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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함 2척, 그리고 장병 340명.’ 1990년 3월 25일. 대한민국 해군이 미국 주도의 세계 최대 다국적 해상훈련인 환태평양훈련(RIMPAC·림팩)에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뎠던 당시의 전력 규모다. 일주일간 태평양의 거친 파도에 맞서며 겨우겨우 진주만에 도착한 한국 해군에 붙은 별명은 ‘큐티 네이비’였다고 한다.
당시 미국 등 다른 국가들이 항모전단이나 4000~5000톤급 최첨단 구축함을 몰고 훈련에 참여한 것을 감안하면 타국군의 눈에 우리 해군이 그렇게 비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랬던 한국 해군이 36년 만에 반전을 이뤄냈다. 호위함 2척도 겨우 보내던 나라가 주최국을 제외하고 이지스구축함과 잠수함을 동시에 보낸 유일한 국가로 우뚝 선 것이다. 정조대왕함, 도산안창호함, P-8A 등 최신 전력을 포함해 수상함 3척, 잠수함 1척, 항공기 2대, KAAV 6척 등 화려한 라인업을 완성했다. 참여 인원도 700여 명으로 첫 참여 때와 비교해 2배 가까이 늘었다.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이번 림팩에서 한국 해군은 아시아 국가 최초로 연합해군구성군사령관 직책을 맡아 다국적 해군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리더십과 작전 역량도 인정받았다.
기자는 지난주 하와이를 찾아 이번 림팩의 ‘두뇌’에 해당하는 연합해군구성군사령부(연해구사) 지휘소를 방문했다. 조국의 국기를 달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참모진 사이에 반질반질한 목제 지휘 탁자가 눈에 띄었다. 연해구사 사령관인 김인호(소장) 기동함대사령관이 여기서 지시를 내리면 전 세계 해군 장교들이 일제히 수첩을 펴고 내용을 받아 적는다고 한다. 대한민국 해군의 달라진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달라진 한국 해군의 위상은 하와이에 머무는 동안 자연스레 살갗에 와 닿았다. 우리 조선소에서 건조돼 훈련에 참여한 필리핀 최신 호위함 ‘미겔 말바르함’의 함장은 취재진을 마주하자마자 서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과거 한국에서 어학당과 합동군사대학교를 거친 인연이 있다는 그는 K방산의 신속한 납기와 우수한 전투 성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박 훈련 기간 진행된 ‘함정 공개의 날’엔 정조대왕함에만 2900명이 넘는 사람이 몰려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강렬한 뙤약볕에 그은 얼굴로 눈빛을 반짝이던 장병들의 모습 역시 깊은 울림을 준다. 태평양 상공을 비행하는 초계기 P-8A의 승조원들은 해저 잠수함의 미세한 숨소리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듯 미동도 없이 모니터를 응시했다. 심해를 가르는 도산안창호함의 한 수습 수병은 비좁은 식량창고 한편에 간이 잠자리에 머물면서도 세계적인 훈련에 동참한다는 자부심과 뿌듯함이 가득했다. 정조대왕함과 대전함 소속 장병들은 전역에 따른 인력 공백으로 훈련 임무에 차질이 생길까 두 달간 스스로 전역을 연기하는 ‘군인정신’을 보여줬다.
현지 취재는 마무리됐지만 태평양 전선에서의 훈련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까지 정박 상태에서 다국적군이 머리를 맞댄 시뮬레이션에 치중했다면, 이제부턴 해상 전력들이 거친 파도와 정면으로 부딪치며 훈련에 임하기 때문이다.
국제안보 무대에서 우리의 ‘체급’이 커진 만큼 한국 해군이 짊어져야 할 해양 안보의 책임도 더없이 무거워졌을 터다. 그 무게를 넉넉히 견뎌낼 우리 해군의 미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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