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리밸런싱
디지털 중독 대응 흐름도 진화
다이어트하듯 ‘건강한 조절’ 주목
피드 청소하며 알고리즘 바꾸고
자극 차단하고 재설계하기 거쳐
삶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변화
얼마 전 생성형 AI 서비스 챗GPT가 농구공을 출시했다. ‘Chat GPT’라고 적힌 녹색 농구공의 소개 글에는 ‘뜻밖의 좋은 아이디어는 코트 위를 뛰는 순간에도 찾아옵니다’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농구공은 최근 챗GPT에서 진행 중인 ‘포즈(Pause), 플레이(Play), 프롬프트(Prompt)’ 캠페인의 하나로 제작된 굿즈다. ‘화면을 멈추고, 실제 세계에서 놀고, 다시 돌아와 프롬프트를 치자’는 의미로, ‘창의성은 화면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해당 농구공의 가격은 70달러로, 적지 않은 가격임에도 출시 직후 품절됐다고 한다. 화면 안에서만 기능하는 서비스가 화면 밖 세상을 권유한 이유가 무엇일까?
바야흐로 ‘도파민’의 시대다. 비유적 표현이지만 ‘도파민 중독’이라고 할 만큼 기술 발전으로 인한 자극이 넘쳐나는 환경 속에서 수년째 ‘디지털 디톡스’가 꾸준하게 취미로 언급된다. 책 읽기를 시작으로 뜨개질, 도예, 손글씨 등 아날로그한 취미가 각광받고 챗GPT가 권하듯 오프라인 경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기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고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요즘 사람들의 가치관과 결합해 하나의 지향점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진화하고 있다. 숏폼과 같은 중독적인 자극에서 벗어나 뇌에 휴식을 주고, 건강한 자극을 추구하는 ‘도파민 리밸런싱’에 대해 알아보자.
도파민 리밸런싱의 첫 번째 단계는 ‘자극 차단하기’다. 대표적인 리추얼로 언급되는 것이 ‘다크 샤워(dark shower)’. 말 그대로 불을 끄고 어두운 상태에서 샤워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잠자리에 들기 약 1시간 전에 욕실의 밝은 조명은 끄고 촛불이나 낮은 조도의 주황색 조명을 사용할 것, 차가운 물보다는 편안한 정도의 따뜻한 물로 할 것, 샤워하는 동안에는 휴대폰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물소리와 몸에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는 것이 언급된다. 이를 통해 일종의 감각 명상을 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자극을 소거하는 ‘지루함 견디기 챌린지’도 인기다. 해당 챌린지는 2024년 ‘비행기에서 아무것도 안 하기’ 챌린지로 시작됐는데, 비행하는 동안만이라도 영화를 포함해 아무 매체도 보지 않고 창밖을 보며 ‘멍때리는’ 시간을 갖는 챌린지였다. 이후 ‘지루함 견디기’까지 확장됐다. 장소와 상관없이 타이머를 맞춰 놓고 휴대폰은 물론 음악이나 대화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다. 지루함을 없애려 하지 말고 견뎌보자는 의미인데 상당수 참여자는 ‘5초만 지나도 휴대폰을 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인다.
도파민 리밸런싱의 두 번째 단계는 ‘자극 재설계하기’다. 외국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슬로 테크’로 표현한다. 더 빠른 반응, 더 많은 알림, 더 긴 체류시간을 유도하는 기술을 거부하고 사용자가 기술 사용의 속도와 목적을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스마트폰에서 의도적으로 기능을 덜어낸 ‘미니멀폰’이 그 예다. 브랜드 ‘라이트폰(Light Phone)’은 현재 3세대까지 출시돼 누적 판매량이 10만 대를 넘어섰다고 한다. 최근에는 통신사와 협업해 데이터 사용을 줄이면 요금을 일부 돌려주는 서비스까지 출시했으며, 그만큼 사용자들이 주의력을 되찾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추가적인 지출 없이 일상 속 쉽게 실천할 수 있는 ‘피드 청소’도 SNS상에서 인기를 끄는 콘텐츠다. 자신의 팔로우 목록을 검토해 시간을 쓰고 싶지 않은 계정에는 팔로우를 취소하고 게시물이나 광고가 추천됐을 때 의식적으로 ‘스킵’ ‘관심 없음’을 눌러 알고리즘 변화를 유도한다. 이후에는 내가 자주 노출됐으면 하는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검색’하고 해당 게시물을 ‘끝까지 보기’ ‘저장하기’ 행동을 통해 좋은 알고리즘을 심는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무시하려고 애쓰기보다 환경을 바꾸는 똑똑한 관리법이다.
중독적인 자극을 제거했다면 마지막 단계는 ‘건강한 도파민 추구하기’다. 엄밀히 말해 도파민에는 종류가 없지만 더 건강한 방식으로 재미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보상체계를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일례로 국내외에서 새로운 취미로 떠오른 탐조 열풍을 들 수 있다. 카메라 브랜드 니콘에서 탐조 열풍에 힘입어 ‘탐조 피크닉’을 개최했는데, 약 400명이 신청해 경쟁률이 17 대 1을 넘었다고 한다. 신청자의 70%는 2030대로, 특히 젊은 세대의 관심이 높았다. 흥미로운 점은 새를 찾는 활동이 단순히 자연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새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데서 일종의 짜릿함을 얻는 수집형 게임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건강한 자극 추구를 위한 관리 방법으로 ‘도파민 메뉴’라는 콘텐츠도 인기다.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행동을 음식 메뉴처럼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에피타이저로는 ‘5분 산책, 좋아하는 노래 한 곡 듣기’. 메인 디시는 ‘운동, 친구 만나기, 공예’처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지만 건강한 활동, 사이드 디시는 ‘향초, 햇빛’처럼 일상에 곁들이는 요소, 디저트는 ‘SNS, 쇼핑’처럼 즐겁지만 과잉 사용을 조심할 활동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러한 관리법은 마치 체중감량을 할 때 ‘단것은 일절 먹지 않는다’와 같이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한다’와 같이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대안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중독이 화두가 된 이래 이에 대응하는 흐름도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지친 정신을 일단 쉬게 하는 것, 즉 수동적인 ‘휴식’을 추구했다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회복’으로 중심이 이동했다. 마치 운동을 한 후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스트레칭이나 가볍게 걷기를 통해 컨디션 회복을 돕는 것처럼 뇌에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류가 기술의 발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은 기술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기 시작했다. 도파민 리밸런싱은 자극을 아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자극을 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나의 도파민 회로(보상체계)는 어떤 상태인가? 리밸런싱이 필요하지 않은지 검토해 보자.
필자 권정윤은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현재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트렌드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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