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장’ 막고 행복 충전 “오늘도 잘 참았다”

입력 2026. 08. 05   16:11
업데이트 2026. 08. 0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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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가성비

AI 활용 가상 배달·쇼핑몰 경험
주문·배달까지 완료 재미만 충족
저가 제품 브랜드 제품으로 연출
슬기로운 고물가 대응법들 인기

뷔페 ‘쿠우쿠우’의 음식을 조합해 고급스러운 플레이팅을 연출한 유튜버 영상. 출처= ‘띠미’ 유튜브 캡처
뷔페 ‘쿠우쿠우’의 음식을 조합해 고급스러운 플레이팅을 연출한 유튜버 영상. 출처= ‘띠미’ 유튜브 캡처
가상 주사 콘텐츠 ‘마음자로’ 홍보 이미지. 출처=닥터나우 홈페이지
가상 주사 콘텐츠 ‘마음자로’ 홍보 이미지. 출처=닥터나우 홈페이지



SNS상에서 최근 화제를 모으는 주사제가 있다. 이름은 ‘마음자로’. 유명 비만 치료제 ‘마운자로’를 본떠 만든 이름이다. 사실 실제 주사는 아니고, 주사를 맞는 기분을 재현한 콘텐츠 제목이다. 주사의 투약 용량을 선택하고 휴대전화를 배에 갖다 대면 약물이 투입되는 것처럼 진동과 함께 화면의 주사액이 줄어든다. 다 맞고 나면 ‘구라시보 효과로 식욕이 사라졌다!’는 메시지가 뜬다. 여기에 더해 ‘마음이 허락한 저녁 메뉴’도 추천되는데 사용자들은 이러한 세심함에 심리적 위안을 얻었다는 반응이다.

위의 사례에서 ‘구라시보 효과’라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이는 플라세보 효과(위약효과), 즉 실제 약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증상이 호전되는 현상을 재치 있게 활용한 표현이다. 위약도 아닌 화면상의 콘텐츠만으로 심리적 위안을 얻고 있으니 ‘구라(?)’라는 것이다.

앞서 2026년 10대 트렌드 키워드로 ‘기분경제’를 소개한 적이 있다. 소비자들이 기분을 관리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 시대라는 의미다. 여기에서 한 발 나아가 비용은 최소화하면서 심리적 효용은 최대화하려는 모습이 포착된다. 고물가 시대에 대응해 소비자들이 ‘기분 가성비’를 챙기는 전략들을 살펴보자.

첫 번째로 돈을 쓰지 않고 재미를 구매한다. 구매는 금전적 지출이 필수인데 어떻게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일까? 돈을 쓰지 않고 물건을 구매하는 기분만 낼 수 있도록 하는 ‘가상 쇼핑몰’ 덕분이다. 일본에서 먼저 등장해 화제가 됐는데 국내에도 같은 콘셉트로 제작됐다. 실제 온라인 쇼핑몰처럼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고 가상으로 결제까지 할 수 있는데, 로그인하면 리뷰도 작성할 수 있다고 한다. 상품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무한 증식 화분’의 후기에는 “(파를 심은 화분을 두고) 잠시 여행 갔다 왔더니 증식해서 집에 파 냄새가 가득하다”는 불평이 달려 있어 재미를 더한다.

가상 배달 앱도 있다. 음식을 장바구니에 담은 뒤 주소와 연락처를 입력하고 결제까지 하면 실제 배달 앱처럼 음식점에서 주문을 접수했다는 메시지와 배달 예정 시간, 배달기사의 실시간 이동 경로까지 표시된다. 재미있는 점은 배달완료와 함께 음식이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잘 참았다!’는 메시지가 뜬다는 것이다. 배달음식을 주문하고 싶을 때 비용과 열량 등 부담 없이 주문 과정에서 느끼는 기분만 취한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앱 제작이 쉬워지면서 쇼핑몰과 배달 앱 외에도 가상 앱을 통해 재미를 취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기분 가성비를 높이는 두 번째 방법은 최대한 돈을 적게 들이면서 고급스러운 기분만 취하는 것이다. 5성급 호텔, 파인다이닝 식당 등 프리미엄 경험 소비는 특별한 대접을 받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지만 비용이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이때 느낌만 흉내 내는 우회전략을 취한다. 예를 들어 5성급 호텔에서 숙박하는 대신 수영장·스파·라운지 등 호텔의 부대시설만 이용해 마치 5성급 호텔에 ‘호캉스’를 간 듯 사진을 남긴다.

대중적인 뷔페에서 파인다이닝 놀이를 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 SNS에서 뷔페 ‘쿠우쿠우’를 방문한 사진 리뷰가 화제를 모았다. 뷔페에서 음식을 담는 평범한 접시에 음식을 몇 가지 조합해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플레이팅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최근 요리경연 방송을 통해 ‘이븐하게’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처럼 요즘 소비자들은 고급 식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만큼 고급스러운 경험에 대한 욕망 또한 일반화됐지만 소비 여력이 크지 않은 젊은 소비자들은 재치 있게 그 느낌을 흉내 낸다.

세 번째 전략은 적은 돈으로 마음의 평화를 구매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소비로 해결할 수 없는 일도 많다. 예를 들어 야외 결혼식을 앞둔 예비부부라면 당일 날씨가 좋기를 바라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대신 불안함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미국의 쇼핑몰 Etsy에서는 결혼식 날 비를 막고 맑은 날씨를 불러온다는 ‘날씨 주문(weather spell)’이 거래된다. 가격은 한국 돈으로 5000원에서 5만 원 사이. 실제로 날씨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일종의 심리적 보험에 가입하는 것과 같다.

이처럼 기분 가성비가 중요해지는 것은 고물가가 이어지는 경제 상황과도 관련이 깊다. 원하는 기분을 얻기 위해 소비를 마음껏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대신 말랑이나 클리커, 왁뿌볼과 같이 소액으로 할 수 있는 기분 소비만 인기를 얻고 있다.

소비자들이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은 산업적으로도 영향이 크다. 과거 실용적 소비에서는 가성비를 찾더라도 감성적인 소비나 상징성이 강한 소비에서는 높은 가격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재미나 프리미엄 경험 등 대부분 영역에서 합리적인 가격을 찾는 것이 기본값이 됐다.

이에 따라 유명 브랜드의 성능을 모방한 제품을 의미하는 ‘듀프’가 유행을 넘어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매체 ‘비즈니스 오브 패션’은 지난 7월 뷰티산업의 현 상황을 ‘슈퍼듀프 시대(Superdupe Era)’라고 규정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유명 디자이너 향수를 재현한 ‘도지어(Dossier)’가 있다. 듀프로 출발한 이 기업은 미국에서 월마트, 타깃, CVS, Boots 등 주요 유통업체에 입점하며 입지를 다지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소비자들이 팍팍한 주머니 사정을 암울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슬기롭고 재치 있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례로 소개한 바처럼 AI를 활용해 비용 부담 없이 가상 콘텐츠를 제작해본다거나 저가 제품을 활용해 초고가 브랜드 제품의 느낌을 연출하는 등 기분 가성비를 찾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소비자들의 지향점 변화는 기발하고 엉뚱한 라이프 스타일을 의미하는 ‘윔지코어(Whimsy-core)’에서도 드러난다. 실용성과 관계없이 일상을 알록달록한 동화풍으로 꾸미거나 엉뚱한 레시피를 만들어 보는 등 팍팍한 현실을 밝은 분위기로 전환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의 기분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가성비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각자만의 노하우를 만들어보자.


필자 권정윤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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