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판 위에 담긴 이야기를 읽는 법

입력 2026. 08. 04   15:18
업데이트 2026. 08. 0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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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철<br>경희여중 국어교사<br>EBS 강사
강용철
경희여중 국어교사
EBS 강사


오늘 병영식당에서 어떤 메뉴를 만났는가? 고된 훈련과 과업을 마친 뒤 마주하는 식사시간은 군 생활에서 가장 확실한 위안이다. 하지만 날마다 반복되는 식사이기에 우리는 무심코 식판을 채우고 비우곤 한다. 그저 한 끼로 지나치는 그 음식에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읽어 낼 이야기가 겹겹이 담겨 있다. 음식은 우리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야기의 그릇이기 때문이다.

얼큰한 ‘육개장’부터 그렇다. ‘육계장’으로 잘못 적는 경우가 있는데 ‘육개장’은 ‘고기’를 뜻하는 ‘육(肉)’에 ‘개장’이 결합한 말이다. ‘개장’은 본래 개고기를 여러 양념과 채소로 고아 끓인 ‘개장국’의 줄임말인데, 그 방식으로 쇠고기를 맵게 끓여 낸 음식에 이 이름이 옮겨붙었다. 닭고기로 끓이면 ‘닭개장’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름 한 글자에 우리 밥상이 걸어온 길과 세월이 함께 배어 있는 셈이다.

‘설렁탕’의 어원에는 여러 견해가 있다. 그중 조선시대 선농단에서 풍년을 기원한 뒤 국을 끓여 백성과 나눴고 ‘선농탕’이 ‘설렁탕’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큰 가마의 국을 함께 나누던 장면은 한 그릇에 공동체의 기억이 담길 수 있음을 넌지시 일러 준다. 국물 한술에 옛 풍경이 겹쳐 있으니 우리는 국을 먹으며 오래된 이야기를 같이 삼키는 셈이다.

메뉴판의 ‘차돌박이’도 흥미롭다. ‘-박이’는 무엇인가 박혀 있는 대상을 나타낸다. 양지머리의 흰 지방이 차돌처럼 단단히 박혀 있어 붙은 이름이다. ‘두 살배기’ ‘진짜배기’의 ‘-배기’가 나이나 특성을 나타내는 것과는 쓰임이 다르다. 음식 이름 하나에도 재료의 생김새를 세심히 살핀 옛사람의 눈길이 남아 있다.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의 내력은 더 흥미롭다. 피란길에 오른 어느 임금이 ‘묵’이라는 물고기를 맛있게 먹고는 맛에 비해 이름이 초라하다 해 ‘은어(銀魚)’라는 고운 이름을 내렸다. 그러나 뒷날 궁으로 돌아와 다시 찾은 그 생선은 예전의 맛이 아니었고, 임금은 “도로 묵이라 하라!”고 일렀다. 그 ‘도로 묵’이 ‘도루묵’이 됐다는 것이다. 임금이 선조인지, 그 이전인지는 문헌마다 달라 사실로 단정하기 어렵지만 이야기가 품은 뜻은 오래 곱씹을 만하다. 같은 음식도 처지와 상황에 따라 맛과 가치가 다르게 느껴진다는 점을 떠올리게 된다.

유래담을 모두 역사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다만 한 음식의 이름이 세대를 건너오며 사람들의 경험과 상상, 말의 변화를 함께 품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러니 음식 이름을 읽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을 읽는 일이다. 무엇을 귀히 여기고 무엇을 나누며 살아왔는지, 어떤 말로 세상을 바라봤는지가 그 이름으로 압축돼 있다.

우리는 대개 완성된 음식만 보지만, 한 그릇이 상에 오르기까지 쌓인 세월과 얽힌 사연을 함께 헤아릴 때 음식은 끼니를 넘어 하나의 작은 세계로 다가온다. 맛은 혀끝의 감각이지만, 그 멋은 담긴 이야기를 읽어 낼 때 비로소 피어난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거창한 문제만 다루는 일이 아니라 메뉴판의 한 글자, 식판 위 반찬 하나, 날마다 반복되는 한 끼에도 조용히 질문을 품는 일이다.

오늘 식사를 시작하기 전 단 몇 초만 이 음식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가만히 생각해 보자. 다음과 같이 다듬으면 앞 문장의 의미와 여운이 더욱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익숙한 것을 당연하게 흘려보내지 않는 마음에서 우리는 비로소 음식의 깊은 맛과 그 속에 깃든 삶의 이야기를 함께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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