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거리 미사일체계 ‘타이폰’
함정 미사일시스템을 지상서 운용
토마호크·SM-6 미사일 탑재 가능
컨테이너 위장 땐 위성서 식별 못 해
아·태 작전운용 준비…중·러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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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Tactical) 무기와 전략(Strategic) 무기를 가르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핵무기조차 전술핵과 전략핵으로 나뉘는데, 최신 전술핵의 위력은 과거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몇 배에 달하기도 한다. 나라에 따라 한국에서는 전략무기로 분류되는 무기가 미국에서는 전술무기로 분류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은 오랜만에 전략무기로 분류되는 새로운 체계를 갖췄다. 역설적인 점은 이 무기에 탑재되는 미사일들이 지금까지는 전술 미사일로 분류돼 왔다는 사실이다. 이번 ‘최신 무기의 세계’에서는 이런 모순적 특징을 지닌 ‘전략 중거리 포병 시스템(SMRF·Strategic Mid-range Fires System)’이라는 이름이 붙은 ‘타이폰(Typhon)’ 미사일 시스템을 다뤄본다.
이지스함 탑재 미사일 지상에서 발사
타이폰의 핵심 개념은 단순하다. 해군 구축함·순양함에 탑재되는 Mk 41 타격형(Strike Length) 수직발사장치(VLS) 셀 4기를 40피트(약 12m) ISO 컨테이너 크기의 발사대에 옮겨 실은 것이다. 발사대 1기는 최대 4발을 탑재할 수 있으며, 타이폰 1개 포대(Battery)는 발사대 4기와 트레일러 기반 포대 통제소(BOC·Battery Operations Center), 재장전 차량으로 구성된다.
즉, 타이폰 미사일 시스템은 새로운 발사대나 미사일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이지스함에 탑재하던 미사일을 지상에서 발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이 무기의 본질이다. 그런데 미국은 왜 이 시스템에 ‘전략’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그 답은 다영역 작전의 특성에 있다. 미군이 최근 러시아, 중국을 상대하기 위해 추진 중인 ‘다영역 작전’은 견고한 다층 방어체계를 갖춘 국가의 접근 거부(Anti-access/area denial·A2/AD) 전략을 뚫기 위해 여러 작전 영역을 넘나드는 능력을 중시한다. 미군은 사이버 무기로 지상의 장갑차를 무력화하고, 우주 위성으로 적 항공기를 추적하는 등 적보다 유리한 환경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타이폰 미사일은 미국 알레이버크(Arleigh Burke)급 이지스 구축함이 지닌 타격 능력의 극히 일부를 지상에 옮겨온 것에 불과하다. 127㎜ 함포도 없고 이지스 레이다도 없지만 은닉성에서는 함정과 전혀 다른 가치를 지닌다. 현재 중국은 태평양을 이동하는 이지스 구축함을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지만 컨테이너 크기의 타이폰 발사대가 수많은 컨테이너가 쌓인 야적장에 숨어 있거나, 트럭에 실려 이동하고 있다면 아무리 뛰어난 정찰위성으로도 이를 식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것이 타이폰이 지닌 진정한 가치다.
타이폰에 탑재되는 미사일 자체도 어떤 의미에서는 평범하지만 ‘은밀함’이라는 운용 방식이 이를 전략무기로 변모시킨다. 타이폰에는 RTX가 개발한 택티컬 토마호크(Tactical Tomahawk) 미사일과 스탠더드 SM-6 미사일이 탑재된다. 두 미사일 모두 이미 검증돼 실전에 투입된 바 있지만 초고속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하거나 극초음속으로 적진을 침투하는 무기는 아니다. 다만 최신형 블록V 토마호크는 최대 1600㎞ 이상을 비행해 중국과 러시아가 예측하기 어려운 태평양이나 유럽의 섬, 산악지대에서 기습 타격을 가할 수 있으며, SM-6는 위성이나 우군 레이다의 지원을 받아 적 항공기를 요격하거나 극초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지상의 핵심 표적을 타격할 수 있다.
타이폰은 개발 중인 무기가 아니라 이미 실전 배치가 완료된 검증된 체계다. 특히 2025년 7월 호주 노던 준주에서 열린 ‘탈리스만 세이버’ 연습에서 타이폰은 SM-6를 발사해 해상 표적을 성공적으로 침몰시켰다. 이는 개발 중인 극초음속 대함미사일보다 저렴하고 확실한 방식으로 적 함선을 타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다영역 작전의 실효성을 실증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미국은 타이폰의 생산과 배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FY2027 예산에서 타이폰 시스템 조달에 27억 달러를 의회에 요청했으며, 연구개발시험 및 평가(RDT&E) 비용으로 2억1200만 달러를 추가 편성했다. 유럽에도 타이폰을 운용하는 다영역 태스크포스(MDTF·Multi-Domain Task Force)를 올해 안에 편성할 예정으로, 미국은 이 시스템을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핵심 전력으로 키우고 있다.
과거 냉전 시기와 같은 정치적 논쟁도 재현
문제는 타이폰의 이러한 유연성이 지정학적 구도에까지 변화를 몰고 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국제정치의 한 변수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과거 옛소련이 지상발사 토마호크(TLAM)와 퍼싱Ⅱ 전술미사일의 유럽 배치에 크게 반발하며 핵전쟁 위협이 고조되자 결국 미국과 소련이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맺은 것과 비슷한 흐름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2025년 9월 일본 이와쿠니기지에서 열린 ‘리졸류트 드래건’ 연습에 타이폰이 등장하자 러시아 외무부는 즉각 항의했다. 러시아 외무부 안드레이 루덴코 차관은 “일본이 자국 영토를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시스템 배치 장소로 제공하는 것은 그 기간과 관계없이 러시아 극동 국경에 직접적 위협을 조성하는 조치”라며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로 반발했다. 중국 역시 관영 언론을 통해 “미·일 훈련과 타이폰 전개가 일본 내 반발과 역내 안보 우려를 불러오고 있다”며 일본을 비판했다.
타이폰의 등장은 우리에게도 여러 시사점을 던진다. 확실한 것은 타이폰과 같이 지상에 전개하는 원거리 미사일 전력이 전시에 우리를 위협하는 세력의 접근거부전략(A2/AD)을 무력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2025년 한국군사과학기술학회에서는 국내 국방과학 연구자들이 ‘함정 수직발사대의 지상기반 운용 연구’ 등을 통해 KDDX 차세대 구축함에 탑재될 KLVS-Ⅱ한국형 수직발사대를 해안 거점 방어체계에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타이폰이 보여준 치명성을 참고해 우리 실정에 맞는 새로운 개념의 방어체계를 고민해볼 시점이다.
필자 김민석은 에비에이션 위크 한국특파원으로, 국내 방위산업 소식을 해외에 소개하고 있다. 국내 매체 비즈한국 및 유튜브 채널에서 국내외 방위산업 소식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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