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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일. 대한민국을 출항한 문무대왕함이 미국 뉴욕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이번 항해는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해 열린 국제관함식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55개국 함정이 허드슨강에 모인 가운데 태극기를 단 문무대왕함이 대열에 나란히 자리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대한민국 해군을 대표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행사 당일 NBC 생방송 인터뷰에서 미 해군 브래드 스킬맨 중장은 세계 각국 함정이 자유의 여신상 앞에 집결한 의미를 설명했다. 그중 유일하게 대한민국 해군을 언급했다. 그는 문무대왕함을 “가장 먼 항해를 통해 이번 관함식에 참가한 함정”이라고 소개했다. 참가국 가운데 우리 함정을 별도로 언급한 것은 54일이라는 기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가장 먼 항해’라는 표현에는 가장 먼 거리에서도 함께하려 여정에 오른 동맹국을 향한 존중이 담겨 있었다.
국제관함식에서 함정 그 자체가 국가의 해양력을 상징하는 하드파워였다면 뉴욕에서 진행된 함상 리셉션의 사회자를 맡으며 하드파워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힘을 볼 수 있었다. 문무대왕함은 리셉션에서 해군을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승조원들이 직접 ‘한복’과 ‘오징어 게임’ 복장을 하고 내빈과 소통했으며, 갑판에서 이뤄진 이벤트는 사회자 한 명이 이끄는 행사가 아닌 모두가 주인공인 공간이었다. 문화의 공유는 긴 설명 없이도 서로의 경계를 낮추고, 함정에서 시작된 짧은 대화는 우리나라를 홍보하는 소프트파워로 작용했다.
리셉션 축사에서 브래드 스킬맨 중장은 다시 한번 먼 항해를 감수하고 미국의 역사적 기념행사에 함께해 준 것에 감사를 표했다. 무엇보다 승조원들에게 보내는 응원과 감사 메시지는 오랜 시간 같은 길을 걸어온 선구자로서의 시선이 담겨 장병들에겐 긴 항해의 피로를 잊게 하는 힘이 됐다. 승조원들은 그날 우리가 건너온 바다가 단순한 항적이 아니라 동맹의 신뢰를 새기는 길이었음을 느꼈을 것이다.
동맹은 문서와 선언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항해할 때 비로소 힘이 된다. 상대가 보내는 신호에 응답하고, 공동의 가치를 위해 힘쓸 때 제도적 약속은 실질적인 결속으로 발전한다. 가장 먼 거리에서도 같이하기 위해 기꺼이 움직이고, 그 시간을 서로 기억하는 것. 문무대왕함의 54일은 바로 그러한 동맹의 가치였다.
돌아보면 제주를 출항해 뉴욕에 이르기까지의 항해는 절대로 쉽지 않았다. 그러나 뉴욕에서 마주한 경험은 그 여정의 의미를 분명하게 해 줬다. 문무대왕함이 항해한 54일은 대한민국 해군이 한미동맹의 한 축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행동으로 보여 준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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