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雪 끓여 빚은 한잔 술…雪國의 여름밤은 호박빛

입력 2026. 07. 23   16:36
업데이트 2026. 07. 2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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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인문학-두 도시 이야기
일본 삿포로와 영국 에든버러 上 

눈의 도시, 한여름엔 더없이 쾌적하고 미소라멘·수프카레·유제품 등 미식도 한가득
150여 년 전 황무지를 격자형 계획도시로…노동자 모으기 위한 유흥공간 밀도 높은 밤문화로 남아
습랭한 기후·눈 녹은 맑은 물·석탄 직화 증류 고집한 장인…세계적 위스키 ‘닛카’ 탄생시켜

 

삿포로와 에든버러는 각각 일본과 영국의 북쪽에 자리한 도시다. 해안가에 위치해 습랭한 기후와 여름철에도 기온 변화가 크지 않은 두 도시는 세계적인 위스키가 탄생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위스키 ‘닛카’가 삿포로 인근 요이치에서 시작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삿포로 대표 유흥가인 스스키노 입구에 설치된 일본식 위스키 ‘닛카’ 광고판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삿포로 대표 유흥가인 스스키노 입구에 설치된 일본식 위스키 ‘닛카’ 광고판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시원한 여름과 풍성한 맛의 도시

삿포로는 홋카이도 최대 도시다. 겨울은 길고 눈이 유난히 많으며 기온 또한 매우 낮다. 연간 6m가 넘는 적설량 덕분에 ‘눈의 도시’로 불린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비슷한 위도에 놓여 있어 겨울에 찾는다면 단단한 대비가 필요하다. 한여름의 삿포로는 놀라울 만큼 쾌적하다. 30도를 넘는 날이 드물고, 일본에서도 이 계절에 풀코스 마라톤이 열리는 곳은 삿포로뿐이다. 유난히 더웠던 그해, 우리는 여름 피서지로 삿포로에서 두 달을 보냈다.

삿포로의 매력은 여름철의 쾌적한 날씨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 도시를 진정 빛나게 하는 것은 풍성한 미식의 즐거움이다. 삿포로가 속한 홋카이도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식량 생산지로, 그 자체로 식재료의 보고라고 할 만하다. 이 넉넉한 자연의 바탕 위에서 미소라멘과 수프카레 같은 대표적인 음식이 탄생했다. 삿포로를 찾는다면 홋카이도의 청정자연이 길러 낸 유제품도 반드시 맛봐야 한다. 치즈와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 하나같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며 여행 내내 미각은 물론 체중까지 쉴 틈이 없다.

150여 년 전 삿포로는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삶의 터전이자 끝없는 원시림과 갈대밭이 펼쳐진 황무지에 가까운 땅이었다. 당시엔 일본 정부의 관심 밖에 있던 곳이다. 상황이 바뀐 것은 1869년 메이지 정부가 들어서면서다.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고 풍부한 천연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중앙관청인 홋카이도 개척사가 설치됐다. 그때부터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삿포로의 모습이 서서히 태동했다.

 

 

삿포로를 비롯한 홋카이도 전역은 긴 겨울 동안 엄청난 강설량을 자랑한다. 그 때문에 지하철역사와 빌딩을 연결하는 지하도시를 만들었다.
삿포로를 비롯한 홋카이도 전역은 긴 겨울 동안 엄청난 강설량을 자랑한다. 그 때문에 지하철역사와 빌딩을 연결하는 지하도시를 만들었다.

 

일본의 식량기지 역할을 하는 홋카이도는 낙농업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유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일본의 식량기지 역할을 하는 홋카이도는 낙농업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유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완벽한 격자형으로 설계된 삿포로는 직선 도로가 특징이다.
완벽한 격자형으로 설계된 삿포로는 직선 도로가 특징이다.



허허벌판 위에 세워진 바둑판 도시

새로운 도시 삿포로를 세우기 위해 가장 먼저 지도 위에 선이 그어졌다. 목조건축이 주류였던 당시 일본에서는 한 번 난 불길이 도시 전체로 번지기 쉬웠다. 삿포로는 이를 막고자 도심을 가로지르는 방화선을 마련했다. 너비 100m가 넘는 오도리공원이 바로 그 흔적이다. 오늘날 오도리공원은 도시를 남북으로 나누는 녹지이자 북쪽의 관공서와 남쪽의 번화가를 가르는 도시 구조의 기준선이 됐다.

오도리공원의 주소를 확인하다 보면 ‘북3동1’ 같은 교차로 체계가 눈에 띈다. 삿포로는 철저한 도시계획 위에 세워졌다. 그 바탕에는 중국 장안과 일본 교토의 바둑판식 구조, 미국 서부 개척도시의 그리드 시스템(격자형 도시 구조)이 있었다. 미로 같은 골목 대신 자로 그은 듯 반듯한 도로를 뒀고, 오도리공원을 기준으로 남북과 동서에 도로명을 붙이면서 마치 게임 속 도시처럼 정돈된 격자형 도시가 완성됐다.


불모지였던 땅을 격자형 도시로 바꾸기 위해 전국에서 수많은 노동자와 개척군인, 그 가족이 삿포로로 몰려들었다. 37개의 둔전병촌에 약 4만 명이 자리 잡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땅과 긴 겨울, 가혹한 노동환경은 이주자들에게는 버거운 현실이었다.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이가 속출하자 개척사 책임자는 남성 노동자들을 붙잡아 둘 요량으로 삿포로 남쪽에 유흥가 스스키노 유곽을 조성했다. 허허벌판에 들어선 이 공인 유곽은 세월이 흐르며 도쿄 가부키초, 후쿠오카 나카스와 함께 일본 3대 유흥가로 불리게 됐고, 지금도 삿포로 밤문화의 심장으로 맥박친다.

 

전통 주조방식을 고수하며 일본 위스키 산업의 위상을 지키고 있는 요이치 증류소 .
전통 주조방식을 고수하며 일본 위스키 산업의 위상을 지키고 있는 요이치 증류소 .

 

‘닛카 위스키의 고향’ 요이치는 2량짜리 열차가 다니는 작은 마을이다.
‘닛카 위스키의 고향’ 요이치는 2량짜리 열차가 다니는 작은 마을이다.



홋카이도에서 만드는 스코틀랜드 위스키

스스키노의 밤을 채우는 것은 술이다. 삿포로 맥주는 홋카이도 개척사가 세운 ‘개척사 맥주 양조장’에서 출발한 일본 대표 맥주 브랜드다. 삿포로 맥주의 마크인 ‘붉은 별’은 개척사의 ‘푸른 별’ 문양에서 비롯됐다. 스스키노 입구에 가면 위스키 잔을 든 유럽 남성의 거대한 이미지가 건물 한 면을 덮고 있다. 이는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위스키 브랜드 ‘닛카’의 광고판이다. 여행자라면 누구나 이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닛카는 1934년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다케쓰루 마사타카가 삿포로 인근 요이치에 세운 회사다.

요이치는 2량짜리 열차가 오가는 작은 마을이다. 행정구역상 삿포로에 속하진 않지만 개척시대에 놓인 철도와 항만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이곳은 격자형 도시 삿포로를 중심으로 홋카이도 근대화의 흐름 속에서 함께 발전한 곳이기도 하다.

닛카 위스키의 창업자는 위스키 제조법을 배우기 위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대에 입학해 유기화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대학 강의와 실제 스카치위스키 제조현장 사이에는 간극이 컸다. 실무를 익히고자 증류소 취업을 시도했지만 동양인 유학생에게 제조비법을 선뜻 알려 주려는 곳은 없었다. 그는 결국 맥아 제조부터 발효, 증류, 숙성에 이르는 전 과정을 몸으로 익혀 나갔다. 누구도 하고 싶어 하지 않던 증류기 내부 청소까지 자청하며 구조를 파고들었고, 현지에서 기록한 실습노트인 ‘다케쓰루 노트’는 훗날 일본 위스키 산업의 출발점이 되는 귀중한 자료가 됐다.

다케쓰루가 일본으로 돌아와 새 증류소 터를 찾을 때 그가 그린 그림은 분명했다. 스코틀랜드에서 배운 하일랜드 지방의 묵직하고 진한 스카치위스키를 타협 없이 재현하는 것. 이를 위해선 스코틀랜드와 비슷한 서늘하고 습한 기후가 필요했다. 깨끗한 물과 공기, 원료를 구하기 쉬운 입지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요이치는 북쪽으로 바다를 마주하고,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다. 겨울 동안 산에 쌓인 눈은 봄이 되면 눈 녹은 물이 돼 요이치강으로 흘러들었다. 이 맑은 물은 위스키의 바탕이 됐다. 사계절 내내 서늘한 기후 역시 위스키를 천천히, 충분한 시간을 들여 숙성시키는 데 더없이 알맞은 조건이었다. 더불어 홋카이도는 몰트위스키의 원료인 보리 산지였고 황무지에는 보리를 말리는 데 쓰는 토탄도 풍부했다. 증류에 필요한 석탄까지 인근에서 구할 수 있었으니 술을 만드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 땅은 이미 ‘위스키의 땅’이 될 준비를 마친 셈이었다.

초기엔 큰 장벽이 있었다. 위스키는 증류한 뒤 오크통에서 수년간 숙성해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술이기에 초기엔 한 푼의 매출도 기대할 수 없었다. 이때 다케쓰루의 꿈을 지탱한 것은 뜻밖에도 홋카이도의 특산물 사과였다. 사과 산지였던 요이치에서 그는 위스키가 익어 가길 기다리는 동안 생계를 이어 가고 투자금을 마련하고자 사과 가공공장을 세웠다. 회사명의 줄임말인 ‘닛카(日果)’에서 ‘닛’과 ‘카’를 따와 오늘의 ‘닛카(NIKKA) 위스키’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닛카 위스키의 심장인 요이치 증류소는 지금도 ‘석탄 직화 증류’ 방식을 고수한다. 1000도가 넘는 가마에 원료를 넣고 타지 않도록 끊임없이 저어 가며 증류하는 이 방식은 숙련된 장인의 손길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바로 그 비효율적인 전통이 요이치 몰트 특유의 묵직하고 강건한 풍미를 만들어 낸다. 


한여름에도 영상 30도를 넘는 날이 손에 꼽히는 삿포로는 여름여행의 최적지다.
한여름에도 영상 30도를 넘는 날이 손에 꼽히는 삿포로는 여름여행의 최적지다.

 

삿포로는 도시 곳곳에 북방 황무지 개척역사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소년이여, 야망을 품어라”라는 말로 유명한 미국의 윌리엄 클라크 박사는 홋카이도대의 기틀을 세웠다.
삿포로는 도시 곳곳에 북방 황무지 개척역사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소년이여, 야망을 품어라”라는 말로 유명한 미국의 윌리엄 클라크 박사는 홋카이도대의 기틀을 세웠다.



규칙과 낭만이 공존하는 도시

격자형으로 반듯하게 구획된 삿포로의 길을 걷다 보면 마치 설계도면 위를 직접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철저한 규칙성은 거친 야생과 혹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운 선조들의 치열한 생존방식이기도 했다.

술향 짙은 거리 풍경은 삿포로가 단순히 눈의 도시가 아니라 개척의 역사와 미식, 밤문화가 겹겹이 쌓인 도시임을 보여 준다.

낮에는 정갈한 격자형 도심과 쾌적한 기후가 여행자를 맞고, 밤이 되면 스스키노가 그 못지않은 밀도로 도시의 온도를 끌어올린다.

화려한 네온이 빛나는 스스키노의 밤거리에도, 석탄가마 앞에서 묵묵히 증류기를 지키는 요이치 장인의 손길에도 같은 도시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척박한 북방의 혹한을 견뎌 내며 도시를 일군 개척민의 땀방울과 호박빛 액체가 시간을 견디며 익어 가기를 기다린 위스키의 역사는 결국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 김은덕·백종민은 여행작가다. 부부가 함께 쓴 공저로 『여행 말고 한달살기』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 등이 있다. 유튜브 ‘띵크띵스’도 운영 중이다.
필자 김은덕·백종민은 여행작가다. 부부가 함께 쓴 공저로 『여행 말고 한달살기』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 등이 있다. 유튜브 ‘띵크띵스’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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