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의 길… 경전소리에 깨달음 얻고… 빗소리에 겸손을 배우다

입력 2026. 07. 21   16:33
업데이트 2026. 07. 2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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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일보-국가유산청이 함께하는 ‘두 발로 만나는 국가유산’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에서 찾은…

우리나라 서원의 시초, 영주 ‘소수서원’
류성룡 선생 문헌 보관된 ‘병산서원’
퇴계 이황이 제자 가르친 ‘도산서원’
꼿꼿한 기개·배움의 경건함 간직한 그곳에서
학문에 열의 불태웠을 선비의 모습을 보다

최근 한국의 교육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이 화제였다. 교육이 무너진 현장을 찾아 통쾌하게 해결하는 가상의 정부기관 교권보호국의 활약에 전 세계 시청자가 열광했고, 실제로 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악성 민원과 교권 침해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기 위한 조직이 신설되기도 했다. 이처럼 드라마 ‘참교육’의 인기는 무엇보다 교육이 우리 모두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는 중대한 소재이기 때문이다.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교육을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이 같은 교육의 뿌리에는 조선시대 사립 고등교육기관이었던 서원이 있었다.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에 걸쳐 건립된 서원은 전국 각지의 지식인이 성리학 교육체계를 세우고, 성리학의 가치가 담긴 독특한 역사와 전통을 만들어 간 공간이었다. 2019년 세계유산 목록에도 등재된 ‘한국의 서원’을 찾았다. 글=노성수/사진=김태형 기자

경북 안동시에 있는 ‘도산서원의 강당’ 전교당 전경. 1574년에 세워진 전교당은 유생들이 경학을 공부하는 서원의 중심 건물이다. 정면에 걸린 ‘도산서원’ 현판은 조선 최고의 명필 한석봉이 썼다.
경북 안동시에 있는 ‘도산서원의 강당’ 전교당 전경. 1574년에 세워진 전교당은 유생들이 경학을 공부하는 서원의 중심 건물이다. 정면에 걸린 ‘도산서원’ 현판은 조선 최고의 명필 한석봉이 썼다.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린 곳은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병산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등 9곳이다. 충남부터 경상·전라도 지역에 고르게 분포해 한국 서원의 총체적인 특성을 보여 준다. 그중 경북 영주·안동시에 있는 서원 3곳을 방문했다. 이들 지역은 2021년 중앙선 KTX가 개통했고, 이후 2024년 서울역까지 연장 운행하게 되면서 단 2시간여 만에 서울 간 이동이 가능해졌다.


먼저 영주역에서 차를 갈아타고 20여 분을 달려 영주 소수서원에 도착했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서원의 시초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중종 37년(1542) 풍기군수 주세붕이 순흥 출신의 고려시대 유학자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집인 사묘를 세웠고, 다음 해 백운동서원을 건립한 것이 이 서원의 시초다. 

소수서원으로 향하는 길은 꼿꼿한 신비의 기개가 연상되는 소나무 수백 그루가 숲을 이뤄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특히 운치 있게 뻗은 소나무 가지들은 서원에 가까워질수록 서원 쪽으로 숙이고 있어 마치 공경을 표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서원의 정문인 지도문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니 건물 어디선가 유교 경전을 읽는 이들의 낯선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뜻을 헤아릴 수 없는 소리이지만, 마치 조선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로 극적이었다.

 

 

도산서원 진입로에서 바라본 낙동강 물줄기.
도산서원 진입로에서 바라본 낙동강 물줄기.

 

병산서원 전경.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과 만대루를 지나면 강당과 동재, 서재가 있다.
병산서원 전경.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과 만대루를 지나면 강당과 동재, 서재가 있다.



소수서원은 크게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강학공간은 독서를 통한 학문의 즐거움을 의미하는 지락재를 시작으로 성현의 길을 따라 학문을 구하는 학구재,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일신재를 지나 깨어 있어 마음을 곧게 한다는 직방재에 이르게 된다. 이즈음이면 학문을 크게 이루게 되므로 비로소 명륜당으로 불리는 강학당에 들어 세상의 이치를 밝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배출된 인재만 4000여 명에 달한다. 대부분 조선 성리학 체계를 수립하는 토대를 마련한 퇴계 이황의 제자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서원 밖 둘레길을 걷다 보면 소수박물관이 나타난다. 명종이 내린 친필 편액 원본과 조선 선비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을 마주할 수 있으니 들러보길 권한다. 

대쪽 같은 선비의 절개를 느끼게 했던 영주에서 다시 한 시간을 내달려 안동 지역으로 향했다. 안동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로 불릴 만큼 유교문화의 원형을 간직한 도시다.

먼저 서애 류성룡 선생이 생전 제자들을 가르쳤던 안동 병산서원으로 향했다. 병산서원은 자연과 사람이 한 폭의 그림이 되는 ‘서원 건축의 백미’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서원으로 향하는 둘레길은 낙동강의 은빛 백사장과 맑은 물이 흐르는 가운데 병풍을 둘러친 듯한 병산이 아름다움에 취하게 한다. 경내에 있는 휴식공간 만대루는 수려한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지만 아쉽게도 문화재 보호를 위해 현재는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돼 있다.

경관뿐만 아니라 병산서원은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며 많은 학자를 배출한 의미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병산서원에 간직된 서애 선생의 문집을 비롯한 각종 문헌과 책판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서원의 강학공간인 입교당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착한 본성에 따라 인간 윤리를 닦아 가르침을 바르게 세우는 전당’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아늑하면서도 선비의 품격이 느껴지게 한다.

 

영주 소수서원 내에 학문을 닦고 배우는 공간인 강학당에서 유교 경전을 읽고 있다.
영주 소수서원 내에 학문을 닦고 배우는 공간인 강학당에서 유교 경전을 읽고 있다.



병산서원의 아름다움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안동의 대표 서원인 도산서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서원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구불구불한 비탈길도 험난하거니와 하필 궂은 장대비까지 쏟아져 시야를 확보하기조차 힘들었다.

가까스로 도착한 도산서원 양편 산기슭에는 절벽이 자리해 있다. 이곳은 퇴계 이황이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산책하던 곳이다. 장맛비로 불어난 낙동강 물줄기를 바라보며 경내로 들어서자마자 우측에 자리한 도산서당부터 들렀다. 1560년에 지어진 이곳은 퇴계가 말년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직접 가르쳤던 곳으로, 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자그마한 온돌방에는 붓과 벼루, 탁자 위 책 한 권만이 정갈하게 자리해 배움의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중앙 계단을 오르다 보면 도산서원의 강당인 전교당이 위용을 자랑한다. 1574년에 세워진 전교당은 유생들이 경학을 공부하는 서원의 중심 건물이다.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대청과 서쪽에 한존재라는 온돌방이 자리해 있다. 정면에 걸린 ‘도산서원’ 현판은 ‘조선 최고의 명필’ 한석봉이 쓴 것이다.

전교당 아래에는 도산서원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기숙사 동재와 서재가 있다. 냉방시설도 없던 그 시절 그들은 요즘 같은 무더위에도 오직 불굴의 정신력으로 학문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으리라.

경내를 둘러보는 내내 쏟아졌던 장맛비에 뾰로통 입을 내밀던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졌다. 목표를 향한 굳건한 의지만 있다면 빗줄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을 선비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순간 겸손한 자세로 학문에 임했을 ‘참교육’의 자세를 발견했다. 수백 년이 흘렀건만 조선의 서원은 그렇게 우리에게 교육의 의미를 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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