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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과 ‘격’을 합친 말인 ‘품격’을 흔히 세련된 태도나 예절의 문제로 이해하곤 하지만, 이 단어의 깊은 뜻을 새겨 보면 그렇게만 헤아리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한자 품(品)은 ‘수많은 물건의 종류와 등급’을 뜻하는 글자로, 물건들을 모아 분류하고 그 가치를 저울질하는 행위를 형상화했다. 예술가가 혼신을 다해 빚어낸 결정체를 뜻하는 작품(作品), 수많은 행동양식이 축적돼 만들어진 인간 됨됨이를 이르는 성품(性品) 등에 쓰인다.
일정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을 가리키는 자격(資格)에 쓰이는 한자 격(格)은 나무(木)가 자라 마땅히 도달해야 할 기준(各)에 다다른 상태에서 비롯됐다. 인격(人格), 격식(格式) 등에도 사용된다.
‘품격 있는 말하기’ 역시 이야기할 때의 세련된 태도나 예절, 매끄러운 수사의 문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하기에서 ‘품’은 내면에 정밀하게 쌓아 올린 생각과 자신이 쓰는 언어의 질을 따져 보게 한다. 예컨대 거친 말을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에게서 결코 좋은 ‘품’을 느낄 순 없다. 특히 욕설에 의한 자극은 크든 작든 우리 뇌가 생존 위협으로 받아들여 듣는 이와 말하는 이 모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영향을 받게 만든다. 몸과 마음을 오염시켜 품을 훼손한다. 또한 단순한 ‘감탄사’나 대화의 ‘추임새’ 정도로 욕을 가볍게 소비하는 사람들의 말 역시 가치의 저울은 낮은 쪽으로 기울 게 뻔하다. 이 경우 더 심각한 것은 그런 말 습관이 가져오는 ‘어휘의 마비’, 나아가 ‘사유의 퇴화’다. 기쁨과 슬픔, 경탄 또는 탄식 등의 그 다채로운 감정을 몇 개의 뻔한 단어로 ‘퉁쳐 버리는’ 순간 우리 뇌는 정교한 언어를 고르는 지적 훈련을 멈춰 버린다. 표현이 단순해지면 사유의 회로 역시 좁은 울타리에 갇힌다.
말하기에서 ‘격’은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바름에 이른다는 격물(格物)의 의미처럼 언어가 갖춰야 할 공적 기준을 생각하게 만든다. 즉 말하는 이가 바깥세상과 관계를 맺을 때 바람직한 상황에 이르기 위해 갖춰야 할 말의 형식과 태도를 ‘격’에 빗댈 수 있다. 조직에서 공적 자아로서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고, 그에 걸맞은 언어적 능력을 갖추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조직의 리더는 구성원과 사적으로 아무리 친밀할지언정 의사결정이나 피드백의 순간엔 철저히 공적인 가이드로서 말의 격을 갖춰야 한다. 친하다는 핑계로 선을 넘는 비아냥을 던지는 일은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의 신뢰까지 망가뜨린다. 반대로 쓴소리가 필요한 순간에도 단순히 갈등을 피하고 싶어 얼버무리는 것 역시 리더로서 말의 격을 잃은 행위다. 상대방의 ‘역할’과 ‘존재’를 존중하는 언어적 거리감을 상실한 말하기는 결코 건강한 연대를 이루지 못한다. 격 없는 말은 폭력이 되거나 반대로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하는 무능한 웅얼거림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말하기의 품과 격을 세우는 것은 내면의 질을 가꾸는 성찰의 과정인 동시에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 안에서 나의 좌표를 인식하는 사회적 실천이기도 하다. 품만 있고 격이 없으면 그 말은 온화하더라도 건강한 공적 관계를 지탱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단단한 힘이 부족하다. 반대로 격만 있고 품이 없으면 외형은 단정할지언정 그 말에서 진정한 온기 있는 생명력을 느끼기 어렵다.
이제 품격 있게 말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조금 선명해졌으리라고 믿는다. 내가 한 말이 내면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 가만히 헤아리는 것, 자신의 말이 타인과 세상을 향해 내 역할에 합당한 기준에 이르는지 찬찬히 살피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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