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영화 - 코만단테(2023)
감독: 에도아르도 데 안젤리스
출연: 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살바토레 토다로 함장), 요한 헬덴베르흐(벨기에 선원 대표), 마시밀리아노 로시(부함장), 실비아 다미코(살바토레 토다로 함장 아내), 아리아나 디 클라우디오(안젤리나)
伊 잠수함 함장 살바토레 토다로
적국 상선 격침 뒤 생존자 구조
잠항 포기한 채 적 호송한 실화
적과 아군이 함께 위험 견디는
전쟁의 논리 아닌 또 다른 선택
눈빛·침묵으로 전하는 인간애 담아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지음, 청아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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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침 명령과 구조 사이에서
1940년은 연합국에 가장 어두운 해였다. 유럽 대륙은 사실상 나치 독일의 손에 들어갔다. 영국만 홀로 남았다. 이탈리아는 독일의 동맹국으로 1940년 6월 참전했다. 이탈리아 해군 잠수함들도 대서양에 투입돼 연합국 선박 격침에 나섰다. 이탈리아 잠수함 전술은 독일과 달랐다. 독일 U보트가 늑대 떼를 이뤄 집단으로 공격했다면 이탈리아 잠수함은 단독 작전이 많았다. 그리고 그 이탈리아 잠수함 중 하나에 살바토레 토다로 소령이 타고 있었다.
1940년 10월 대서양. 코만단테 카펠리니함의 토다로 함장은 벨기에 상선 카발로호를 격침했다. 임무는 완수됐다. 이제 잠항해서 자리를 벗어나면 됐다. 그런데 토다로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침몰하는 카발로호 주변 바다에 벨기에 선원 26명이 떠 있었다. 자신이 격침시킨 배의 생존자들이었다. 토다로는 명령을 내렸다. “건져 올려라.”
잠수함 안에 26명을 더 태울 공간은 없었다. 일부는 잠수함 갑판 위에 올라탔다. 그 상태로는 잠항이 불가능했다. 적에게 발견되면 즉시 공격당할 수 있었다. 토다로는 그 위험을 알면서도 구조한 선원들을 안전한 곳에 내려줄 때까지 수면 위로 항해했다. 국제법은 이 문제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었을까. 1907년 헤이그협약과 1909년 런던 선언은 해상 전투에서 격침 후 생존자 구조를 권고했다. 그러나 권고였을 뿐 강제 의무는 아니었다. 토다로의 선택은 국제법이 아니라 개인의 양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법이 요구하지 않았지만, 그는 했다.
이 소식은 독일군에도 전해졌다. 독일 해군 잠수함대 사령관 카를 되니츠 제독은 이렇게 말했다. “성경 속 선한 사마리아인조차 이런 일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쟁이지 자선사업이 아니다.”
토다로는 상부의 문책을 받았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이듬해 1월 영국 상선 셰익스피어호를 격침한 뒤에도 생존자 22명을 구조해 카보베르데제도까지 예인했다. 토다로가 전쟁 중 직접 구조한 적국 선원은 총 48명이었다. 1942년 12월, 토다로는 튀니지 해안에서 초계임무 중 영국군 스핏파이어의 공격을 받아 전사했다. 이탈리아 해군은 훗날 그의 이름을 군함에 붙였다. 현재 이탈리아 해군 212급 잠수함 1번함이 ‘살바토레 토다로’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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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 적을 구한 함장
영화 ‘코만단테’는 이 실화를 정면으로 다룬다. 잠수함 액션 영화가 아니다. 총성과 폭발보다 침묵과 선택을 보여주는 영화다. 토다로는 영웅적 포즈를 취하지 않는다. 구조를 결정하는 순간에도 부하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장면에서도 그는 조용하다. 확신에 찬 조용함이다. 그 확신을 그는 대사가 아니라 눈빛과 침묵으로 전달한다. 상부 문책에 맞서는 장면에서 그는 단 한마디만 한다. “바다에서는 내가 결정한다. 뭍에 돌아가면 나를 파면해도 좋다.” 그 말의 무게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영화의 긴장감은 행동이 아니라 갈등에서 나온다. 구조한 선원들을 데리고 수면 위로 항해하는 동안 카펠리니호는 극도로 취약한 상태다. 적의 항공기가 나타날 수 있다. 연합군 군함이 접근할 수 있다. 승조원들은 함장의 결정을 이해하면서도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 두려움과 신뢰 사이에서 토다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영화가 공들이는 것은 구조된 벨기에 선원들과 이탈리아 승조원들이 좁은 잠수함 안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이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다. 방금까지 적이었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 같은 위험을 공유하는 순간 적이라는 경계가 흐려진다. 담배 한 개비를 나눠 피우고, 눈빛으로 감사를 전하고, 말없이 어깨를 토닥이는 장면들. 벨기에 선원 하나가 감자튀김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뜻밖의, 그러나 가장 인간적인 순간이다.
이 영화는 승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추축국 편에서 싸웠던 패전국 이탈리아의 시선이다. 파시스트 정권 아래서 명령을 받으면서도 ‘바다의 법칙’을 택한 함장의 이야기다. 영화는 이야기를 과거에 가두지 않는다. 감독 에도아르도 데 안젤리스는 2018년 이탈리아 페토리노 제독이 토다로를 인용하며 지중해 난민 구조의 의무를 역설하는 연설을 듣고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80년 전 대서양에서 적국 선원을 구한 함장의 선택이 지금 지중해에서 난민 구조를 외면하는 현실과 충돌한다. 영화는 그 충돌을 조용하지만 정확하게 건드린다. 토다로의 답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그리고 그 행동은 지금도 유효한 질문을 남긴다. 전쟁 중에도, 위기 속에서도, 인간은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그가 대서양 한복판에서 증명한 것이다.
적을 구한 군인들, 전쟁사 속 인간애의 순간
이런 선택을 한 군인이 살바토레 토다로 혼자가 아니었다. 전쟁의 냉혹한 현실을 거스르고 적이나 약자를 살린 군인들이 있었다. 명령도, 법도, 이익도 아닌 오직 인간으로서의 판단으로.
1943년 12월 20일, 독일 브레멘 상공. 미군 B-17 폭격기 ‘예 올드 펍’이 독일 전투기들의 공격을 받아 반파됐다. 꼬리 부분이 날아갔고, 기관총 11정 중 10정이 작동 불능이었으며, 조종사 찰리 브라운 중위는 어깨에 부상을 입었다. 이미 그날 적기 두 대를 격추한 독일 루프트바페 에이스 프란츠 슈티글러 중위가 이 폭격기를 발견했다. 한 대만 더 격추하면 기사철십자훈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폭격기에 바짝 붙어 내부를 들여다봤다. 기관총에 걸쳐 죽어 있는 사수가 보였다. 부상당한 승무원들이 동료를 붙잡고 있었다. 슈티글러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슈티글러는 독일 대공포 부대가 사격하지 못하도록 폭격기 옆에 나란히 비행하며 엄호했다. 그는 영국해협까지 호위한 뒤 경례를 하고 돌아섰다. 두 사람은 47년이 지난 1990년 재회했다. 그리고 200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친구로 지냈다.
전장이 아닌 폐허에서도 같은 선택을 한 군인이 있었다. 1944년 11월 소련군이 바르샤바를 향해 진격하던 무렵 파괴된 도시의 폐건물 다락방에 한 남자가 숨어 있었다. 유대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슈필만이었다. 그 앞에 독일군 장교가 나타났다. 빌헬름 호젠펠트 대위. 그는 신고하지 않았다. 며칠 치 식량을 가져다줬고, 독일군이 곧 철수할 것이라는 정보도 알려줬다. 슈필만은 살아남았다. 호젠펠트는 전쟁 후 소련군에 체포돼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스라엘 야드 바?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호젠펠트에게 ‘세상의 의인상’을 수여했다.
토다로는 적국 선원을 건져 올렸고, 슈티글러는 적군 조종사를 살렸으며, 호젠펠트는 유대인 피아니스트를 숨겨줬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전쟁의 논리가 “그냥 둬라” 혹은 “죽여라”고 명령하는 순간 그들은 다른 선택을 했다. 그러나 역사는 그 선택을 기억한다. 전쟁이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지는 못한다는 것을 증명한 순간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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