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과 AI, 전장의 공식이 바뀐다
AI, 70년 진화의 압축 연대기
1642년 톱니바퀴 덧셈장치 등장
1936년 튜링, 컴퓨터 이론 토대 마련
소설가 아시모프 ‘로봇 3원칙’ 정립
1956년 공식 학술용어로 AI 첫 등장
체스·퀴즈쇼·바둑 차례로 인간 앞서
2022년 챗GPT, 일상 속 AI 시대 활짝
1940년대 초 영국 블레츨리파크의 막사에서 한 수학자가 만든 기계가 전쟁의 향방을 바꾸고 있었다. 앨런 튜링이 동료들과 고안한 ‘봄베(Bombe)’는 독일군이 철석같이 믿던 암호기 에니그마(Enigma)의 설정을 빠르게 풀어냈다. 그렇게 새어 나온 적의 통신은 연합군 작전을 떠받쳤다. 역사가들은 블레츨리파크의 암호 해독이 전쟁을 수년 앞당겨 끝냈다고 본다. 정작 그 공로는 수십 년간 기밀에 묶여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튜링 자신은 전후 박해 속에서 1954년 42세로 세상을 떠났다.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대신해 전장을 바꾼 첫 번째 장면의 한가운데에 훗날 ‘인공지능(AI)의 아버지’로 불릴 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기계’의 꿈은 튜링보다 3세기 앞서 싹텄다. 인공지능의 뿌리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계산을 기계로 옮기려는 시도였다. 1642년 19세의 프랑스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세무공무원이던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톱니바퀴식 덧셈장치 ‘파스칼린(Pascaline)’을 만들었다. 30여 년 뒤 독일의 라이프니츠는 여기에 곱셈과 나눗셈을 얹은 ‘계단식 계산기’를 완성하고 이진법 산술과 논리계산의 가능성을 함께 제시했다.
19세기에 이르러 영국의 찰스 배비지는 구멍을 뚫어 정보를 새긴 카드(punched card)로 명령을 입력해 임의의 계산을 수행하는 ‘해석기관(Analytical Engine)’ 설계를 내놓았다. 동료 수학자 에이다 러브레이스는 그 기계가 단순한 산술을 넘어 음악과 그림까지 처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첫 번째 프로그래머로 불리는 그의 통찰은 한 세기를 앞서간 것이었다.
흩어져 있던 이 발상들을 하나의 이론으로 묶은 인물이 바로 튜링이다. 1936년 그는 논문에서 무한히 긴 테이프와 단순한 상태 전이 규칙만으로 모든 계산을 흉내 낼 수 있는 가상 장치 ‘튜링 기계(Turing Machine)’를 제안했다. 이 추상 모델은 현대 컴퓨터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봄베는 그 이론이 전장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사례였던 셈이다.
1945~1946년 미국에서 에니악(ENIAC)·에드박(EDVAC) 같은 진공관 컴퓨터가 등장하고 존 폰 노이만이 정리한 프로그램 내장 방식이 표준 구조로 자리 잡았다. 이후 트랜지스터(1947), 집적회로(1958), 마이크로프로세서(1971)로 이어지는 반도체 혁명을 거치며 컴퓨터의 처리능력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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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AI가 학문으로 제도화되기 14년 전에 이미 문학이 윤리적 상상을 먼저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1942년 3월 SF잡지 ‘어스타운딩 사이언스 픽션’에 실린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런어라운드’에 그 유명한 ‘로봇 3원칙’이 처음 명시됐다.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거나 위험에 처한 인간을 외면해서는 안 되고(제1원칙), 제1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며(제2원칙), 앞의 두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제3원칙)는 것이다. 아시모프는 1985년 소설 『로봇과 제국』에서 ‘인류 전체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0원칙’을 덧붙였다. 단순한 SF 설정처럼 보이지만 이 규약은 오늘날 자율살상무기(LAWS) 규제 논의와 한국이 주도한 ‘군사분야 책임 있는 인공지능(REAIM)’ 회의의 ‘행동을 위한 청사진’까지 흐르는 사고의 원류로 자리 잡았다.
학문으로서의 출발은 1956년 여름이다. 그해 6월 18일부터 8주 동안 미국 다트머스대학에 존 매카시, 마빈 민스키, 클로드 섀넌, 나다니엘 로체스터를 비롯한 10여 명의 수학자·공학자가 모였다. 매카시가 1955년 워크숍 제안서에 처음 적어 넣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공식 학술용어로 등장한 자리였다. 제안서는 학습을 비롯한 지능의 모든 측면을 원리적으로 기술할 수 있고 따라서 기계가 이를 모사하게 만들 수 있다는 가설을 내걸었다. 이 자리에는 최초의 정리증명 프로그램을 개발한 앨런 뉴얼과 허버트 사이먼, AI 체스의 선구자 아서 새뮤얼도 함께했다.
이후 AI는 두 차례의 ‘겨울’을 겪었다. 1960년대 초기의 낙관은 1974년경 자원 부족과 성능 한계로 꺾였고, 1980년대 전문가 시스템의 부흥도 1987년경 다시 한계에 부딪혔다. 그 사이 컴퓨터의 연산력과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1997년 IBM ‘딥블루’가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었다. 2011년에는 IBM ‘왓슨’이 미국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 챔피언을 이겼다. 2012년 토론토대학팀의 이미지 인식 모델 ‘알렉스넷(AlexNet)’이 딥러닝 시대를 열었다. 2016년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AlphaGo)’가 이세돌 9단을 4 대 1로 꺾으면서 한국 대중에게도 AI의 위력이 각인됐다. 2017년 발표된 트랜스포머 구조는 2022년 챗GPT로 이어져 일상 속 생성형 AI 시대를 열었다.
챗GPT가 사람처럼 대화하는 시대에 이르자 70여 년 전 튜링이 던진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그는 1950년 논문 ‘계산기계와 지능’에서, 심사자가 대화 끝에 상대가 기계인지 사람인지 가려내지 못하면 합격이라는 ‘튜링 테스트’를 제안해 두었다. 이후 수십 년간 통과를 주장한 사례마다 ‘꼼수 논란’이 따랐으나, 학계가 비교적 공식적인 통과로 받아들인 것은 2025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연구진의 실험이다. 사람과 AI를 같은 자리에 두고 대화시키는 표준 3자 튜링 테스트에서 오픈AI의 GPT-4.5가 73%의 비율로 ‘사람’으로 지목됐고, 메타의 LLaMa-3.1-405B도 56%에 이르렀다. 사람보다 더 사람 같다는 평가를 받은 첫 AI가 등장한 셈이다.
튜링의 기계가 전장의 암호를 풀던 1940년대에서 그 기계가 사람과 구분되지 않는 단계에 이른 오늘에 이르기까지 70여 년이 걸렸다. 파스칼의 톱니바퀴에서 시작된 계산의 꿈이 튜링의 추상 모델과 다트머스의 8주 워크숍을 거쳐 여기까지 온 것이다.
다음 회부터는 AI가 드론과 로봇이라는 몸을 얻어 지상·해상·공중·우주에서 어떻게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지, 그리고 인간이 아시모프의 ‘0원칙’으로 그어둔 선이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를 영역별로 따라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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