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탄
정 연 주
공적말하기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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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품위 있는 사회』에서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것은 습득된 게 아니라 선천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 이하로 보는 것은 습득됐을 확률이 높다”고 지적한다. 나치의 교육처럼 인간이 인간을 낙인찍고 ‘인간 이하’로 보게 되는 메커니즘이 학습된 결과임을 설명한다.
우리는 자라면서 가정이나 학교, 미디어 등 사회적 관행에 의해 수많은 ‘생각의 문법’을 익힌다.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이나 느낌은 대부분 가까운 이들과 문화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프로그래밍이 언제나 옳거나 우리를 행복하게 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부조리한 제도, 일상 속 차별과 억압 같은 것도 그것으로 이득을 보는 집단에 의해 더욱 촘촘하게 이뤄지기 쉽다.
특히 이는 우리가 반복하는 언어로 인해 정교하게 강화된다. 효율성을 앞세워 타인의 존엄을 깎아내리는 말, 진영논리에 갇혀 상대를 헐뜯는 말 모두 우리도 모르는 새 습득된 ‘매뉴얼’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사용하는 ‘말의 회로’를 의식적으로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공동체의 가치를 돌보는 데 중요한 공적 말하기 상황에선 모든 발언을 엄격한 기준으로 해체해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어떤 왜곡이나 편견이 숨어 있진 않을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따져 봐야 하는 것이다.
가령 공공 프로젝트나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사회적 약자를 명명함에 있어 독립된 인격체란 의식 없이 ‘처리가 필요한 민원 대상’ 혹은 ‘예산 소모 집단’으로 언급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언어 뒤에 숨어 있는 약자를 향한 합법적이고 그럴싸한 세련된 방식의 ‘모욕’을 지적하고, 그를 포함한 우리에게 프로그래밍된 생각과 언어습관을 톺아봐야 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과 사회가 짜놓은 편리한 매뉴얼을 비판 없이 ‘다운로드’해 내뱉기는 쉽다. 반면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가 어디서 프로그래밍된 것인지, 이 표현이 혹시 누군가의 상처를 들추진 않을지 의식적으로 살피며 이야기하는 건 쉽지 않다. 무리 지어 휩쓸려 크게 외칠수록 검증은 더 어려워진다.
무심코 반복하는 언행이 이 사회의 매뉴얼을 형성하는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 역시 누군가를 무시하고 모욕하는 관행의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세밀한 감수성이 필요하다. 그 역시 쉽지 않다. 그나마 쉬운 방법은 나보다 감수성이 뛰어난 이들의 지적에 열린 태도를 보이며 불편한 마찰을 받아들이려 애써 보는 것이다. 상대가 ‘예민하게 군다’며 함부로 폄하하거나 생각이 다르다고 주장하며 거칠게 밀어내선 안 될 일이다.
생각이 다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를 내 기준으로만 판단하기엔 우리 모두 한없이 모자란 존재다. 그동안 프로그래밍된 것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고 돌아보며 ‘수동적으로 세팅된 나’를 의심해 보자.
그 첫 시작으로 자신의 말이 어떠한지를 점검하는 것을 강력히 권한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데 있어 알게 모르게 잘못 프로그래밍된 것을 강화하지 않고, 정확히 ‘인간적 측면’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대하도록 훈련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나의 말하기를 살피는 일이다.
내가 한 말이 공동체에 어떤 궤적을 남길지 세심하게 돌아보는 감수성을 갖추고 이미 익숙해진 편견의 언어를 찾아 과감히 지워 내는 실천은 나이가 많건 적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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