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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육군지휘참모대학(Seskoad) 위탁교육과정 때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인도네시아 장교들과 국제규범을 주제로 공동연구를 했다. 그 성과를 싱가포르 군사저널 『포인터(Pointer)』에 게재하는 뜻깊은 경험도 했다. 한국군 대표로 참여하면서 느낀 바를 공유하고자 한다.
우리가 주목한 핵심은 강대국조차 자국 행위를 정당화할 때 반드시 규범의 언어를 동원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란 공습을 유엔 헌장 제51조 자위권으로, 베네수엘라 작전은 법 집행으로 설명했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법적·역사적 근거를 들어 주장하며 중재 결과를 거부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자위권으로 포장했다. 이처럼 위반조차 규범의 언어로 정당화된다는 사실 자체가 역설적으로 규범이 여전히 국가 행동을 제약하는 실질적 힘을 발휘함을 방증한다.
우리는 공동연구를 통해 중견·소국의 전략적 주도성이 3가지 기제로 작동함을 정리했다. 첫째는 ‘방어’다. 유엔 총회 결의안 표결, 정부 규탄 성명, 제재 같은 외교적 신호로 위반을 견제하는 것이다. 둘째는 ‘강화’다. 분쟁을 국제법 기반의 사법·중재 절차에 회부해 규범을 정착시키는 것으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페드라브랑카 분쟁’ 해결사례가 대표적이다. 셋째는 ‘형성’이다. 사이버·인공지능(AI)·기후안보처럼 규칙이 유동적인 신생 영역에서 조기 참여·연대로 새 규범을 주도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국제규범 위반사례에 대한 인도·태평양 국가들의 대응방식을 강력·조정·기권·지지 네 유형으로 분류하고, 의존도에 따라 세 유형으로 구분했다. 의존도가 낮아 유연하게 움직이는 ‘자율형’(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높은 안보 의존도를 바탕으로 동맹 이익과 규범이 일치할 때 강한 입장을 취하는 ‘동맹형’(한국·일본·호주·필리핀 등), 비대칭적 의존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 회피나 동조에 머무는 ‘제약형’(미얀마·라오스 등)이다.
이번 연구가 우리 군에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안보는 무기체계와 병력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국제법과 규범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역시 핵심적인 안보자산이라는 점이다. 우리 장병에게는 전술적 전문성은 물론 국제질서를 읽고, 그 안에서 입지를 넓혀 갈 전략적 안목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다국적 동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며 쌓은 신뢰와 인적 네트워크가 유사시 가장 든든한 안보자산이 된다는 것을 이번 위탁교육에서 절감했다. 구조적 한계 속에서도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연대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군에 요구되는 또 하나의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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