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숨은 공신 정경달

입력 2026. 07. 09   15:22
업데이트 2026. 07. 0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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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건 공무직 
육군수도기계화보병사단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는 이순신 장군이 왜 민족의 영웅인지를 다시 한번 일깨우는 소중한 자리였다. 영웅은 혼자만의 힘으로 될 수 없다. 영웅을 보좌하는 조연이 필요한 이유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을 도운 여러 인물 중 반곡 정경달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그는 1592년 임진왜란 발발 시점부터 1602년까지 전란 체험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반곡난중일기』를 남겼다.

정경달은 전라도 장흥에서 태어나 1570년(선조 3년) 문과에 급제했다. 1592년 선산부사(善山府使) 재임 중 임진왜란을 맞았다. 그는 지방관으로서 선산을 지키면서 금오산 등 일대를 옮겨 다니며 유격전으로 왜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1594년 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임금에게 정경달을 자신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임명해 달라고 주청한다. 종사관은 지금의 비서실장 격이다. 종사관 정경달은 둔전(屯田)을 감독하는 일에 마음을 다했다. 정경달은 둔전 경영의 최고 적임자였다. ‘둔전’은 개간하지 않은 땅을 경작하게 해 그 수확물을 관청의 경비나 군대 양식으로 쓰도록 한 밭이다. 그는 연해마을에서 둔전 경영을 맡아 군량미 조달에 만전을 기했다. 문관으로서 행정업무와 무관들이 하기 힘든 일도 맡아 잘 처리하고 백성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며 군량을 확보했다. 이순신의 빛나는 승전은 정경달의 이런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누란의 위기에서 정경달과 이순신은 문관과 무관이 협력해 승전한 이상적인 사례로 꼽힌다. 또한 정경달은 이순신이 원균의 모함으로 투옥됐을 때 장군을 옥에서 구명하고자 유성룡과 이항복을 찾아가기도 했고, 선조를 직접 독대하면서 유능한 장군을 죽이면 나라가 위태롭다고 직간하며 그의 석방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순신의 애국심과 적을 방어하는 재주는 일찍이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전쟁에 나가 싸움을 미루는 것은 병가의 좋은 계책인데, 어찌 적세를 살피고 싸움을 주저한다 하여 이를 죄로 돌릴 수 있겠습니까. 왕께서 이 사람을 죽이면 나라가 망할 것이니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그의 시를 소개한다. 전쟁이 끝나고 가족과 재회해 일상이 회복된 기쁨을 노래했다.

“此聲何使此心悲 八箇年來始此聲 紅杏綠楊皆喜色 當盃休說亂離情.”

“이 (피리) 소리는 어찌하여 내 마음을 슬프게 하는가/ 지난 8년 이래로 처음 이 소리가 있게 됐구나/ 붉은 살구 파란 버들 모두 다 기쁜 빛이어라/ 술잔 앞에서 난리 겪은 마음일랑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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