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무대, 그래미의 모순

입력 2026. 08. 03   15:43
업데이트 2026. 08. 0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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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 사진=빅히트뮤직
그룹 방탄소년단. 사진=빅히트뮤직



방탄소년단, 그래미 어워즈 출품 거부 

BTS “지역·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신설에 시상식 보이콧
본상 주지 않으려 한다는 의혹은 과한 해석이지만
새로운 부문 심사할 이 적다는 비판 피하기 어려워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달 29일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의 개인 SNS 계정에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온 선언이다. 세계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보이그룹이 보기에 지역과 언어로 음악을 나눈 이들은 누구였을까. 대중음악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그래미 어워즈’다. 총 5회 노미네이트 및 3회 공연까지 그래미 어워즈에 한국 가수 최초로 이름을 올렸던 BTS는 내년에 열리는 ‘2027 그래미 어워즈’에 올해 발표한 정규앨범 ‘아리랑(ARIRANG)’을 출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음악시장이 떠들썩하다. 그래미를 주관하는 미국 레코딩아카데미는 보이콧 이후 하루가 지난 7월 30일 하비 메이슨 주니어 최고경영자(CEO) 명의로 공식 성명을 발표하며 진땀을 뺐다. 논란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BTS의 팬덤 ‘아미’부터 K팝 팬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감독 매기 강과 그룹 에픽하이의 타블로가 BTS를 지지하며 그래미 SNS 구독과 게시물 차단 등의 행동을 실천하고 있다.

BTS는 왜 그래미를 거부했을까. 그들이 밝힌 이유는 맨 처음 제시한 문장이 전부다. 시상식의 신설 부문에 답이 있다. 지난 6월 16일 레코딩아카데미는 내년에 열리는 제69회 시상식을 위해 5개 부문을 새로 발표했다. BTS가 불편함을 느낀 부분은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다. ‘아시아 팝 음악 퍼포먼스의 예술적 우수성을 인정하는 상’이라는 취지 아래 K팝, J팝, C팝을 포함해 아시아시장에서 유래했거나 널리 알려진 현대 대중음악이 심사 대상이다. 수상 자격으로는 각 시장에서 인정받는 멜로디 중심의 주류 팝과 상업 지향적 제작, 장르 혼합 편곡, 역동적인 구조적 변화의 음악을 특징으로 제시했다.

‘다이너마이트(Dynamite)’와 ‘버터(Butter)’로 그래미 최초 입후보 기록을 쓴 BTS부터 지난해 본상 부문 후보로 오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골든(Golden)’,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협업곡 ‘아파트(Apt.)’까지 그래미 내에서 존재감을 키워 가던 K팝에 대한 인정이다. 그렇다고 이 분과가 K팝만을 위한 축제는 아니다. 2020년대 들어 공격적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며 세계 2위의 음악시장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는 일본, 압도적인 언어권 인구를 바탕으로 영역을 넓혀 가는 중국, 언급하지 않았으나 글로벌 스트리밍시장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 음악까지 포용해 그래미의 일부로 가져오겠다는 뜻을 읽을 수 있다. 오래도록 그래미는 힙합, 라틴, 아프리카, 아시아 등 신진지역과 장르에 박한 평가를 내리며 음악가들의 비판을 받았다. 지난 2년간 250만 명 이상 시청자 수가 줄어든 상황에서 세계 음악시장의 변화를 느리게라도 따라가는 것은 시상식의 존속과 흥행을 위해서라도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문제는 규칙이다. 자격요건을 충족하려면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사용해야 하며, 아시아 언어를 최소한 또는 부수적으로만 쓴 녹음물은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레코딩아카데미는 6년 전 스스로 ‘월드 뮤직’을 ‘글로벌 뮤직’으로 개칭하며 식민주의, 포크, 비미국적 함의로부터의 결별을 선언했다. 지역과 언어를 부문 자격요건으로 삼겠다는 역사의 반복이 의아하다. 언어와 출신 및 시장이라는 2가지 모호한 기준은 발표 때부터 논란이었다. 함께 신설한 ‘베스트 라틴 송’ 분과는 그래미 내 복수 부문과 별도의 라틴 그래미 어워즈가 있지만 아시아 음악을 평가하는 부문은 100개 중 퍼포먼스 단 하나라는 점도 우려가 컸다. 앨범 대다수 가사가 영어로 쓰인 BTS의 ‘아리랑’ 후보 자격을 묻는 목소리가 이미 나오고 있었다.

레코딩아카데미는 뭇매를 맞고 있다. 오랜 시간 그래미 어워즈가 세계 음악시장의 다양한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탓에 그러잖아도 음악 팬들의 불만이 상당했다. 소수가 수상 결정권을 독점하던 ‘비밀위원회’ 시대의 업보다. 과거의 무지와 무시를 현재의 진보적 개선으로 극복하겠다는 태도가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아시안 팝 분야 비판은 유효하다.

단 지금 쏟아지는 모든 주장이 맞는 건 아니다. 설계의 결함과 의도의 불순함은 다르다. 본질적으로 미국 시상식임에도 폐쇄적이고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에 지난 몇 년간 레코딩아카데미는 강도 높은 내부 혁신을 거쳤다. 그래미 투표 자격은 음악을 주업으로 한다는 증명과 동료 추천 2인 등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며, 현재 총 투표 회원 1만5000명 중 73%가 2019년 이후 가입자들이다. 2025년 신규 회원들의 자기 식별 비율은 백인 31%, 히스패닉 28%, 흑인 20%, 미공개 11%다. 아시아·태평양계는 5%에 그친다. 부문을 만들며 심사할 이가 적다는 정확한 비판을 가해야 한다.

그래미가 특정 장르를 마이너한 부문에 제한하며 본상 부문(제너럴 필드) 트로피 수상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는 의혹은 과한 해석이다. 하비 메이슨 주니어 역시 공식 성명에서 “장르 범주에 음악을 제출한다고 아티스트가 본상 부문에 출품하고 심사받는 것을 배제하는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제68회 시상식에서 앨범의 모든 가사를 스페인어로 채운 라틴아메리카 음악의 슈퍼스타 배드 버니는 라틴 장르 분과와 함께 ‘올해의 앨범’ 부문을 수상하며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바 있다.

BTS는 이번 보이콧으로 많은 성과를 거뒀다. 5회 입후보, 0회 수상이라는 상처를 팝시장으로의 저항으로 전환했다. BTS의 현재 위상을 증명하는 사건이며 오늘날 시상식의 필요성, 장르 분류와 관련한 토론 등 나눌 이야기가 많다. 막상 들리는 이야기는 너무 과하다. 그래미가 아시아 음악을 언어로 분류하며 포용이라는 이름 아래 시청률을 높이고자 골몰하는 것이나 BTS를 기득권 및 인종차별과 싸우는 투사로 의미 부여하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내년 시상식 해당 분과에 BTS가 아닌 다른 K팝 가수가 수상하면 그때는 어떤 말을 할 것인가. 벌써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받는 데 누구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필자 김도헌은 대중음악평론가다. 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와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위원이다. 음악채널 제너레이트(ZENERATE)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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