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7월 14일 프랑스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그러나 이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왕당파 세력의 반격, 혁명파의 내부 갈등, 이어진 왕정복고와 시민들에 대한 억압은 역사적 진보의 지난함을 여실히 보여 준다. 우리는 수십 년에 걸친 격동의 서사를 영화와 문학작품에서 생생히 경험할 수 있다.
2018년에 개봉된 영화 ‘원 네이션’은 바스티유 습격 이후 시민들의 시선에 비친 혼란상을 드러낸다. 관객들은 세탁공, 유리세공업자 같은 무명 소시민들이 마주한 삶의 무게와 분노, 이들을 광장으로 이끈 시대적 열망을 마주하게 된다. 이들은 반대세력의 냉소와 억압에 맞서 저항의 횃불을 들었다. 영화는 2시간 러닝타임 내내 혁명이 몇몇 인물의 영웅적 결단이 아닌 수많은 이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결과라는 점을 일깨운다.
시민들의 손으로 시작된 혁명은 만만찮은 저항에 부딪친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93년』은 왕당파 세력의 반란이 정점에 달했던 방데전투를 다룬다. 소설에서 위고는 자비로운 혁명을 대변하는 공화파 군인 고뱅과 타협 없는 혁명을 주장했던 정무관 시무르댕, 이에 맞선 왕당파 후작 랑트낙의 갈등과 비극을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이 작품은 혁명파와 왕당파 간 이념 충돌을 통해 신념이 광기로 변할 때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내란은 진압됐지만 혁명은 더 잔인한 내부 갈등과 마주해야 했다.
1983년 개봉한 영화 ‘당통’은 혁명의 중심에 섰던 두 지도자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의 파멸적 대립을 다룬다. 반란과 대외전쟁 위기 속에서 혁명정부는 단두대를 앞세워 공포정치의 칼날을 휘둘렀다.
혁명을 이끌었던 동지들이 서로 의심하고 단두대로 보내는 비극은 방데전투가 벌어진 지 불과 1년여 뒤의 일이었다. 혁명 성과를 지키는 일이 시작만큼이나 어렵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대목이다.
단두대의 피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다시 왕정이 들어섰다. 나폴레옹 실각 이후 부르봉 왕정의 전제정치에 분노한 시민들은 1830년 7월혁명을 일으켰지만 끝내 공화정을 세우지 못했다. 1832년 6월 시민들의 저항 역시 왕정 군대에 의해 처참히 짓밟힌다.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은 6월 봉기에 참여한 청년들과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장발장은 총상을 입은 마리우스를 극적으로 구출해 내지만 시민들이 쌓아 올린 바리케이드는 무너졌고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다.
6월 봉기는 실패했지만, 혁명의 이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프랑스는 마침내 공화정 시대를 열었다. 오늘날 역사는 프랑스혁명을 민주주의를 향한 전환적 사건으로 기록한다. 전진과 후퇴, 성공과 실패, 희망과 좌절의 지난한 반복 끝에 마침내 ‘자유·평등·박애’는 인류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았다. 수많은 무명의 희생과 절망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프랑스혁명의 궤적은 우리에게 말해 준다. 때로 멈추거나 퇴행하는 듯 보여도 역사는 결국 진보한다는 사실을.
E. H. 카가 『역사는 무엇인가』에서 강조했듯이 역사적 진보는 직선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며, 우회와 후퇴를 수반하는 과정이다. 그 거대한 흐름을 추동한 것은 포기하지 않았던 시민들의 응축된 열망이었다. 프랑스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은 이 진리를 새삼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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