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향한 인류의 갑옷 생명을 잇는 한 땀, 과학의 진화 한 땀 

입력 2026. 07. 28   16:25
업데이트 2026. 07. 2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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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예술 - 테크놀로지의 정점 ‘우주복’

극한 환경 견딜 섬세한 재봉, 최첨단 합성 섬유…
의복 공학의 정수, 완벽한 소형 우주선 그 자체
최근엔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해 기술 공유도

 

액시엄 스페이스와 프라다가 협업해 제작한 우주복. 보호기능을 넘어서 착용감과 성능까지 개선했다. 액시엄 스페이스 제공
액시엄 스페이스와 프라다가 협업해 제작한 우주복. 보호기능을 넘어서 착용감과 성능까지 개선했다. 액시엄 스페이스 제공



1634년 요하네스 케플러가 『꿈(Somnium)』을 통해 묘사한 달 여행에 대한 과학적 상상력은 대기를 벗어난 척박한 세상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는 우주의 가혹함을 극복하기 위해 우선 정교한 공학적 보호 장구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지며 우주복 역사의 서막을 열었다.

케플러의 과학적 상상에서 비롯된 우주여행에 대한 ‘사전준비’가 실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 고고도(高高度) 비행과 열기구 탐험이 본격화되면서부터다. 1934년 미국의 비행사 와일리 포스트는 토마토 애벌레의 마디 구조를 응용해 고무와 직물을 겹겹이 덧댄 투박한 고도 압력복을 착용하고 성층권 진입에 도전했다. 이 사건은 대기압의 상실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려는 최초의 유의미한 시도였다.

이 원시적인 형태의 압력복이 진정한 의미의 우주복으로 진화한 시점은 냉전이라는 전례 없는 이데올로기 시대였다. 핵무기의 공포가 복잡하게 얽힌 현대 사회에서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은 이데올로기적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한 가장 극적이고도 웅장한 무대로 우주를 선택했다. 숨 막히는 체제 경쟁 속에서 우주복은 역사상 가장 막대한 자본과 최상위의 극비·첨단 군사 기술이 집약된 정치적 상징물로 변모했다. 1961년 유리 가가린이 착용했던 소련의 주황색 SK-1 우주복이나 미국의 머큐리 계획(Mercury program) 초기에 사용된 은빛 압력복은 본질적으로 전투기 조종사들의 고고도 비행복을 개조한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는 곧이어 벌어질 치열한 달 착륙 경쟁을 위한 기술적 마중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극한 환경에서의 생존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기여했다.

진공 상태의 우주 공간으로 직접 나서는 선외활동(EVA)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우주복은 더 이상 선내의 비상용 보호복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벽하게 기능하는 소형 우주선이 돼야만 했다. 이 난제를 해결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거대한 항공 우주 기업이나 방위산업체가 아닌 여성용 란제리와 고무 제품을 주로 생산하던 ‘아이엘씨 도버(ILC Dover)’의 섬세한 텍스타일 재봉 기술이었다. 아폴로 계획을 위해 탄생한 A7L 우주복(A7L space suit)은 미세 운석의 시속 수만㎞에 달하는 무자비한 물리적 충격과 섭씨 수백 도를 오르내리는 극단적인 열편차, 치명적인 자외선과 열복사를 방어하기 위해 테플론(Teflon), 캡톤(Kapton), 마일라(Mylar) 등 무려 스물한 겹의 최첨단 합성 섬유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겹쳐 봉제한 인류 의복 공학의 찬란한 정수였다.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 1호 발사 직전 SK-1 우주복을 입은 유리 가가린. 가가린은 식별이 쉽도록 밝은 주황색 우주복을 입었고, 스파이로 오해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 헬멧에 소련의 약자인 ‘CCCP’란 표기를 넣었다. 필자 제공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 1호 발사 직전 SK-1 우주복을 입은 유리 가가린. 가가린은 식별이 쉽도록 밝은 주황색 우주복을 입었고, 스파이로 오해받는 일을 피하기 위해 헬멧에 소련의 약자인 ‘CCCP’란 표기를 넣었다. 필자 제공



1969년 닐 암스트롱이 고요한 바다(Sea of Tranquillity)의 미세한 먼지 위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을 때 그가 입고 있던 육중하고도 유연한 백색 실루엣은 단순히 과학 기술의 승리를 넘어 2차 세계대전이라는 총력전 이후의 불안정한 국제질서 속에서 미국이 쟁취해 낸 범지구적 패권의 시각적 선포이자 현대 대중매체를 통해 전 세계로 실시간 송출된 가장 압도적인 스펙터클이었다.

냉전과 함께 소비에트연방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중심으로 한 지구 저궤도에서의 다국적 협력 시대가 도래하며 우주복의 발전 양상은 새로운 지정학적 국면을 맞는다. 미지의 우주 탐사보다는 궤도상의 구조물 조립과 장기적인 유지보수에 초점이 맞춰짐에 따라 모듈화와 내구성이 극도로 강조된 선외활동장치(EMU)가 표준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21세기에 접어들어 글로벌 금융과 촘촘한 공급망이 전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경제 블록으로 엮어내고 국가 주도의 거대 프로젝트가 민간 자본의 효율성 논리로 빠르게 대체되는 현대 추세에 발맞춰 이른바 ‘뉴 스페이스(New Space)’로 불리는 상업 우주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하면서 우주복은 국가 기관의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소유물이 아닌 민간 기업들의 혁신적인 기술력과 막대한 자본이 격돌하는 새로운 형태의 첨단 산업 플랫폼으로 극적인 변모를 꾀하게 된다.



1969년 7월 20일 달에서 A7L 우주복을 입고 활동하고 있는 버즈 올드린. NASA 제공
1969년 7월 20일 달에서 A7L 우주복을 입고 활동하고 있는 버즈 올드린. NASA 제공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수십 년간 이뤄진 오늘날 우주복을 다루는 선도적인 브랜드들은 과거의 경직된 국가 주도 방법론에서 완벽하게 탈피하고, 하이테크 소재 공학과 최상위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정교한 장인 정신을 융합하는 파격적인 방법론을 통해 실제 제품으로 증명해 내고 있다. 상업용 선외활동을 목적으로 한 폴라리스 던(Polaris Dawn) 임무를 위해 스페이스 엑스(Space X)가 자체 개발한 최신 선외활동 우주복은 전통적으로 엄격하게 분리돼 있던 선내복과 선외복의 경계를 허물었다. 스페이스 엑스는 화염에 강한 신축성 섬유와 다중 구조의 확장 가능한 열 관리 시스템을 적용하고 3D 프린팅 기술로 제작된 폴리카보네이트 헬멧 내부에 실시간으로 우주비행사의 생명 유지 데이터를 직관적으로 투사하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내장해 우주복 자체를 항공전자 장비와 동기화하는 고도의 통합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상업용 우주정거장 기업 액시엄 스페이스(Axiom Space)는 아르테미스 계획(Artemis program)을 지원하기 위해 세계적인 이탈리아의 럭셔리 하우스 프라다와 협력해 차세대 우주복인 액시엄 선외활동 이동 유닛(AxEMU)을 개발했다. 2024년 10월 실물 디자인을 전격 공개한 AxEMU는 단순히 상징적인 브랜드 협업을 넘어 프라다가 오랜 세월 축적해 온 고도의 3차원 엔지니어드 니팅(engineered knitting) 기술과 구조적 복합재료 가공 기법을 우주복 설계에 직접 이식함으로써 과거 국가 주도 체제에서의 규격화된 기성품 사이즈 체계에서 과감히 벗어나 개별 우주비행사의 고유한 체형에 완벽하게 밀착되는 비스포크 테일러링을 구현해 냈다. 또 테플론과 노멕스(Nomex), 그리고 케블라(Kevlar)를 정밀하게 직조한 특수 소재를 사용해 달의 남극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인 마찰을 방지하고 장장 8시간 이상 지속되는 선외활동 동안의 극한 환경과 먼지로부터 안전하게 제어하는 압도적인 공학적 완결성을 달성하고 있다.

우주복은 인간이 결코 허락받지 못한 절망적인 진공의 심연을 거닐기 위해 만든 가장 경이로운 생존의 장막이자 궤적의 증명이다. 다층의 섬유가 결합된 우주복의 구조적 형태 속에는 미지의 우주 공간을 향한 원초적인 두려움과 그것을 기어이 정복해 발자국을 남기고야 말겠다는 인류의 찬란한 집념이 촘촘하게 박음질돼 있다.


필자 이상희는 수원대 디자인앤아트대학 학장 겸 미술대학원 원장, 고운미술관 관장, 패션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사)한국패션디자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이상희는 수원대 디자인앤아트대학 학장 겸 미술대학원 원장, 고운미술관 관장, 패션디자인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사)한국패션디자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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