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의 명절 풍경은 늘 비슷했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자연스럽게 해병대 얘기를 했고, 웃음과 추억 속의 군 생활 이야기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누군가는 훈련소 시절의 힘들었던 기억을 꺼냈고, 누군가는 전우들과 함께했던 순간을 자랑스럽게 늘어놨다.
우리 가족에게 해병대는 단순한 군 복무의 의미만은 아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병에서 해병대 부사관 28기로 임관해 원사로 전역하셨다. 평생을 해병대 간부로 살아오신 할아버지께선 자식 모두를 해병대로 이끌었고, 가족들에게 해병대 정신을 몸소 보여 주셨다.
아버지 또한 해병대 병 697기로 복무하며 언제나 해병대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계셨다. 가족들의 삶 속에는 늘 해병대가 함께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 할아버지께서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이후 할아버지께서 안치되신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았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곳에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순직한 수많은 선배 해병이 잠들어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곳의 공기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묵직한 슬픔과 숙연함 속에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청춘과 삶을 바쳐 조국을 지켜 내 지금의 평범한 일상을 만든 선배 해병들의 묘역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나라를 지켜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감사인사를 드렸다.
우리 집안의 해병대 전통은 세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사촌 형은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고, 나와 사촌 동생(병 1329기)은 해병대에 입대했다. 각자의 길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나라를 위한 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하나였다.
현재 해병대 신병 1330기 수료를 앞두고 있다. 신병교육대에서의 시간은 결코 쉽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고, 몸과 마음이 한계에 다다랐던 날도 있었다.
그 순간마다 가족들의 얼굴과 어린 시절 바라봤던 사진 속 해병의 모습이 떠올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가족들이 이어 온 자랑스러운 전통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어느덧 어릴 때 막연히 동경하던 해병이 되고, 해병대라는 이름이 나 혼자만의 꿈이 아니라 가족을 이어 주는 소중한 연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앞으로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해병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 선배 해병들이 지켜 온 명예를 이어받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강한 해병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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