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 우리 군은 안전한가
① 혐오에 물든 한국 사회 ‘비상등’
② 혐오는 어떻게 발생하고 확산하나
③ 우리 군의 대응은?
④ 전문가 인터뷰
노인·여성·청년·이주민·피해자…특정 집단 낙인찍고 ‘희화화’
사회적 차별 공고히 하고 적대행위·폭력 선동하는 환경 만들어
‘표현의 자유’ 보장하는 동시에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 논의돼야
음지의 문화로 간주되던 ‘혐오’가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혐오’가 일상으로 스며들며 갈등과 분열의 씨앗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무심코 던진 비난과 혐오의 언어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사회를 내부로부터 붕괴시키고 있습니다. 군도 안전지대가 아닐 수 있습니다. 상호 신뢰와 단결을 생명으로 하는 군 특성상 공동체 안위까지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국방일보는 3일부터 나흘간 특별기획 시리즈 ‘혐오의 시대, 우리 군은 안전한가’를 게재하고 우리 사회와 군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위기는 항상 내부로부터 시작된다. 조그만 갈등이 분열을 초래하고 극단적 분열은 사회적 붕괴로 귀결된다. 동서고금을 망라하고 역사가 가르치는 교훈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혐오’라는 사회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단순 비난의 수준을 넘어 경멸과 모욕, 차별과 배제의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혐오가 조롱과 결합하며 일종의 놀이 문화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응원 구호 논란은 한국 사회에 스며든 혐오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학생들은 그 의미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이를 일종의 ‘응원 문화’이자 재미있는 놀이로 재생산하고 있다. 혐오가 놀이가 되고, 놀이가 일상이 되는 사이 한국 사회는 어느덧 차별과 배제의 언어에 점점 잠식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머와 놀이가 된 ‘일상 혐오’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혐오표현의 양상 가운데 하나는 ‘재미있는 말장난’이나 놀이 문화의 외형을 띈다는 점이다. 혐오표현이 농담과 유희로 가공되면서 발화자는 “그냥 장난이나 밈이었을 뿐”이라며 도덕적·사회적 책임을 쉽게 회피한다. 이를 듣는 이들 역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동일한 표현을 무비판적으로 반복하게 된다.
과거 여성 운전자를 비하하는 ‘김여사’를 비롯해 육아하는 여성을 겨냥한 ‘맘충’, 노년층을 비하하는 ‘틀딱’, 공공임대주택 거주 아동과 주민을 비하하는 ‘휴거’, 특정 성별과 계층을 공격하는 ‘한남’이나 ‘된장녀’ 등 끊임없이 대상을 가리지 않고 확산해 왔다.
특정 집단의 복잡한 개별성을 단 하나의 비하 단어로 낙인찍고 희화화하는 언어적 유희는 상대를 동등한 인간이 아닌 단순한 ‘유형’이나 ‘조롱거리’로 고착화한다. 발화자에게는 순간의 쾌감과 집단 내 유대감을 주는 수단일지 몰라도, 당사자에게는 공적 공간에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심각한 정신적 상흔과 고립감을 남긴다.
전문가들은 배재고 사태와 같은 현상을 단순한 철없는 학생들의 일탈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청소년기 사회화 과정에서 혐오표현을 ‘재미있는 언어 유희’로 습득한 세대가 성인이 되어 사회 주류로 진입할 때 발생할 파급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조롱과 비하에 무감각해진 채 자란 이들이 향후 기업, 학교, 정치, 언론, 정부 기관 등에서 사회적 의사결정 권한을 갖는 주체로 성장할 경우, 편견이 조직문화와 사회적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청소년기의 ‘놀이형 혐오’는 미래 사회의 공공성과 통합성을 흔드는 시한폭탄인 셈이다.
언어적 혐오가 폭력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국가인권위원회가 2021년 전국 만 15세 이상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9.3%가 온라인 혐오표현 문제를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인권위 관련 보고서들은 혐오표현을 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인 조롱·멸시·비하, 차별적 괴롭힘, 차별이나 폭력을 선전·선동하는 표현 등으로 분류한다. 이는 단순히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차원의 발언이 아니라, 사회적 차별을 공고히 하고 향후 폭력을 용인하게 만드는 토대가 된다는 지적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온라인 혐오 확산이 극단적인 오프라인 폭력으로 이어진 사례는 드물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 상태에 대해 절대 안심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고 진단한다. 반복되는 비인간화와 적대적 표현은 차별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특정 조건에서는 적대 행위나 폭력을 선동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처음에는 가벼운 농담이나 밈으로 소비되던 표현이 집단적 편견을 공고히 하고, 이후 차별적 행위를 ‘정당한 대응’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오프라인에서의 물리적 공격이나 배제 행동으로 분출될 위험성을 내포한다.
이미 국내에서도 난민과 이주민, 성소수자,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 등을 둘러싸고 온라인에서 표출된 적대감이 반대 집회와 맞불 집회, 현장에서의 언어적 충돌로 이어진 사례도 발생했다. 플랫폼의 추천 구조와 정치권의 갈등 동원 방식이 혐오표현의 확산에 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언어적 혐오는 언제든 오프라인의 물리적 폭력과 집단적 충돌로 비화할 수 있는 잠재적 리스크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일부 극단주의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쉽게 혐오 표현에 동참하는 환경”이라며 “혐오표현이 놀이문화처럼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점은 오히려 더 위험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혐오 규제 vs 표현의 자유’ 대립 구도의 함정
혐오표현 대응을 논할 때 가장 첨예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표현의 자유다. 혐오발언에 대한 법적 제재가 자칫 정부나 다수 세력이 불편한 의견을 억압하는 검열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문제제기다.
그렇다고 혐오표현에 대한 모든 대응을 표현의 자유 침해로만 규정하기도 어렵다. 혐오표현이 특정 집단을 공론장에서 위축시키고 의견 개진의 기회를 뺏는다면, 형식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 있더라도 구성원들이 이를 동등하게 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제인권규범도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는 동시에 타인의 권리·명예 보호, 국가안보·공공질서·공중보건·도덕 보호를 위해서는 제한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표현을 제한하려면 명확한 법률에 근거해야 하고, 발언의 맥락과 내용, 발화자의 영향력, 확산 범위, 실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 등을 따져 필요성과 비례성을 엄격하게 충족해야 한다.
홍 교수는 저서《말이 칼이 될 때》에서 혐오표현의 해악을 지적하면서도, 대응 방식이 형사처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법적 대응과 함께 교육, 사회적 토론, 시민사회의 대응 등 다양한 수단을 병행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의 혐오는 노골적인 선동보다 조롱이나 밈처럼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확산되고 있다”며 “조롱이나 밈 형태의 표현을 일일이 규제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는 답을 찾기 어렵다. 혐오 문화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노력을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갈등을 ‘자산’으로…지구촌 덮친 증오의 정치
혐오의 광풍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지구촌 전역이 인종과 종교, 젠더, 세대 갈등으로 분열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갈등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증오의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다르다. 상대를 경쟁자가 아닌 공존할 수 없는 배척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감정이 각국 정치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인종과 종교, 성별, 세대, 지역, 장애, 성적 지향 등 혐오 대상도 점점 넓어지는 추세다.
이주민과 소수자 향한 ‘차별·폭력’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배척의 감정’이 사망자까지 발생하는 집단 폭력으로 분출되고 있다. 지난 6월엔 반(反)이주민 단체들이 불법이민자 자진 출국을 압박하며 남아공 전역에서 극렬한 폭력 시위를 행사, 900여 명이 체포됐다.
남아공에선 높은 실업률과 빈곤, 주거·공공서비스 부족에 대한 불만이 외국인 이주민에게 전가되면서 외국인 혐오 폭력이 반복됐다.
한 대학 연구에 의하면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2026년 7월 6일까지 남아공에서 발생한 외국인 혐오증 관련 범죄는 모두 1343건(누적 사망자 703명)에 이른다.
남아공의 경우 반이주민 폭력 대상이 나이지리아 등 주변 국가들의 국민이라는 측면에서 ‘외국인 혐오’는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유럽도 반이민 정서와 허위 정보가 결합한 ‘폭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6월 북아일랜드에서는 수단 출신 난민이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뒤 관련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하면서 반이민 정서가 급격히 고조돼 시위가 폭동으로 번졌다. 복면을 쓴 시위대는 이민자들의 거주지와 상점, 차량 등을 공격하고 방화를 저질렀다. 경찰은 이번 폭력 사태의 상당 부분이 온라인에서 조직·선동된 것으로 파악했다.
2024년 영국 사우스포트 흉기 난동 직후 SNS에서 범인이 ‘무슬림 난민’이라는 거짓 정보가 확산하자, 극우 세력이 주도한 폭동이 영국 여러 도시로 퍼졌다. 사우스포트에서는 이슬람 사원과 상점이 공격받았고, 로더럼과 탬워스 등에서는 망명 신청자들이 머물던 호텔에 방화가 시도됐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도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반감은 극우·급진우파 정당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극우 진영에서는 합법 체류자나 시민권자를 포함한 이주 배경 주민을 대규모로 내보내자는 ‘재이주’ 구상이 확산하며 정치적 논란을 일으켰다. 과거 극단주의 세력의 주변부 담론이던 개념이 일부 정당과 정치인의 언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종과 이민, 낙태, 젠더와 성소수자 권리 등을 둘러싼 이른바 ‘문화전쟁’이 정치적 양극화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일부 백인우월주의·극우 세력은 인종적 다양성과 이민, 소수자 권리의 확대를 기존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며 적대감을 부추겼다.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의 대규모 불법이민 단속과 강제추방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전국 곳곳에서 반이민 시위와 이에 맞서는 친이민 집회가 이어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충돌과 폭력 사태까지 벌어졌다.
특히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서는 아이티계 이주민을 겨냥한 허위 정보가 온라인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며 협박과 괴롭힘, 지역사회 불안으로 이어졌다. 이후에도 아이티계 주민들은 혐오와 차별, 강제추방 우려에 시달리고 있다.
세대·젠더 갈등, 세계적 현상… 공공 차원 대응 필요 공감대
세대와 젠더 갈등 역시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주요국에서는 연금 재정과 복지 비용 부담을 둘러싸고 청년층과 노년층 간의 세대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젠더 영역에서는 ‘유해한 남성성’ 담론에 대한 반발과 여성주의 확산에 대한 기득권·남성층의 저항이 맞물리면서, 젊은 남성층을 중심으로 한 보수화·포퓰리즘 기류가 뚜렷해지는 추세다. 외신들은 가부장제 해체와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소외감을 느낀 젊은 남성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혐오 및 반페미니즘 담론을 형성하고, 이를 극우·포퓰리즘 정치 세력이 표심으로 포섭하는 구조가 미국과 한국, 유럽 등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다고 분석한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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