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의 조인성,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의지

입력 2026. 07. 22   16:59
업데이트 2026. 07. 2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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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인성 … 판을 뒤집다
발연기 스타에서 연기파 배우로

조각 같은 이목구비 서구형 미남
지극히 한국적인 연기 반전 매력

초기작 어색한 연기력 논란 딛고
강도 높은 액션·로맨스 두루 호평

원톱 주연에도 혼자 빛나지 않아
전체 살리는 연기로 존재감 입증

영화 ‘호프’에서 성기 역을 맡은 배우 조인성.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호프’에서 성기 역을 맡은 배우 조인성.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조인성은 독특한 이미지를 가졌다. 훤칠한 키에 깎은 듯한 이목구비는 서구적인 외모이지만 ‘발리에서 생긴 일’ ‘비열한 거리’ ‘괜찮아, 사랑이야’ 같은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지극히 한국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어딘가 한국과 서구의 이미지가 이 배우 한 몸에 깃들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영화 ‘호프’는 그런 점에서 조인성이란 이중적 이미지를 가진 배우와 아주 잘 어울린다. 이 영화는 여러 경계가 겹쳐져 있다. 서부극을 한국의 시골 마을로 옮겨 온 듯한 이 작품은 장르적인 경계 또한 끊임없이 깨면서 관객을 놀라게 한다.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괴생명체와의 사투는 크리처물을 연상케 하지만 그 추적극에는 너무나 토속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젊은 사람이 거의 없는 호포항이란 마을에서 갑자기 벌어진 핏빛 난리는 전쟁을 방불케 하고, 어르신들이 어디서 갖고 나온 건지 알 수 없는 총으로 무장해 조직한 자경단의 추격은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봤던 시민들의 저항과 포개진다. 그들의 대항이 아무런 소용도 없는 엄청난 괴력의 괴생명체와 마주하게 됐을 때 유일한 희망으로 떠오르는 건 바로 조인성이 연기한 성기라는 사냥꾼이다. 이 인물은 어딘가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준다. 마을의 젊은 사냥꾼들을 이끄는 리더이면서 그곳의 치안을 맡고 있는 범석(황정민 분), 성애(정호연 분)와 힘을 합쳐 끝까지 괴생명체와 맞선다.

조인성의 한국적이면서도 서구적인 이미지는 이 한국판 웨스턴 같은 장르적 결을 가진 작품 안에 너무나 잘 녹아든다. 현대판 서부극에 나올 법한 픽업트럭이 잘 어울리고, 손에 든 장총이 자연스럽다. 중후반부터는 말을 타고 달리며 보여 주는 액션과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사냥꾼들이 숲에서 괴생명체를 추격하며 둘러앉아 주먹밥을 먹는 장면은 서부극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느낌마저 주는데, 거기서도 조인성의 이중적 이미지가 도드라진다. 맨손으로 주먹밥과 총각김치를 물어뜯어 먹는 장면이 그것이다. 드디어 괴생명체와 마주하게 된 조인성의 연기는 처음엔 도무지 불가해한 그 낯선 존재 앞에서 꽁꽁 얼어붙는 모습이었다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지로 활활 에너지를 뿜어내는 변화 과정을 담는다. 괴력에 미친 속도감의 적 앞에서 결코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지만, 온몸이 날아가고 부러지고 깨지면서도 풀 한 포기를 손에 움켜쥐고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가 그를 끝까지 버티게 만든다.

강도 높은 액션은 물론 그 안에 특유의 감정까지 얹어 넣는 조인성의 압도적 연기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는 시트콤으로 연기를 시작해 몇몇 작품을 찍었지만 초창기엔 연기력 논란을 겪을 정도로 혹독한 시절을 보냈다. 훗날 조인성은 이 시절의 혹독함이 자신을 교만해지지 않게 해 준 자양분이라고 술회한 바 있다. 조각 같은 외모의 스타가 아니라 진짜 연기를 하는 배우라는 본질에 다가가도록 만든 힘이 그 좌절의 시간에 있었다고 얘기했다. 그 인고의 시간 덕분이었을까.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단단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지독한 결핍과 파괴 충동을 가진 내면을 드러냄으로써 독특한 청춘의 자화상을 그린 조인성은 그 후에도 ‘봄날’ ‘비열한 거리’ ‘쌍화점’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 같은 작품을 거치며 섬세한 감정선과 심리적 상처를 지닌 인물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특히 노희경 작가의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에 이어 ‘디어 마이 프렌즈’의 하반신 마비 역할까지 소화하며 그의 연기는 더 깊어졌다.

이러한 성장 과정이 끝은 아니었다. 2010년대 후반부터 조인성은 원톱 주연의 무게감을 덜고 거장 감독들과의 협업 속에서 극 전체를 조율하는 앙상블의 중심축으로 서기 시작했다. 한재림 감독의 ‘더 킹’이나 김광식 감독의 ‘안시성’,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와 ‘밀수’,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까지 그는 여러 인물이 부딪치며 저마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품에서 자신만이 아닌 전체가 살아날 수 있는 앙상블 연기를 선보였다. 이러한 성실함과 헌신 덕분에 조인성은 거의 모든 한국의 거장 감독이 선호하는 배우가 됐다. 나홍진(호프)은 물론 류승완(모가디슈, 밀수, 휴민트), 이창동(가능한 사랑) 감독과 연달아 작업 하게 된 것이다.

영화 ‘호프’에서 성기 역을 맡은 배우 조인성.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호프’에서 성기 역을 맡은 배우 조인성.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이 같은 끈질긴 헌신 끝에 어떤 역할을 맡아도 살아남는 배우로 성장한 조인성의 면면은 ‘호프’라는 작품이 갖고 있는 불굴의 생존의지와 대결의식과도 잘 어울린다. 나홍진 감독은 ‘추격자’ ‘황해’ ‘곡성’에서도 늘 미지의 존재와 대결·추격을 그려 온 바 있다. 그 안에서 주인공들은 저마다 생존 위협 앞에 놓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건 어쩌면 한국인이 지금껏 살아온 생존의 삶과 닮아 있다. 무수한 외침을 당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아 현재까지 이어 온 그 삶이 ‘호프’의 성기가 보여 주는 불굴의 생존의지와 맞닿아 있다. 그래서 괴생명체에게 쫓기면서도 살아남고자 먼저 감자를 씹는 이 인물의 생존의지는 그 짧은 장면 안에서조차 묘한 울림을 만들어 낸다.

조인성이 그의 필모에서 보여 주는 우리 시대의 페르소나는 바로 그 생존의 자화상이 아닐까. 매일같이 전쟁하듯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그 모습에서 꺾이지 않는 한국인의 저력이 느껴진다. 무더위와 장마가 오가는 날들 속에 몸도, 마음도 푹푹 처지고 있다면 이 156분간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불굴의 조인성을 보며 다시금 힘을 낼 수도 있을 테니.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기고·방송·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MBC·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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