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플리백'
문제투성이 주인공, 냉소와 허세 쉴 새 없이 쏟아내
객석 도피처 삼은 독백 수다 후 홀로서기 선언
배우 김히어라의 완급 조절된 몸짓과 연기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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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분이 9분처럼 흘렀다. 연극 ‘플리백(Fleabag)’이 선사한 황홀한 몰입감의 세계에서 즐겁게 허우적댔다.
무대에는 오직 배우 한 명과 의자 하나뿐. 하지만 빈 곳이 없다. 지루할 틈도 없다. ‘플리백’은 영국 배우이자 작가 피비 월러브리지가
대본을 쓰고 출연한 1인극이다. 2013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첫선을 보인 뒤 프린지 퍼스트상을 받았다.
런던 소호시어터를 거쳐 미국 오프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 진출했고, 2019년에는 내셔널시어터 라이브를 통해 세계 극장에서 상영됐다.
작은 공연장에서 태어난 한 여자의 발칙한 고백이 국경과 언어의 강을 건넜다.
무대의 성공은 TV로도 옮겨 갔다. 동명의 드라마 ‘플리백’은 2019년 에미상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연출상 등을 포함해 6개 상을 받았다. 연극에서 출발한 주인공의 캐릭터 특성과 관객에게 직접 속내를 털어놓는 방식이 영상에서도 통했다. 연극과 드라마를 모두 피비 월러브리지가 이끌었다는 점도 이 작품의 남다른 이력이다.
제목인 ‘플리백’은 지저분한 사람, 문제투성이인 사람, 누추한 곳을 뜻한다. 주인공은 이름처럼 어딘가 망가져 있다. 런던의 한 골목에서 파산 직전의 기니피그 콘셉트 카페를 운영 중이다. 성공한 언니와는 툭하면 부딪힌다. 아버지는 새어머니의 눈치를 살피고, 남자친구와는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한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나선 면접에선 사고를 치고, 외로워지면 낯선 남자를 찾아 나선다.
그의 삶 한가운데는 세상을 떠난 친구가 있다. 가족과 연인에게 받은 상처가 있지만,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남긴 상처 역시 만만치 않다. 성적 농담과 욕설, 냉소와 허세가 쉴 새 없이 튀어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면 남이 공격할 몫이 줄어든다. 먼저 비웃으면 버림받더라도 덜 아플지 모른다. 플리백에게 허세 섞인 농담은 일종의 갑옷이다.
그 갑옷에 손을 대는 사람은 관객이다. 플리백은 관객을 향해 수시로 고개를 돌린다. 타인에게 들려주지 못하는 생각을 속삭이고, 눈을 맞추고, 반응을 살핀다. 제4의 벽이 흐물흐물해진다. 관객은 처음엔 낯선 여자의 수다를 듣는다. 잠시 뒤에는 그의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나름 다정한 공범이 돼 간다.
한국 초연은 김히어라, 김주연, 김규남이 플리백을 번갈아 맡고 있다. 배우만 바꾸는 일반적인 트리플 캐스팅과는 다른 점이 많다. 무엇보다 제작진은 세 배우가 해석한 플리백에 맞춰 무대와 음향, 조명을 각각 달리 설계했다.
이 중에서 김히어라의 플리백을 봤다. 김히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이사라’ 역으로 인지도가 급상승했지만, 원래 뮤지컬계에선 알아주는 실력파 배우다. 나 역시 그의 공연을 본 적이 없었지만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3명의 플리백은 조금씩 다르다. 김히어라 버전은 비어 있는 공간에 의자 하나만 둔다. 배우와 관객의 주고받기에 집중한 원작의 스탠드업 코미디 방식에 가까운 버전이다.
이날 김히어라는 자신의 매력적인 신체와 목소리라는 가장 확실한 무기로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의 빈틈을 지워 버렸다. 순식간에 관객의 오감을 흡수해 버리는 그의 독백이 시작되는 순간 극장 전체가 얼어붙고, 숨소리가 사라지고, 시선이 묶인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표정과 정교한 몸짓, 대사의 절묘한 완급 조절은 감탄을 부르는 기예다.
상대 배우는 없지만 플리백을 둘러싼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나타난다. 김히어라가 몸의 방향을 바꾸고 목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할 때마다 언니와 아버지, 연인, 카페 손님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의자는 카페가 되고, 집이 되고, 면접장이 된다.
김히어라는 무대 위 가상의 장벽을 수시로 허문다. 초 단위로 바뀌는 낯빛, 날카로운 움직임, 쫄깃하게 밀고 당기는 대사의 호흡이 객석의 혈관을 쥐락펴락한다. 관객은 어느 순간부터 타인의 호소를 들어주는 이방인이 아니게 된다. 그의 은밀한 세계에 발을 들이고, 참여하는 공범이 돼 간다. 이날의 김히어라에게선 윤석화가 자주 보였다.
이 작품의 엔딩도 마음에 쏙 들었다. 어찌 보면 우울하고 어둡고 참담한 이야기인데, 끝은 탄산수처럼 상쾌했다. 극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작가는 이 작품을 어떻게 마무리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예상하기도 하고 기대하기도 하는데, 가끔은 우려할 때도 있다.
이 작품 플리백은 뭐랄까 콜라도 아니고, 사이다도 아니고, 오란씨 느낌이었다. 달고 상큼하고 시원하지만, 쌉싸름한 그것.
플리백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가족과의 관계가 갑자기 좋아진 것도, 과거의 잘못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다만 마지막 순간,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지켜본 관객에게 느닷없이 작별을 고한다. 객석을 도피처로 삼았던 여자가 이제 혼자 걸어가겠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더 없이 상쾌한 것이다. 행복해져서가 아니다. 더는 관객 뒤에 숨지 않을 것 같아서다. 기적도, 교훈도 없다. 다만 내일 하루 정도는 자기 팔과 다리로 살아 낼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오란씨 한 병을 다 마시고 난 뒤처럼 달고 시원하고, 혀끝에는 조금 쓴맛이 남는다.
연극 ‘플리백’은 9월 6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한다. 김히어라의 청량한 탄산샤워를 맞고 돌아온 날, 실제로 비에 흠뻑 젖어 버리기도 했지만 마음은 더없이 상쾌하고 가벼웠다.
마음이 그의 이름처럼 하얘진 날.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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