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 전투비행단(2018)
영국에 편입돼 싸운 폴란드군
차별·편견 이겨낸 필사의 비상
화려한 전공·영웅 무용담 아닌
나라 빼앗긴 망명자 서사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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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데니스 델릭
출연: 마체이 자코시엘니(얀 도널드 주임바흐), 피오트르 아담치크(비톨트 우르바노비치), 카라 시어볼드(빅토리아 브라운), 안토니 크롤리코프스키(비톨트 톨로 워쿠치에프스키), 앤드루 우달(토머스 존스)
“(본토 항공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에 영국 공군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처칠의 하원 연설에서) 인류 역사상 이토록 많은 사람이 이토록 적은 사람에게 이토록 큰 빚을 진 적이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윈스턴 처칠 지음, 까치 펴냄)
마지막 희망의 섬, 1940년 여름의 하늘
1939년 9월 1일 새벽,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했다. 동쪽에서는 소련이 밀려들었다. 두 강대국이 동시에 덮친 폴란드는 한 달 만에 무너졌다. 세계 지도에서 폴란드가 사라졌다. 폴란드 공군 조종사들은 루마니아와 헝가리를 통해 탈출, 프랑스로 건너갔다. 그러나 1940년 5월, 프랑스마저 독일에 무너졌다. 조종사들은 다시 배를 타고 영국 해협을 건넜다. 두 번째 망명이었다. 그들은 영국을 ‘마지막 희망의 섬’이라고 불렀다.
1940년 6월, 영국에는 약 6000명의 폴란드 공군 인력이 집결했다. 그러나 영국 공군(RAF) 수뇌부는 이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독일군에 한 달 만에 무너진 공군 아니냐’는 편견 때문이었다. 영국 공군은 폴란드 조종사들에게 전투 임무 대신 영어 수업과 비행 규정 암기를 시켰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이 영어 교실에 앉아 있는 동안 영국 공군은 독일 루프트바페와 매일 하늘에서 싸우며 조종사를 잃고 있었다.
1940년 7월 10일, 브리튼전투가 시작됐다. 히틀러의 목표는 분명했다. 영국 공군을 궤멸시켜 제공권을 장악하고, 영국 본토 상륙작전 ‘바다사자’를 실행하는 것. 루프트바페는 매일 수백 대의 전투기와 폭격기를 영국 하늘로 보냈다. 영국 전투기 사령부는 필사적으로 막았지만 손실이 누적되고 있었다. 8월 말에 이르러 상황은 위기에 달했다. 영국 공군 사령부는 결국 폴란드인들에게 문을 열었다. 7월과 8월, 302와 303 두 개의 폴란드 전투비행대대가 창설됐다.
그리고 8월 30일, 303 비행대대가 전투 비행대대로 공식 선포되기 하루 전, 훈련 비행 중이던 루드비크 파슈키에비치 소위가 독일 전투기를 발견하고 편대를 이탈해 격추했다. 훈련 비행 중 독단 행동이었다. 귀환 후 그는 군기 위반으로 질책받았다. 그리고 격추를 축하받았다. 다음 날 303 비행대대는 공식 임무에 투입됐다. 첫 15분의 전투에서 6대의 메서슈미트를 격추했다. 단 한 대의 손실도 없이. 영국 공군 사령부의 편견이 무너지는 데 15분이 걸렸다.
303 비행대대는 브리튼 전투 42일 동안 독일 전투기 126대를 격추했다. 브리튼전투에 참가한 모든 RAF 비행대대 중 최다 격추 기록이었다. 전체 145명의 폴란드 조종사들은 전투기 사령부 전체 전력의 5%였지만 격추 전과는 전체의 15%를 차지했다. 브리튼전투의 절정인 9월 15일에는 출격한 RAF 전투기 조종사 다섯 명 중 한 명이 폴란드인이었다.
조국을 빼앗긴 자들의 분노가 전투력이 됐다
영화 ‘303 전투비행단’은 이 실화를 정면으로 다룬다. 영화는 폴란드 침공 장면으로 시작한다. 조국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 탈출한 조종사들이 영국에 도착해 차별과 편견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는 과정이 영화의 첫 번째 축이다.
중심 인물은 얀 주임바흐다. 303 비행대대에서 가장 유명한 실존 인물 중 하나다. 경쾌하고 대담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조종사로 그려진다. 그러나 영화는 그의 무용담보다 그가 왜 싸우는지를 더 집요하게 보여준다. 폴란드에 두고 온 가족, 폐허가 된 조국, 돌아갈 곳 없는 망명자의 분노. 영화 속 폴란드 조종사들은 영국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독일을 향한 복수를 위해, 그리고 언젠가 조국을 되찾겠다는 희망을 붙잡기 위해 싸운다.
영국인 비행대대장 로널드 켈렛과 폴란드 조종사들의 관계도 영화의 중요한 축이다. 처음에 회의적이었던 켈렛이 폴란드인들의 전투력을 목격하며 변해가는 과정이 담긴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르지만, 하늘에서는 같은 편이다. 영화는 그 과정을 통해 신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303 비행대대의 전투 방식은 영국 공군 교범과 다르다. 영국 공군은 편대 비행과 원거리 사격을 교범으로 삼는다. 폴란드 조종사들은 적기에 거의 충돌할 것 같은 근접 거리까지 파고든 뒤 사격한다. 한 영국 조종사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들이 적 폭격기와 전투기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면 충돌할 것 같다.” 위험하지만 효율적이다. 근접 사격은 명중률을 높이고, 폴란드 조종사들의 격추율은 다른 비행대대를 압도한다. 영화는 공중전 장면과 지상의 일상을 교차시킨다. 출격과 귀환을 반복하는 사이, 돌아오지 않는 동료의 빈자리가 하나씩 늘어난다. 폴란드어와 영어가 뒤섞인 막사에서 조종사들은 웃고 마시고 노래한다. 내일 또 하늘에 올라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웃음과 공포 사이의 긴장이 전체를 관통한다. 영화는 폴란드 관점에서 만들어진 전쟁 영화다. 승자의 서사가 아니라 나라를 빼앗기고 타국의 하늘에서 싸운 망명자들의 서사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할리우드가 만들어온 브리튼전투 영화들과 결이 완전히 다르다.
영웅은 어디로 갔나, 나라 잃은 조종사들의 전쟁 후 이야기
1945년 5월, 전쟁이 끝났다. 브리튼전투의 하늘을 누볐던 폴란드 조종사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환영이 아니었다.
폴란드 조종사들은 돌아가지 못했다. 1946년 6월 8일 런던에서 열린 연합군 승전 퍼레이드. 폴란드 부대는 초청받지 못했다. 소련의 눈치를 봐야 했던 영국 노동당 정부가 소련이 세운 폴란드 공산정권만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전투에서는 영국을 구했지만 평화의 자리에서는 배제됐다. 귀국하면 소련이 세운 공산 정권에 의해 서방 첩자로 몰릴 수 있었다. 조국으로 돌아갈 수도, 영국에서 정착할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브리튼전투의 영웅들은 런던에서 택시 운전사, 청소부, 공장 노동자로 살다가 생을 마쳤다. 303 비행대대 지휘관 비톨트 우르바노비츠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여생을 보내며 회고록을 썼다. 1996년 8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폴란드가 배신당한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브리튼전투에 참가했던 체코슬로바키아 조종사들은 더 가혹한 운명을 맞았다. 영국에서 귀국한 체코 조종사들은 1948년 2월 공산당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면서 연합군과 함께 싸운 경력이 오히려 죄가 됐다. 공산 정권은 이들을 ‘서방 스파이’ ‘부르주아 용병’으로 규정했다. RAF에서 체코 비행대를 지휘했던 카렐 야누셰크 장군은 19년형을 선고받았다. 동부 모라비아의 비밀 감옥 미로프에는 전직 조종사 110명이 수용됐다. 전쟁 중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탈출을 반복하며 영웅으로 이름을 날렸던 요제프 브릭스는 귀국 후 30년형을 선고받았다.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두 나라의 조종사들은 다른 선택을 했지만 같은 결말에 이르렀다. 돌아가지 않은 폴란드인들은 타향에서 이름 없이 늙었고, 돌아간 체코인들은 감옥에서 젊음을 잃었다. 전쟁 중 하늘에서 가장 많은 적기를 격추했지만 전쟁이 끝난 뒤 역사에서 가장 먼저 지워진 사람들이었다. 강대국의 논리 앞에서 약소국의 헌신은 그렇게 지워졌다.
필자 김인기는 전자신문인터넷 미디어전략연구소장, 전자신문인터넷 온라인편집국장, 테크플러스 대표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영화 속 IT 교과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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