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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철
경희여중 국어교사
EBS 강사
1990년대 초반 고등학교 2학년을 앞둔 겨울이었다. 문과와 이과를 정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열일곱 살에게 인생의 방향을 묻는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것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성적표를 펼쳤다. 국어와 영어, 사회 점수가 수학과 과학보다 나았다. 문과를 고른 이유다. 단순했고, 그만큼 흔한 선택이었다.
문제는 그 선택이 곧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처럼 굳어졌다는 데 있었다. 문과를 택한 순간 숫자와 멀어진 사람이 됐고, 이과를 택한 친구들은 문장과 멀어진 사람이 됐다. 그 시절의 선택은 진로를 찾는 과정이라기보다 ‘진로를 너무 일찍 좁히는 절차’였다.
사회에 나와 보니 훌륭한 성과를 내는 사람은 대체로 그 경계에 서 있던 이들이었다. 문과 출신인데 데이터를 읽을 줄 아는 사람, 공학을 전공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는 사람, 기술을 이해하면서도 타인을 설득할 줄 아는 사람이 끝내 멀리 나아갔다. 물론 경계에 선 모든 이가 멀리 간 것은 아니다. 다만 멀리 간 이들 가운데 경계에 선 사람이 유독 많았다. 그들의 강점은 두 분야를 조금씩 아는 일이 아니라 두 분야를 잇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사람들의 계보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정약용은 유학자였으나 서양의 기술서를 파고들어 도르래의 원리를 이해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거중기를 고안해 수원 화성 공사 때 인력과 비용을 아끼는 데 기여했다. 『목민심서』를 쓴 손과 설계도를 그린 손이 같은 사람의 것이었다.
바다 건너 사례도 다르지 않다.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로 기억되지만, 크림전쟁의 야전병원에서 그가 실제로 쥔 무기는 통계였다. 사망 원인을 도표로 시각화해 군 지휘부와 의회를 설득했고, 마침내 위생개혁을 이끌어 냈다. 영국 왕립통계학회의 첫 여성 회원은 그렇게 탄생했다.
레이철 카슨은 영문학 전공으로 입학했다가 생물학으로 방향을 바꾼 사람이었다. 연구실 자료를 사람의 마음에 닿는 문장으로 풀어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과학이 언어를 만나 『침묵의 봄』이 세상에 나왔고, 그렇게 사회가 움직였다.
여기서 중요한 오해 하나를 바로잡아야 한다. 융합 인재란 이것저것 조금씩 아는 사람이 아니다. 정약용은 당대의 경학자였고, 카슨은 정통 생물학 훈련을 받은 연구자였다. 한 분야에서 깊이에 도달한 사람이 다른 영역으로 손을 뻗었을 때 비로소 융합이 일어났다. 얕은 지식을 나열하는 일은 융합이 아니라 산만함에 가깝다. 깊이 없는 넓이는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는 깊이를 버린 사람이 아니라 깊이를 갖춘 뒤에도 자기 울타리 밖을 내다볼 줄 아는 이다. 한 분야를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은 여전히 귀하다. 동시에 그 성과를 다른 언어로 옮기고, 다른 영역과 연결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 역시 그만큼 귀하다. 나이팅게일이 그러했듯이 군은 이런 균형감각이 절실한 공간이다. 첨단 기술과 장비를 이해하는 눈도 필요하지만 사람과 조직을 읽는 통찰, 공동체를 책임지는 판단력도 함께 요구되기 때문이다.
열일곱 살 때 성적표를 보고 문과를 택했다.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해 줬다면 좋았겠다. 네가 고른 것은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라고. 문을 하나 열었다고 다른 문이 잠기는 것은 아니라고. 지금 자기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일하는 이들에게도 같은 말을 전하고 싶다. 깊이 파되, 가끔은 고개를 들어 옆을 보라고. 새로운 길은 언제나 경계선 근처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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