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을 바라보는 관점이 강군을 만든다

입력 2026. 08. 06   15:43
업데이트 2026. 08. 06   15:58
0 댓글

 


문홍식 육군정훈연구위원 예비역 육군준장

30년 넘게 군에서 생활하다가 전역하고 보니 가끔 ‘내가 통제에 길들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역한 지 1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무슨 일이든 혼자 알아서 하는 게 어색할 때가 많다.

병사 휴대전화의 영내 사용은 2014년 처음 제기됐으나 부대 보안 등을 이유로 곧바로 추진되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 여러 우여곡절 끝에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됐다. 장병들은 삼시 세끼 같은 급식과 동일한 보급품을 제공받는다. 반면 미군은 현금을 받아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입하고 매식한다. 제도 차이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2가지 사안은 언뜻 보면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장병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선입견이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유발 하라리는 『극한의 경험』에서 중세부터 근대 후기까지 수백 년에 걸친 전쟁사를 분석하며 병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군대 운영과 군사작전의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

18세기까지 구체제 군대에서 병사들은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계층에서 충원됐으며, 이들의 이미지와 위상은 낮았다. 지휘관은 병사들의 탈영과 명령 불복종을 늘 염려했다. 병사를 다루는 방식은 혹독한 훈련과 엄격한 군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훈련 목적은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동작을 통해 개인의 개성과 자율성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병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전술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탈영을 막기 위해 야간 공격과 소부대 단위의 작전은 제한됐고, 병사의 행동을 통제하기 쉬운 넓은 평야에서의 밀집대형 전투가 일반적이었다.

18세기 말 감성주의 문화가 군대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병사를 통제 대상이 아니라 자율성을 갖춘 주체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훈련방식도 ‘강압(coercion)’에서 ‘내적 헌신과 자기규율(cooptation)’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군에 입대했고, 군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도 점차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이에 지휘관이 병사를 존중하는 문화도 자리를 잡아 나갔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군대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국민개병제를 기반으로 한 대규모 상비군이 등장했고, 하급 지휘관과 병사의 자율적 판단을 중시하는 임무형 지휘의 토대도 마련됐다. 1806년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 이후 유럽 각국은 ‘로봇 같은’ 구체제 군대에서 벗어나 자율성과 유연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군대로 빠르게 전환해 갔다.

얼마 전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인공지능(AI) 시대의 인재상으로 ‘생각·적응·공감’ 능력을 갖춘 사람을 꼽았다. 이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 역시 자율성과 창의성을 갖춘 사람임을 보여 준다.

그동안 우리 군은 상관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군인을 이상적인 군인상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AI 첨단 과학기술 강군’이 필요로 하는 인재는 ‘로봇 같은’ 군인이 아니다. 복잡한 상황에서 본질을 읽고 스스로 판단하며 책임 있게 행동할 줄 아는 군인이다. 이러한 군인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장병을 통제 대상이 아니라 자율적 주체로 바라보는 철학이 바로 서고, 그것이 정책과 제도에 녹아들 때 비로소 가능하다.

1999년 육군이 임무형 지휘를 지휘 개념으로 채택한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이것이 여전히 군 조직문화로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를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