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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는 샤를 드골 대통령이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은 대통령이 아닌 스물여섯 살의 드골 대위인지도 모른다. 군인은 언제 만들어지는가. 계급장을 다는 순간이 아니라 전쟁과 역경 속에서 자신의 정신을 단련할 때다. 드골의 젊은 시절은 그 답을 보여 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스물여섯 살의 드골 대위는 디낭과 마른전투를 거쳐 베르?전투의 최대 격전지인 두오몽에서 백병전을 벌이다가 대퇴부에 관통상을 입고 독일군 포로가 됐다. 참호에서 그는 현대전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드골은 훗날 “보병들이 출발한 참호에서 불과 몇 미터도 전진하지 못한 채 죽어 갔고, 일부 지휘관은 작전의 성공 여부보다 인명 손실이 충분했는지를 먼저 확인했다”고 회고했다. 이 경험은 그의 군인정신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드골은 전장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병사가 아니라 잘못된 전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그가 1934년 펴낸 『미래의 군대』에서 프랑스 군대의 현대화를 역설하며 마지노선에 의존하는 수동적 방어체계 대신 10만 명 규모의 독립기갑부대와 기동전 개념을 주장하게 된 배경이 됐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낡은 교리만 반복하는 군대는 결국 더 많은 희생을 낳을 뿐이라는 게 그의 확신이었다. 군인에게 용기는 중요하지만, 시대를 읽는 통찰과 변화를 수용하는 지적 용기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는 일찍 깨달았다.
그러나 드골의 군인정신은 전장에서만 단련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포로가 된 뒤 약 2년 8개월간 5차례나 탈출을 시도했지만 끝내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유를 향한 의지만큼은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드골은 포로가 된 이후에도 장교로서 품위를 잃지 않았다. 군복을 단정히 갖추고, 몸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았으며, 독일군 하급 장교들에게도 자신의 계급에 걸맞은 예우를 요구했다.
드골은 훗날 회고록에서 군의 존재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군은 실제 전쟁터에서 스스로 국가의 운명을 책임질 때만 국가와 군대의 이름으로 그 권위와 위엄, 특권을 향유할 수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 장교들에게도 이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장교의 권위는 계급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끊임없는 자기수양과 학습, 시대를 읽는 통찰, 부하의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리더십, 국가를 위한 헌신이 쌓일 때 비로소 국민은 군대를 신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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