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피서…해발 900m, 폭염도 열대야도 비켜간 가장 높은 여름

입력 2026. 08. 06   16:44
업데이트 2026. 08. 0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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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키는대로,닿는대로
백두대간 능선 올라앉은 강원 태백

 

연일 열대야 소식이 뉴스를 채우는 계절이다. 그런데 이 단어와 거의 무관하게 여름을 나는 도시가 있다. 평균 해발고도 902.2m, 여름철 평균기온 22도 안팎. 강원 태백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은 어김없이 내려간다. 백두대간 능선에 올라앉은 태백은 이 법칙의 혜택을 통째로 누린다. 몇 해째 열대야 소식이 거의 들리지 않는 도시여서 한여름에도 해가 지면 긴팔옷을 찾게 된다. 서늘함은 이 도시가 가진 매력의 절반이다. 밤이 깊으면 나머지 절반이 나타난다. 빛 공해가 적고, 하늘이 가까운 태백은 별을 좇는 이들 사이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은하수 관측지로 꼽힌다. 낮에는 고원의 명소를 돌고 밤에는 별을 기다리는 이틀을 그려 보자.

 

몽토랑산양목장에서 바라본 강원 태백시 전경.
몽토랑산양목장에서 바라본 강원 태백시 전경.


황지연못
도심 한복판 연못, 낙동강 1300리 첫 물

여정은 시내 한복판에서 시작한다. 상가와 도로 사이 둘레 100m 남짓한 연못이 낙동강 1300리(약 510㎞)의 첫 물이다. 황지연못에서는 하루 약 5000톤의 물이 쉼 없이 솟는다. 수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닥에서 물이 올라오며 이는 잔물결이 보인다.

연못을 두른 공원은 시민들의 쉼터다. 인색한 황부자의 집터가 하루아침에 연못이 됐다는 전설이 안내판에 적혀 있다. 이 작은 샘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영남을 관통해 남해까지 흘러간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발원지라는 단어의 무게가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태백이 품은 발원지는 하나가 아니다. 금대봉 자락 검룡소에서는 한강의 첫 물이 솟으니 한 도시가 남한의 두 큰 강을 모두 길어 올리는 셈이다.


몽토랑산양목장
몽토랑산양목장


몽토랑산양목장
산비탈 따라 풀 뜯는 산양, 알프스 온 듯

시내를 벗어나 언덕에 오르면 초지가 열린다. 산비탈을 따라 산양들이 풀을 뜯는 몽토랑산양목장이다. 경사면에 붙은 목장과 그 너머 겹겹의 산줄기가 알프스의 한 자락을 옮겨 온 듯한 인상을 준다.

목장 카페에서는 산양유로 만든 음료를 낸다. 테라스에 앉으면 황지천을 따라 이어지는 시가지가 한눈에 담긴다. 입장권을 끊고 방목장에 들어서면 산양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도 할 수 있어 아이와 함께라면 발걸음이 더 길어진다. 고원의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차가운 산양유 한 잔이 이 도시의 여름을 요약한다.


함백산
함백산


함백산과 만항재 
포장도로 따라 올라가니 능선이 넘실

해가 높을 때 함백산에 오르는 편이 안전하다. 국립공원 입산시간 지정제에 따라 오후 늦게는 입산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해발 1572.9m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뜻밖에 쉽다. 정상부를 지나는 도로가 높은 지점까지 데려다줘 등산로를 따라 30분 남짓이면 닿는다. 돌이 많아 운동화는 필수. 정상에 서면 백두대간 능선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한여름에도 바람이 차 땀이 금세 식는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도 고원의 정취를 누리는 방법이 있다. 함백산 자락 태백과 정선의 경계에 걸린 고개 만항재다. 해발 1330m로 포장도로가 넘는 고개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높은 축에 든다. 여름이면 고갯마루 주변으로 야생화가 무리 지어 피고, 잠시 차를 세워 걷는 것만으로 서늘한 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구문소
구문소


구문소
5억 년 고생대 바다 지층을 걸어 들어가다

산에서 내려온 발길은 남쪽으로 향한다. 태백에서 가장 오래된 볼거리와 만날 차례다. 강물이 석회암 산자락을 뚫고 지나가며 만든 구멍 구문소다. 5억 년 전 고생대 바다에서 쌓인 지층이 물길에 깎여 지금의 모습이 됐고, 바위에는 그 시절 바다 생물의 흔적이 화석으로 남아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질 명소로, 절벽과 물길이 만드는 경관은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을 풍긴다. 밤이면 절벽을 비추는 조명이 켜져 색다른 정취를 자아내지만, 그만큼 별 관측과는 거리가 있다. 구문소는 해가 있을 때 눈에 담아 두는 편이 낫다.

 

통리탄탄파크
통리탄탄파크


통리탄탄파크
폐쇄된 갱도, 공원으로 전시장으로 변신

태백은 한때 국내 최대 탄광도시였다. 그 유산이 요즘은 볼거리로 되살아나고 있다. 통리탄탄파크는 폐쇄된 갱도를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 바꾼 공간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세트가 옮겨져 있고, 군용 헬리콥터와 차량이 전시돼 드라마 속 장면을 그대로 걷는 기분이 든다. 갱도 안은 한여름에도 서늘해 그 자체로 피서가 되고, 미디어아트와 증강현실 체험이 어두운 굴속을 채운다. 두 갱도를 잇는 숲 산책로도 놓치기에 아깝다.

인근 오로라파크는 폐역이 된 통리역을 공원으로 단장한 결과물이다. 세계 각지의 고원 기차역을 테마로 꾸몄고, 눈꽃전망대에 오르면 통리 일대가 발아래 펼쳐진다. 두 시설은 통합권으로 함께 둘러볼 수 있다. 관람을 마친 뒤에도 서두를 이유가 없다. 이 일대가 곧 밤의 무대여서다.


오로라파크
오로라파크


오로라파크
서늘한 밤하늘 별천지, 오로라를 만나다

해가 지면 태백의 진짜 무대가 열린다. 통리에 머물렀다면 그대로 오로라파크에서 밤을 맞으면 된다. 밤 10시 무렵 공원 조명이 꺼지는데, 별을 보러 오는 이들을 위한 배려다. 공원의 고래 조형물 아래서 하늘을 향해 셔터를 누르면 고래가 은하수를 헤엄치는 듯한 장면이 잡힌다.

더 짙은 어둠을 원한다면 차를 돌려 함백산으로 향하자.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초행길 운전자는 긴장하게 되지만, 그 어둠이야말로 이 길의 자산이다. 정상부를 두르는 도로의 고지대 구간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별 명소로 통한다. 시내에서 올라오는 불빛을 산이 막아 주는 데다 인공조명이 없어 맑은 날이면 맨눈으로도 은하수가 보인다. 도로 중턱의 오투전망대는 2층 팔각정이 있어 앉아 기다리기에 편한 대신 시내 불빛이 보이는 방향이어서 선명도는 고지대 구간에 한 수 접힌다. 편안함과 어둠 사이에서 취향껏 고르면 된다.

요령은 간단하다. 달이 없는 그믐 전후를 고르고, 현장에서는 자동차와 휴대전화 조명까지 모두 끈다. 눈이 어둠에 익을수록 별은 많아진다. 스마트폰도 삼각대에 고정해 수동 모드로 셔터 속도 15초, 감도 1600~3200 정도를 주면 은하수가 찍힌다. 고지대의 밤은 여름에도 쌀쌀하니 외투 한 벌은 꼭 챙길 것.

발원지의 샘에서 시작해 한낮의 산정을 넘고, 탄광 유산을 거닐다가 별 아래 서는 이틀. 관측 포인트는 대부분 차로 이동해야 하니 야간 산길 운전에는 여유를 두는 편이 안전하다. 도시의 열대야에 지쳐 가고 있다면 답은 해발 900m에 있다. 이번 휴가, 태백의 서늘한 밤하늘 아래서 별을 세어 보자.


필자 김정흠은 여행작가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다. 주로 여행 카테고리의 콘텐츠를 기획·제작하고 있다. 국내외 여행 매체 등과 함께 다채로운 여행 콘텐츠를 선보인다.
필자 김정흠은 여행작가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다. 주로 여행 카테고리의 콘텐츠를 기획·제작하고 있다. 국내외 여행 매체 등과 함께 다채로운 여행 콘텐츠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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