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포스 언박싱
⑬ 우리 공군이 5900㎞를 날아 호주로 간 이유는?
16개국 110여 대 ‘피치블랙’ 참가
연합공중훈련 상호운용성 검증
민간 항로·소음 민원 제약 없이
압도적 크기 ‘훈련 공역’ 활용
야간비행·공중전 역량 극대화
대자연의 나라 호주 북부 하늘이 전 세계에서 날아온 110여 대의 첨단 전투기로 가득 찼다. 무려 16개국 공군 전력이 각자의 기지에서 수천 ㎞를 날아 호주 다윈 공군기지에 모인 것이다. 우리 공군 역시 5900㎞를 비행해 이곳에 도착했다. 바로 호주왕립공군이 주관하는 다국적 연합공중훈련인 ‘2026 피치블랙(Pitch Black)’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피치블랙이 도대체 어떤 훈련이기에 세계 각국 공군이 모인 걸까? 피치블랙을 언박싱해 본다. 임채무 기자
전 세계 주요 우방국 앞다퉈 참가
피치블랙은 영어로 ‘칠흑 같은 어둠’을 뜻한다. 1981년 호주왕립공군이 피치블랙 훈련을 시작하면서 야간비행과 공중전 능력을 집중 숙달하기 위해 이런 이름을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호주왕립공군은 훈련 초기 인적이 드문 광활한 지역 상공에서 야간비행을 중점적으로 실시했던 게 훈련명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달이 없는 칠흑 같은 밤에만 훈련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는 해석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정확한 유래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피치블랙이 호주 북부의 광활한 하늘을 무대로 공중전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탄생한 훈련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어둠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임무를 완수하는 실전적 훈련의 성격이 오늘날에도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 피치블랙은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 우방국이 앞다퉈 참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국적 연합공중훈련 중 하나로 진화했다. 전 세계 공군이 이 훈련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반도 면적의 수배에 달하는 압도적 크기의 ‘훈련 공역’에 있다. 민간 항로나 소음 민원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된 광활한 하늘에서 100여 대의 4·5세대 첨단 전투기와 조기경보통제기, 공중급유기, 수송기 등이 동시에 뒤엉켜 대규모 복합 공중작전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완벽한 실전무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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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첫 출전…진화하는 참가 전력
우리 공군은 2022년 처음으로 피치블랙에 뛰어들었다. 공군은 앞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총 5회에 걸쳐 호주 공군의 제의를 받아들여 피치블랙을 참관했다.
공군이 훈련에 참가한 가장 큰 목적은 유사시 한반도에 전개될 수 있는 다양한 우방국 전력과 평시부터 호흡을 맞추며 실제 전장에서 즉각 연합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주목할 점은 훈련에 참가하는 우리 공군 전력이 해를 거듭할수록 비약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 참가였던 2022년에는 KF-16 전투기 6대와 KC-330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1대가 투입됐다. 이는 우리 공군 전투기가 자체 공중급유기의 지원을 받으면서 해외로 전개한 역사적인 첫 사례였다.
2024년에는 한층 강력해진 타격력을 자랑하는 F-15K 전투기 6대와 KC-330 3대, C-130 수송기 3대가 출전했다. 특히 F-15K 편대는 무려 5차례의 공중급유를 받으며 중간 기착 없이 호주까지 날아가는 ‘무중단 페리 임무’를 최초로 완수하며 뛰어난 장거리 전개 능력을 과시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 훈련에는 필리핀 공군의 국산 경공격기 FA-50PH도 최초로 동참해 국산 항공기의 우수성을 알렸다.
올해 우리 공군은 다시 한번 KF-16 전투기 6대와 KC-330 등을 이끌고 5900㎞를 단 7시간30분 만에 주파해 호주 다윈기지에 안착했다. 현재 우리 공군은 16개국 110여 대의 항공기가 얽힌 복잡한 시나리오 속에서 다국적 연합편대군의 지휘통제 능력을 검증받으며 세계적 수준의 연합작전 수행력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필리핀 공군의 FA-50PH에 더해 인도네시아 공군의 T-50i가 참가해 국산 항공기의 활약이 기대된다.
전술 노하우 투명하게 공유…더 성장해
각국 전투기가 모여 치열하게 훈련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현대전의 핵심 화두인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을 검증하고 완성하기 위해서다.
오늘날의 항공전은 결코 한 나라가 단독으로 치를 수 없다. 아무리 스텔스 성능이 뛰어나고 미사일이 강력해도 전장에 투입된 우방국 전투기와 통신이 끊기거나 지휘 절차가 엇갈리면 임무는 그 즉시 실패로 돌아간다. 상호운용성이란 서로 다른 언어와 무기체계를 갖춘 국가의 군대가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 공군의 레이다가 포착한 표적정보를 전술데이터링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미국이나 호주의 전투기와 공유하고, 사전에 약속된 표준화된 절차에 따라 정확히 같은 시간에 목표물을 타격하는 능력이 여기에 해당한다.
같은 전장상황을 보고, 같은 언어로 소통하며, 같은 전술을 구사하는 능력이 곧 다국적 연합군의 진짜 전투력이다. 피치블랙은 이를 실전처럼 검증할 수 있는 거대한 시험장이다. 참가국 조종사들은 브리핑 단계부터 임무를 함께 계획하고, 사후강평을 하며 서로의 전술 노하우를 투명하게 공유하면서 하나의 팀으로 거듭나고 있다.
피치블랙은 실전보다 더 가혹하고 복잡한 환경에서 우리 공군의 연합작전 수행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미래 전장환경에 대비한 작전 역량을 끌어올리는 치열한 담금질의 현장인 셈이다. 모든 훈련을 마치고 한 단계 더 성장해 돌아올 우리 공군의 모습이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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