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 우리 군은 안전한가
① 혐오에 물든 한국 사회 ‘비상등’
② 혐오는 어떻게 발생하고 확산하나
③ 우리 군의 대응은
④ 전문가 인터뷰
양극화가 낳은 증오, 혐오 낚는 가짜뉴스
개인의 삶 위협 넘어 공동체 신뢰 기반 무너뜨리다
경제적 불안 높을수록 특정 집단 희생양으로 삼아
이민자·외국인노동자·특정 성별…불만 대상 지목
온라인 플랫폼 ‘알고리즘’ 혐오 빠르게 유통·증폭
가짜정보, 진실보다 70% 더 공유…확산 속도 6배
음지의 문화로 간주되던 ‘혐오’가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새 ‘혐오’가 일상으로 스며들며 갈등과 분열의 씨앗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무심코 던진 비난과 혐오의 언어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사회를 내부로부터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군도 안전지대가 아닐 수 있습니다. 상호신뢰와 단결을 생명으로 하는 특성상 공동체 안위까지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국방일보는 3일부터 나흘간 심층기획 ‘혐오의 시대, 우리 군은 안전한가’ 시리즈를 게재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온라인을 점령한 ‘혐오문화’는 이제 단순한 개인 일탈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불안과 정치·경제적 양극화가 결합하며 사회구조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한 문제로 진화한 지 오래다. 온라인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과 익명성은 ‘혐오 확산’을 가속화하는 연료다. 이러한 환경에서 ‘혐오문화’는 문제점을 알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놀이와 결합해 그 심각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사회적인 ‘잠재적 폭발성’이 자가증식 중이다.
경제적 불안이 키우는 ‘희생양 찾기’
‘혐오’와 ‘사회 갈등’의 이면에는 경제적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자원이 부족하고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위기 원인을 경제구조나 제도 문제보다 특정 집단에서 찾으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희생양 찾기’ 현상이다. 이민자와 외국인 노동자, 특정 성별이나 세대처럼 눈에 띄는 집단이 사회적 불만과 불안의 대상으로 지목되기 쉽다는 의미다.
실제 국가인권위원회 인식조사에서 이 같은 상관관계를 보여 준다. 인권위가 2021년 10월 발표한 ‘온라인 혐오표현 인식조사’에 따르면 전국 15세 이상 1200명 대상 응답자의 59.5%가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이 늘어났다고 답했다. 또한 당시 응답자 90.2%가 사회적 갈등이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적 불안이 사회 전반의 긴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업률과 경제적 어려움이 일부 범죄 발생과 통계적으로 관련돼 있다는 것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등의 1990년부터 2020년까지 국내 시계열 자료 분석 연구에 따르면 실업률 상승은 절도와 지능범죄, 폭력범죄 발생률과 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된다. 해당 연구 모형 분석에 따르면 실업률이 1%포인트 상승할 때 절도, 지능범죄, 폭력범죄 발생률이 각각 12.7%, 1.5%, 0.3%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정치적 양극화 역시 혐오를 키우는 중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정치진영 간 대립이 심화할수록 상대 집단을 협력 대상이 아닌 위협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사회적 신뢰는 약화한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사회적 위기까지 겹치면 구성원들은 통제감을 잃고 공동체와 제도에 대한 신뢰를 더욱 거두기 쉽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계층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집단 간 갈등도 함께 커졌다”며 “여기에 혐오의 언어로 정치를 하는 풍토가 뿌리 깊게 자리 잡으면서 정치지도자들의 언어가 세대와 진영 간 혐오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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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보다 6배 빠른 가짜뉴스…익명성이 만드는 ‘고민 없는 동조’
혐오의 발생 배경에 오프라인의 구조적 압력이 있다면 빠른 유통과 증폭 통로로는 온라인 플랫폼이 지목된다. SNS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과거 사용 기록과 관심사에 맞는 정보를 반복적으로 제시하면서 선택적 노출을 강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이용자는 자신의 기존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주로 접하는 ‘에코 체임버 효과’에 갇히게 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연구진이 2018년 3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연구는 가짜뉴스의 빠른 확산구조를 보여 준다. 연구에 의하면 2006년부터 2017년까지 트위터에서 공유된 약 12만6000건의 뉴스정보를 분석한 결과 거짓정보는 진실보다 약 70% 더 많이 공유됐다. 가장 빠른 경우 진실보다 약 6배 빠르게 확산됐다. 연구진은 이런 현상이 자동화 프로그램(봇)보다 인간 이용자의 공유행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다. 자극적이고 새로운 정보일수록 이용자들의 관심과 공유를 더 많이 끌어냈다는 설명이다.
동질적인 의견이 반복되는 공간에선 개인의 생각이 충분한 검증이나 반론을 거치지 않은 채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특정 집단과 관련한 부정적 정보와 자극적 콘텐츠가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이용자는 실제보다 그 집단의 위험성과 문제를 더 크게 인식할 수 있다.
온라인공간 특유의 익명성도 혐오표현 확산의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익명성은 내부고발이나 소수자 발언, 민감한 경험의 고백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 기능을 갖는다. 반면 신원 노출과 평판 훼손의 부담을 줄여 공격적인 표현의 문턱을 낮출 가능성도 있다.
특정 커뮤니티 안에서 혐오표현이 유머나 놀이처럼 받아들여지면 개인은 발언의 차별성과 피해를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채 집단 분위기에 동조하기 쉽다. 이와 관련, 국가인권위원회 및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등 주요 기관의 연구보고서에서도 혐오표현의 주요 발생 원인으로 ‘문제의식 부재’와 ‘집단적 분위기에 휩쓸림’이 높게 집계된 바 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와 온라인공간에서 혐오 콘텐츠는 순식간에 퍼지고 또 빠르게 소비된다”며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혐오 소재를 만들어 내면서 혐오가 반복적으로 생산·소비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회적 자본 무너뜨리는 혐오와 갈등
처음엔 거부감을 느끼던 혐오표현도 반복해 접하면 어느새 일상적인 농담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혐오의 일상화’가 특정 집단에 관한 편견을 고착시키고 사회구성원 간 신뢰를 약화시켜 공동체의 결속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혐오는 개인의 삶을 위협할 뿐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 기반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자본’은 구성원 간 신뢰와 상호호혜의 규범,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망을 뜻한다. 혐오표현이 일상적인 언어습관처럼 굳어지면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한 구성원 사이 최소한의 신뢰와 존중이 약해질 수 있다. 상대 집단을 대화하거나 협력해야 할 시민이 아니라 경계하고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집단 간 신뢰가 약해지면 사회구성원들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도 떨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진행된다는 점이다. 혐오표현이 하나의 ‘유머’나 ‘드립’으로 소비되고 일상적인 언어에 스며들수록 사람들은 표현에 담긴 차별성과 피해를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러한 둔감화는 더 강한 표현이 등장하고 용인되는 환경을 만들 위험이 있다. 처음엔 과격하다고 느꼈던 표현도 반복해 접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진 표현은 다시 새로운 혐오표현의 심리적 문턱을 낮추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송재룡 교수는 “온라인에서는 혐오가 하나의 소비 콘텐츠처럼 반복된다”며 “이런 환경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혐오표현에 점점 둔감해지고, 공동체가 공유해야 할 도덕적 기준과 사회적 신뢰도 약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혐오와 갈등을 줄이기 위한 조치가 시급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혐오와 갈등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국민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완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공정한 사회규칙을 확립하고, 경제성장의 성과가 특정 계층에 집중되지 않도록 보다 고르게 분배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권의 책임도 필요하다. 최항섭 교수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권을 잡으면 상대 세력을 완전히 배제하려는 정치가 반복된다”며 “사회통합을 위해서는 정치지도자들이 서로를 수용하고 통합하려는 메시지와 제스처를 지속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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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세계인권선언 기반한 혐오표현방지법 마련
EU, 온라인 플랫폼 관리책임 강화
캐나다, 고의성 있을 땐 징역 2년
세계 각국은 급속하게 퍼지는 혐오와 증오범죄에 맞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세계인권선언에 기반한 혐오표현 금지법안을 두고 있다. 특히 다종교·다인종 사회가 정착한 서방 선진국들은 인종·성별·종교 등에 바탕을 둔 ‘혐오방지법’을 토대로 혐오 확산을 막고 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적 반성을 배경으로 사실상 대부분의 혐오표현을 법으로 금지한다. 이에 인종적·신체적·정신적 특성에 근거한 모욕죄까지 적용하고 있다. 독일 형법상 ‘민중선동죄’는 공공의 평화를 해칠 수 있는 방식으로 국가적·인종적·종교적 집단 등에 관한 증오를 선동하거나 폭력을 촉구한 행위를 처벌한다. 나치정권 아래 집단학살을 공개적으로 승인·부정·축소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다.
영국은 공공질서법 등에 의해 인종·종교·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증오 선동을 처벌한다. 또한 온라인안전법에 따라 플랫폼에 불법 콘텐츠의 위험을 평가하고 관리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프랑스도 언론자유법과 형법 등을 통해 출신·인종·종교·성별·성적 지향·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차별이나 증오,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를 처벌한다. 유럽연합(EU) 디지털서비스법은 2024년 2월 전면 적용돼 SNS를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의 불법 콘텐츠 신고·처리와 투명성, 대규모 플랫폼의 시스템 위험관리 책임을 강화했다.
캐나다에선 고의성 있는 혐오표현을 쓴 사람은 징역 2년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 최초의 차별금지법으로 꼽히는 캐나다 인권법은 결혼 여부, 전과, 성적 지향, 고용형태 등 차별행위를 폭넓게 보고 있다.
우리의 경우 혐오표현을 직접적으로 규정해 규율하는 법률은 없다. 대신 ‘형법’에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비롯해 ‘국가인권위원회법’과 ‘공직선거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정보통신망법’ ‘방송법’ 등 다양한 개별 법령에서 타인을 향한 모욕과 비하·위협, 차별과 폭력의 선전·선동을 규제하고 있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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