을 통해 쿠바 정권의 핵심 수입원인 관광, 송금, 해외투자를 효과적으로 위축시켰다. 둘째, 2차 제재를 통한 초국가적 효력으로 인해 다국적 기업과 은행들이 쿠바 투자를 회피하는 유인 효과를 창출했다. 셋째, 쿠바 정권이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제3국을 거쳐 물자를 비싸게 수입하도록 강요하는 동시에 역내외 우방국에 극도로 의존하게 함으로써 정권 유지 비용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달성했다.
지난 5월 22일(현지시간) 쿠바 아바나에서 미국 법무부의 라울 카스트로 전 쿠바 대통령 기소와 대쿠바 봉쇄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대정전이 발생한 쿠바 아바나에서 시민들이 어둠 속을 걸어가고 있다. 쿠바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봉쇄 강화로 만성적인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제재의 부작용도 지적된다. 무엇보다 쿠바 주민들의 인도주의적 고통이 극심해졌다. 의약품, 보건 의료 장비, 원자재 수입 제한으로 인해 의료 체계가 마비되는 동시에 생필품과 식량 부족이 만성화됐기 때문이다. 석유 제재와 금융 봉쇄 강화로 만성적인 연료 부족이 발생하면서 쿠바 전역에서의 전력망 마비와 식수 공급 중단이 초래됐다. 대규모 난민과 이민자 발생도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이는 미국 남부 국경의 불법 이민자 급증으로 이어지면서 부담을 초래하는 실정이다.
미국이 쿠바 정권 전복을 위한 군사적 행동에 착수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축출 사례를 재현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국제사회가 양국의 갈등 양상에 주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