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심층 기획 강군의 조건 '민주군대'
① 민주군대는 왜 강한가?
② 민주군대의 선택 ‘제복 입은 시민’
③ 군에서 익히는 ‘다양성과 소통 능력’
④ 대한민국 군대의 변화와 성숙
⑤ 전문가 인터뷰
2차 세계대전 이후 군림하는 조직 대신 ‘헌법 질서 우선’ 공감대
헌법 위반한 상관 명령에 문제 제기해야 할 책임도 군인의 의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사명감, 현대 군 전투력 좌우 핵심 요소로
강한 안보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국방일보는 군 전투력에 있어 ‘민주주의 가치’가 가지는 중요성과 우리 군이 지향하고 있는 방향에 대해 집중 조명하는 심층기획 ‘강군의 조건 민주군대’ 시리즈를 27일부터 5일간 게재합니다. 더불어 이번 시리즈를 통해 민주적 통제와 인권·자율적 책임 기반의 ‘민주군대’가 왜 미래 국방의 필수 요건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심도 있게 분석, 전달해드립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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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은 국가가 부여한 물리력을 행사하는 존재다. 전시와 작전에서는 상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조직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인은 단순히 명령에 복종하는 전사가 아니다. 헌법 질서를 수호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제복 입은 시민’이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함께 갖는다. 오늘날 세계 주요 민주국가들은 첨단무기보다 이를 운용하는 사람의 가치관과 책임감이 군의 전투력을 좌우한다고 보고,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군인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우리 군 역시 헌법 가치 교육과 병영문화 혁신을 통해 ‘민주가치로 무장한 군대’를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군인은 시민이다”…민주군대가 선택한 길
군인을 시민으로 바라보는 개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전체주의와 군국주의가 초래한 참혹한 전쟁을 경험한 국가들은 군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 아니라 헌법 질서와 자유를 지키는 조직이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독일은 이를 가장 체계적으로 제도화한 국가다. 독일 연방군은 창설 당시부터 ‘제복 입은 시민’을 군 운영 철학으로 채택했다. 군인은 군복을 입기 전에도, 벗은 뒤에도 민주주의 시민이며 군 복무는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확장한 공적 책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철학은 ‘내적 지휘’라는 독일군 고유의 리더십 체계로 발전했다. 독일 장병들은 전투기술뿐 아니라 헌법과 민주주의, 기본권, 군인의 윤리를 함께 교육받는다. 상관의 명령에 대한 복종은 군 조직의 기본 원칙이지만, 그 명령이 헌법과 법률을 명백히 위반할 경우 문제를 제기해야 할 책임도 군인의 의무로 가르친다.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헌법에 대한 충성이 군인의 최우선 가치라는 것이다.
이 같은 철학은 독일군의 전투력을 약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일 연방군은 나토의 주요 회원국으로서 국제 평화유지 활동과 나토 연합훈련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민주주의 가치와 군사 전문성이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미국 역시 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한 충성을 군인의 핵심 가치로 강조한다. 미군 장병은 입대할 때 특정 대통령이나 정부가 아닌 미국 헌법을 수호하고 방어하겠다는 선서를 한다. 군사교육 과정에서도 헌법 질서와 문민통제, 군인의 윤리와 법치주의를 중요한 교육 내용으로 다룬다. 군인은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인 만큼 민주주의 원칙과 법률을 이해하고 준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군 조직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철학은 2020년 미국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광장 시위 당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연방군 투입을 검토하자 마크 에스퍼 당시 국방장관은 “정규군 투입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같은 시기 마크 밀리 당시 합참의장은 대통령의 행사에 동행한 것이 국내 정치에 관여한다는 오해를 일으켰다고 공개 사과했고, 퇴임사에서는 “우리는 왕이나 독재자, 개인이 아니라 헌법에 맹세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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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군인이 강한 이유
학계에서는 군대의 역할과 문민통제를 두고 오랫동안 다각도의 논의가 이어져 왔다.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객관적 문민통제’를 통해 군이 정치와 거리를 두고 군사적 전문성에 집중할 때 민주주의와 전투력이 동시에 확보된다고 봤다. 선출된 민간 지도자가 국방 정책을 결정하되, 작전과 운용은 군의 자율성에 맡겨 군 고유의 규율과 전문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미국의 군사회학자 모리스 자노위츠는 ‘수렴 이론’을 통해 군대와 민간 사회가 서로 단절된 별개의 영역으로 남을 수 없다고 봤다. 군 조직이 기술화·관료화되고 임무가 복잡해질수록 군과 민간 조직의 기능과 가치도 점차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의 군인은 단순히 무력을 운용하는 전투 전문가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사회적 환경을 이해하며 군사력을 절제해 사용할 수 있는 전문 직업인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과 사회의 지속적인 교류와 상호 이해를 통해 군의 전문성과 민주적 통제를 조화시켜야 한다는 시각이다.
오늘날 주요 민주국가들의 군 발전사는 이 두 이론의 지향점이 서로 대립하기보다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군사적 전문성과 엄격한 지휘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헌법 가치와 민주적 시민성을 군 내부에 내재화하는 것이 현대 민주군대의 핵심 과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 민주군대가 추구하는 것은 ‘잘 복종하는 군인’이 아니라 ‘왜 싸우는지를 이해하는 군인’이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군이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장병들이 국가와 국민에 대한 사명감을 스스로 내면화할 수 있고, 이러한 이해가 결국 책임 있는 판단과 자발적인 임무 수행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세계 주요 민주국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우리 군도 ‘생각하는 군대’를 향해
이 같은 흐름은 우리 군에도 반영된다. 현대 군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단순히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장병이 아니라, 헌법 가치와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왜 싸워야 하는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군인이다. 전투기술과 무기 운용 능력은 물론 국가의 존재 이유와 군의 사명을 이해하는 것이 현대 군인의 핵심 역량이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장병들의 민주 시민의식과 책임 의식을 높이기 위한 정신전력교육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교육은 상대적으로 안보의식과 군인정신 중심으로 이뤄졌다. 최근 교육은 여기에 더해 △헌법 가치와 민주주의 △군인의 윤리 △국민에 대한 충성 등을 함께 다루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장병들이 단순히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를 이해하도록 하는 데 교육의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군 기강을 약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오히려 반대다. 이런 교육과정은 현대 전장에서 요구되는 전문성과 책임감을 높이기 위한 과정에 가깝다. 장병들이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를 이해하고 군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인식할수록 자발적인 책임감과 임무 몰입도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 군 안팎의 공통된 인식이다.
병영문화 개선 노력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국방부는 ‘2026 군인복무기본정책 시행계획’을 통해 ‘선진병영문화 창출’ 및 ‘국민에게 신뢰받는 첨단강군 육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군인의 기본권 보장과 권리구제 강화, 양성평등 조직문화 확산 등을 통해 장병들이 조직에 대한 신뢰와 자긍심을 바탕으로 임무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전문가들은 미래 전장일수록 기술보다 사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무인체계가 전쟁의 양상을 바꾸더라도 최종적인 판단과 책임은 결국 사람이 맡게 된다. 결국 군인의 가치관과 윤리의식,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사명감은 첨단무기를 제대로 운용하기 위한 토대이자 현대 군대의 전투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는 평가다.
윤상용 서경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는 “아무리 전장 환경이 바뀐다고 해도 최종 결정은 인간이 내린다”며 “그 순간 합리적이고 책임 있는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가치와 헌법 정신을 이해하는 군인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투력만 강조하고 규범과 원칙이 없다면 군은 통제력을 잃을 수 있다”며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군율에 기반한 판단 능력이 현대 군의 전투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라고 덧붙였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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