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옛 만화 한 편이 있다. 1965년 이정문 화백이 그린 ‘서기 2000년대의 생활의 이모저모’라는 만평이다. 어린 시절 그 그림을 처음 봤을 때는 그림으로 표현된 미래의 모습을 믿을 수 없었다. 가정에서 태양열로 전기를 만들고, 무선으로 움직이는 소형 TV 전화기를 들고 다니며,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화면으로 공부한다니 황당한 상상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금 손에 들린 스마트폰과 전기자동차를 바라보면 거의 모든 게 ‘실현된 현실’이 됐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거의 예측이 늘 이렇게 편리하고 밝은 미래만 그린 것은 아니다.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미래에 물과 공기를 돈 주고 사 먹을지도 모른다”는 과학 글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그때는 동네 수돗가에서 물을 벌컥벌컥 마시던 때여서 대부분이 그 예측은 말도 안 된다며 웃어넘겼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편의점에서 자연스럽게 생수를 산다. 정수기와 공기청정기가 놓여 있는 가정이 대부분이다. 한때 과장처럼 들리던 경고가 어느새 현실의 풍경이 됐다.
요즘 동영상 플랫폼에는 미국 알래스카의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장면과 방글라데시 다카의 뿌연 하늘을 담은 영상이 자주 등장한다. 뉴스에는 유럽의 기록적 폭염과 광범위한 홍수, 반복되는 가뭄, 높아지는 산불 위험이 보도된다.
이러한 환경위기는 먼 나라의 뉴스로만 머물지 않는다. 해마다 길어지는 폭염, 예고 없이 쏟아지는 폭우, 점점 경계가 사라지는 계절의 모습으로 인한 불안은 이미 우리 일상을 흔들고 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교과서 속 낱말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생활방식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열쇠 말이 됐다.
그래서 환경운동은 지식으로 머물지 않고 삶의 태도로 나아가야 한다. 학교에서 환경교육과 환경봉사가 단지 실적이나 점수를 채우는 일로 끝나선 안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생각을 바꿔야 행동의 의미를 찾게 된다.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환경을 잠시 빌려 쓰는 사람에 가깝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아름다운 지구를 함부로 소모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잘 가꿔 돌려줘야 할 책임 있는 임차인이다. 후손들이 언젠가 우리를 돌아보며 “조상들은 편리함만 좇지 않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며 살았다”고 기억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것이다.
환경에 대한 의식은 거창한 구호보다 생활 속에서 반복하며 강해진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는 일, 물을 아껴 쓰는 일, 식판의 잔반을 줄이는 일, 생활관을 나서며 전등을 끄는 일 등과 같은 작고 사소한 습관이 중요하다.
군대는 이런 습관을 몸에 새기기에 좋은 공간이다. 매일의 반복은 생각을 습관으로 만들고, 습관은 마침내 삶의 태도로 자리 잡는다. 몸이 먼저 기억하는 친환경의 감각, 곧 ‘근육기억’이 생길 때 환경보호는 조금씩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정확히 예언할 순 없다. 그러나 어떤 미래를 남길지는 선택할 수 있다. 오늘 무심코 실천한 작은 절제가 먼 훗날 누군가가 마실 깨끗한 물 한 모금이 되고, 안심하고 들이마실 맑은 공기로 되돌아온다. 편리함만을 좇아 달려온 문명의 속도를 이제는 책임의 방향으로 돌려야 할 때다. 예언이 현실이 된 시대에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더 편리한 삶을 추구하기보다 더 오래 지속될 삶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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