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진리에 반기 든 괴짜...지구는 돌고 세상도 돈다

입력 2026. 07. 21   16:20
업데이트 2026. 07. 2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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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스테이지>> 뮤지컬 ‘시데레우스’

우주의 진실 밝히는 두 학자 갈릴레오·케플러
하늘만 보는 아버지 보며 한숨 쉬는 딸 마리아
3인이 그려내는 균형 잡힌 넘버·세련된 대사
별 쏟아지는 무대의 아름다움, 그 자체로 예술


뮤지컬 ‘시데레우스’ 공연 모습. 사진=랑
뮤지컬 ‘시데레우스’ 공연 모습. 사진=랑


17세기 밤하늘에서 따끈따끈한 소식이 배달됐다. 서울 대학로 플러스씨어터가 통째로 천문대로 변했다. 뮤지컬 ‘시데레우스’ 얘기다.

이 작품은 우주를 가득 채운 별들의 경이로움을 객석으로 생생하게 쏘아 올린다. 천동설이 절대 진리로 군림하던 시대가 배경이다. 독일의 젊은 수학자 케플러가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에게 우주의 규칙이 담긴 편지를 보내며 이야기는 출발한다.

국경과 신분을 깨고 비밀리에 오가는 편지. 두 사람은 지동설을 연구하며 우주의 진실을 향해 한 발 내디딘다. 하지만 가톨릭교회의 탄압과 종교재판이라는 무시무시한 장벽이 이들을 막아선다. 갈릴레오의 딸이자 수녀인 마리아는 교회의 엄격한 교리와 아버지를 향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백승우 작가와 이유정 작곡가가 손잡고 만든 3인극 ‘시데레우스’는 5번째 시즌을 맞아 8월 30일까지 플러스씨어터에서 관객을 만난다.

과학의 낭만을 노래하지만, 한편으로는 우주에 미친 괴짜들이 벌이는 유쾌한 소동극 같다. 대부분의 관객은 갈릴레오와 케플러의 시선을 따라가게 된다. 위대한 발견에 취하고 역사적 발걸음에 동행한다. 하지만 이 작품을 두 번 이상 본다면 감상법을 살짝 바꿔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마치 롤플레잉 게임에서 캐릭터를 고르듯이 제3의 인물인 마리아의 시선으로 무대를 바라보는 방법이다. 시야를 조금만 틀어도 전혀 다른 작품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리아에게 두 학자는 영웅이 아니다. 대책 없는 우주 덕후들일 뿐이다. 세금이 밀리고 집안 형편은 엉망인데, 갈릴레오는 온종일 망원경만 들여다본다. 독일에서 편지를 보내 아버지의 불타는 열정에 기름을 붓는 케플러도 도긴개긴이다. 어머니가 살아 있었다면 당장 등짝 스매싱감이다.

두 사람의 낭만은 마리아에게는 생존이자 현실이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별만 바라보는 아버지를 향해 마리아가 내쉬는 깊은 한숨은 작품에 색다른 재미와 격한 공감을 더한다.

2024년 사연 때는 안재영 ‘갈릴레오’, 정휘 ‘케플러’, 유낙원 ‘마리아’였다. 이번 오연은 박민성 ‘갈릴레오’, 기세중 ‘케플러’, 이상아 ‘마리아’로 봤다.

시데레우스는 아주 세련된 작품이다. 오연까지 오면서 그나마 남은 모난 곳이 깎여 나갔을 것이다. 테두리 없는 식빵처럼 버릴 데가 없다. 대사는 어록의 감동과 일상의 찰짐이 황금비율로 들어갔다.

갈릴레오와 케플러는 극이 다 끝나 갈 때까지 단 한 번도 직접 마주하지 못하지만, 편지가 오가고 교감이 두터워지는 것과 비례해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진다. 그들의 대화는 대부분 편지 속 문장이지만, 독자들은 어느새 두 사람의 편지를 실시간 대화처럼 읽게 된다.

뮤지컬 ‘시데레우스’ 공연 모습. 사진=랑
뮤지컬 ‘시데레우스’ 공연 모습. 사진=랑



넘버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완벽하게 따른 500㏄ 크림 생맥주 같다. 무대의 아름다움 또한 대사와 넘버 못지않다. 시데레우스의 무대는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다.

두 사람의 이중창에 마리아가 종종 가세하는데, 그는 지구와 달의 공전을 바라보는 수성 같다. 그래서 세 사람의 노래는 삼중창이면서 ‘이중창+독창’으로 들리기도 한다. 마리아에게 감정 이입이 되면 100% 다크초콜릿을 베어 문 듯한 맛이 난다.

박민성은 2019년 초연 때부터 오연 중 무려 4번의 시즌에서 ‘갈릴레오’를 맡았다. 그의 ‘갈릴레오’는 작가의 머릿속에 살아 있던 캐릭터를 그대로 꺼내 관객 앞에 내놓은 갈릴레오일 터. 그의 허당 갈릴레오도 훌륭하지만, 종교 재판정에서 갈릴레오와 딸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만나는 장면이 참 좋다. 마리아가 아빠 갈릴레오의 손을 잡고 기도한다. 그 기도문은 수녀가 되기 위해 집을 떠날 때 갈릴레오가 해 줬던 축복의 기도문이다. 이제 그 축복을 딸이 아빠에게 돌려주고 있다.

기세중의 ‘케플러’는 눈에 확 들어온다.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하지 못할 구석이 없다. 실존했던 케플러와는 거리가 있겠지만, 작품 속 캐릭터로는 찰떡이다. 갈릴레오와 ‘천재 이공계’의 특징을 완벽히 공유하면서도 덕후의 느낌을 ‘산뜻하게’ 비벼 넣었다. 기세중이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마리아’ 이상아는 기본적으로 선한 연기에 강하다. 외모도, 소리도 밝고 가볍다. 신이 포장지까지 손수 곱게 싸서 건넨 선물 같은 재능이다. 교황청의 압박과 아버지를 향한 연민·사랑 사이에 선 마리아의 고뇌를 과장되지 않은 담담한 색깔로 채색하고 있다. 그의 눈에 힘준 연기도 좋아하는데, 아버지의 빈 연구실에서 케플러와 만나는 장면에서 볼 수 있다. 갈릴레오, 케플러와의 삼중창에서도 제 몫을 다한다.

이상아는 데이바 소벨의 『갈릴레오의 딸』을 읽으면서 인물을 깊이 탐구했다고 한다. 독립군 가족의 마음에 빗대 해석했다는 캐릭터 설명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삼중창 넘버 ‘돌아갈 수 없어’는 작품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솔로곡 ‘얼룩’은 부녀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대목이다. 작품은 성경 여호수아서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라는 구절을 인용해 천동설과 종교적 권위의 충돌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갈릴레오에게 진리를 기록하는 잉크는 마리아에게 가문을 무너뜨리는 검은 얼룩이다. “아버지, 당신이 해 온 일들이 내게 검은 얼룩을 남겨요”라는 절규가 참 아프다. 당대 사회의 편견과 종교적 압박이 검은 잉크처럼 무대를 물들이는 연출도 인상 깊다.

운 좋게도 보러 간 날은 스페셜 커튼콜의 날이었다. 맛있는 저녁밥을 배부르게 먹고 별생각 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유성우 하나가 뚝 떨어진 것 같은 날.


필자 양형모는 15년 이상 연극·뮤지컬·클래식·국악 등을 담당해온 공연전문기자다. ‘일주일에 1편은 공연을 보자’는 ‘일일공’의 주창자. 스포츠동아 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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