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오늘 멈추지 않기를

입력 2026. 08. 04   15:18
업데이트 2026. 08. 0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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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대위 육군화력여단 목사
김요한 대위 육군화력여단 목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저서 『인생 수업』에서 삶을 애플파이에 비유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한 조각, 자녀에게 한 조각, 일에 한 조각. 우리는 그렇게 인생이라고 불리는 파이를 부지런히 나눠 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접시를 내려다보면 자신을 위한 조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더 비극적인 것은 나눠 줬던 파이가 원래 어떤 맛이었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리는 순간이다. 파이의 맛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견뎌 온 시간의 의미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겨를조차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자신의 소설 곳곳에서 이야기하는 바가 있다. 인간은 자신이 겪는 고통보다 그 시간이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됐을 때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사람의 본능에는 행복한 세월보다 자신이 겪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해 그 고통이 가치 있게 남아 주기를 바라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요셉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형들의 시기로 인해 노예로 팔려 갔고, 억울한 누명까지 써 옥살이를 했다. 그런 그가 훗날 이집트의 총리에 오르게 된다. 여기서 갈림길이 생긴다. 요셉이 총리 자리를 자신이 견뎌 온 세월에 대한 ‘보상’으로 여겼다면 형들에게 되갚아 줄 힘을 손에 쥔 사람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총리가 된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형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그가 총리 자리를 보상이 아니라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걸어왔던 고통의 시간에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독서 플랫폼 ‘그믐’의 대표 김새섬 씨는 평균 생존기간이 1년 남짓에 불과한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불운에 그녀는 ‘왜 나만?’ ‘하필 지금?’이라는 원망과 억울함을 충분히 쏟아 낼 수 있었다. 그녀의 선택은 달랐다. 병 자체를 이길 순 없어도 그 앞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는 스스로 정할 수 있다며 고통에 함몰되지 않고 투병생활을 팟캐스트에 담아 세상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고통이 결코 의미 없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말이다.

어쩌면 우리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내게 주어진 견딤의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단정은 아닐까? 의미는 고통이 끝나기를 기다려야만 주어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 마주할지 선택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 지금 겪고 있는 고립과 아픔도 다르지 않다.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나의 파이 조각은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을 새기고 있는 조각인지도 모른다. 그 조각을 완성해 가는 걸음을 부디 오늘 멈추지 않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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