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최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아는 학생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씁쓸한 격세지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기성세대는 그 노래만 불러도 콧등이 시큰하지만 학생들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노래는 일제강점기 소설가 안석주의 시에 아들 안병원이 곡을 붙인 것으로 1947년 발표됐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등 통일을 향한 순결한 염원을 애절한 곡조에 담아낸 명곡이다. 원래 가사에선 우리의 소원이 ‘독립’이었으나 나중에 ‘통일’로 바뀌었다고 한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분단과 전쟁의 비극을 겪은 우리 국민에게 위로와 희망의 등불 같았다.
80년 가까운 분단사에도 세계를 놀라게 한 7·4 남북공동선언이나 2000년 이후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한때는 통일이 임박한 것처럼 보였던 역사적 순간이 적지 않았다. 그 자리에선 어김없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눈물로 합창되며 온 겨레의 마음을 한데 모았다. 그 열광과 흥분 뒤에는 오히려 냉혹한 분단 현실과 희박한 통일의 가능성이 확인됐다.
이처럼 냉온탕식의 반전을 거듭한 결과 통일은 ‘소원’의 범주에서조차 밀려나며 낯선 단어가 돼 버렸다. 북한이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적대적 두 국가체제’까지 내세우자 통일은 현실성이 없거나 기껏해야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로 치부되고 있다. 가뜩이나 팍팍해진 일상에서 통일이라는 거창한 담론을 언급하는 것은 사치나 망상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꿈에도 소원인 통일”을 이대로 잊고 지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통일은 민족주의 관점은 물론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 면에서도 당위성을 갖는다. 외세에 의한 분단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 자체가 당연한 순리이기도 하다. 인위적 분단체제는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에도 걸림돌이 된다. 통일은 우리의 안녕을 위해서도 필수과제인 셈이다.
통일에 따른 막대한 편익도 빼놓을 수 없다. 한때 ‘통일 대박론’이 붐을 이룰 때는 통일한국의 잠재력이 엄청날 것이라는 세계 유수 투자자문회사의 보고서가 나왔다. 남한의 기술과 자본에 북한의 인력과 지하자원이 결합해 엄청난 승수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정보 자체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오류나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통일비용 때문에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머리론 이해하면서도 가슴엔 잘 와닿지 않는 데 있다. 남북 화해·협력의 거듭된 실패와 좌절의 결과 이제는 상대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깊게 자리 잡았다. 그나마 이산가족 상봉이나 금강산 관광 같은 호시절을 기억하는 기성 세대와 달리 현 세대는 더욱 냉담하다. 북한을 향한 적대와 혐오를 넘어 무관심한 지경에 이르면서 통일 감수성이 매우 낮아졌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라도 감수성의 복원이 필요하다. 경험이 부족한 시대일수록 감수성이 중요하다. 유발 하라리는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어떤 실천적 지식을 얻는 공식을 ‘경험×감수성’으로 정의했다. 이는 북한과 의미 있는 만남을 당분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기에 통일 감수성이라도 미리 키워 둘 필요성을 시사한다.
언젠가 통일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군사력이나 경제력만이 아니다. 서로를 같은 민족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정서와 감성이 뒷받침돼야 진정한 통일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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