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독립운동가, 8월의 6·25전쟁 영웅

입력 2026. 08. 02   11:05
업데이트 2026. 08. 0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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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고인덕 선생, 이세영 선생, 한흥근 선생, 정시해 선생
(왼쪽부터) 고인덕 선생, 이세영 선생, 한흥근 선생, 정시해 선생

 

8월의 독립운동가 고인덕·이세영·한흥근·정시해 선생
의병~독립군까지 무장독립투쟁


국가보훈부(보훈부)는 의병에서 독립군까지 이어지는 무장독립투쟁에 헌신한 고인덕·이세영·한흥근·정시해 선생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무장독립투쟁은 국권을 잃은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힘으로 독립을 되찾기 위해 전개된 항일운동이다. 국내를 넘어 간도, 연해주, 중국 관내까지 활동 무대를 넓히면서 독립운동의 기반을 이뤘다.

고인덕(1887~1926) 선생은 의열단의 비밀 후원자로 활동했으며, 경남 밀양을 중심으로 청년운동과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폭탄제조기와 폭약을 제공해 밀양경찰서 투탄의거를 돕고, 사재를 의열단의 활동자금으로 기부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체포돼 옥중 순국했다.

이세영(1869~1941) 선생은 대한제국 군인 출신으로 의병전쟁에 참전한 뒤 만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을 양성했다. 이후 의병에서 독립군, 중국 관내 항일연대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에 걸쳐 무장독립운동을 이끌었다.

한흥근(1890~1944) 선생은 교사로 재직 중 민족교육운동에 투신했으며, 이후 만주로 망명했다가 연해주로 건너가 독립운동 동지를 규합하고 강우규 지사의 남대문역 투탄의거를 지원했다. 이후 만주·러시아 등지를 오가며 항일유격대를 조직해 항일무장투쟁을 이어 갔다.

정시해(1874~1906) 선생은 을사늑약 이후 최익현 의진에 합류해 호남과 영남 곳곳에서 병력을 모으고 전투를 이끌었다. 순창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하면서도 끝까지 국권 회복의지를 유언으로 남기면서 초기 의병항쟁의 정신을 보여 줬다.

 

 

(왼쪽부터) 해병대 3·4기생 상징탑, 로버트 리 티몬스 대위
(왼쪽부터) 해병대 3·4기생 상징탑, 로버트 리 티몬스 대위

 

8월의 6·25전쟁 영웅 해병대 3·4기생과 로버트 리 티몬스 미국 육군대위
전쟁 발발 두 달 만에 자원입대


같은 날 보훈부는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해병대 3·4기생과 로버트 리 티몬스 미국 육군대위를 ‘8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해병대 3·4기생은 해병대사령부의 제주 주둔시기 6·25전쟁이 일어난 지 불과 두 달 뒤 자원입대한 이들이다. 1950년 8월 5일 제주지역의 청년·교사·학생 등 1700여 명이 3기생으로 입대했고, 같은 달 30일에는 1250여 명이 4기생으로 입대했다.

4기생 가운데는 여성 지원자 126명도 있었다. 이들은 별도 훈련을 이수한 뒤 75명이 현역으로 근무하며 해군통제부와 각 참모부대, 진해 해군병원 등에서 복무했다.

해병대 3·4기생은 인천상륙작전(1950), 서울탈환작전(1950), 원산상륙작전(1950), 도솔산전투(1951), 장단(사천강)지구전투(1952~1953) 등에서 크게 활약했다.

로버트 리 티몬스 대위는 미 25보병사단 5연대 전투단의 중대장으로서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선의 명운이 걸린 서북산전투에 참전했다. 티몬스 대위는 북한군의 고지 점령을 저지하던 중 총격으로 부상을 입고 후송되다가 적의 공격을 받아 장렬히 전사했다. 당시 티몬스 대위의 아들은 일곱 살이었다. 이후 아들 리처드 티몬스는 주한미군 8군사령관으로 부임해 아버지가 전사한 곳을 찾기도 했다. 노성수 기자/사진=보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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