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스포츠는 어떻게 힙한 산업이 됐나
확실한 성취감 일상 루틴 정착
대체불가능한 오프라인 관람
관중 늘고 상품시장 급성장
팬덤 타고 IP산업 진화도
AI 세계에서 느낄 수 없는
현장감이 결국 소비자 움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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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은 동계올림픽,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대형 스포츠 행사가 연중 이어지는 해다. 과거에 스포츠는 올해처럼 국가적인 행사가 있어야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지는 영역이었다. 그런데 최근 스포츠에 대한 관심은 사뭇 다르다. 남녀노소 러닝붐에 참여하고 한국프로야구 경기를 찾는 관중의 숫자는 매년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굿즈산업이 커지며 소비문법도 달라졌다. 한마디로 오랜 역사를 지닌 스포츠 산업이 떠오르는 유망주로 탈바꿈하고 있다.
산업의 변화는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스포츠산업조사에 따르면 가장 최신 자료인 2024년 기준으로 스포츠산업 매출은 84조7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년(2023년)보다 4.5% 증가한 수치며, 2020년과 비교하면 코로나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5년 새 60% 성장한 규모다. 사실 스포츠산업에는 여러 가지 소비가 섞여 있다. 소비자 행동 기준으로 보면 직접 ‘하는’ 스포츠, 경기를 ‘보는’ 스포츠, 나아가 관련된 문화를 ‘소비하는’ 스포츠로 나눠 볼 수 있다. 각 영역에서 스포츠산업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하는’ 스포츠…자기관리 산업이 되다
운동은 남녀노소의 자기관리 루틴이 되고 있다. 과거에 운동은 소수의 취미거나 다이어트 혹은 근육을 키워 ‘보디 프로필’을 찍는 등 특별한 ‘결심’에 가까웠던 반면 최근에는 ‘운동 하나쯤은 루틴으로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됐다. 실제로 데이터를 살펴보면 스포츠산업조사에서 스포츠용품업 매출은 6.4% 증가해 하위분류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러닝화·기능성 의류처럼 일상적으로 반복 구매되는 생활운동 장비 수요 증가를 의미한다. 다이소에서 스포츠용품 상품군을 확대하고, 스포츠웨어 매출이 크게 늘어난 것도 더 이상 운동이 전문영역이라기보다 일상의 일부가 됐다는 것을 나타낸다.
운동 인구가 이처럼 확대되는 것은 단순히 ‘건강에 좋아서’만은 아니다. 운동을 시작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운동만큼 노력 대비 성과가 확실한 것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즉,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서 확실한 성취감이라는 과실을 제공한다. 최근 주목받는 운동인 하이록스에 이러한 변화가 녹아 있다. 하이록스는 1㎞ 달리기와 기능성 운동을 번갈아 수행하는 실내 피트니스 경기다. 다른 사람들과 겨루는 형태인 동시에 자신의 기록을 경신해 가며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스포츠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종목에 포함된 기능성 운동으로는 버피나 로잉, 월볼 등 온몸을 쓰는 동작이 고루 포함돼 있다. 단순히 몸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몸을 ‘잘 쓰는’ 것을 통해 신체적 효능감을 꾀한다.
‘보는’ 스포츠…이벤트 산업이 되다
한국프로야구는 스포츠 관람이 어떻게 오프라인에서 경험소비로 진화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과거에는 연고지를 기반으로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면 지금은 특별히 응원하는 팀이 없더라도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야구장을 찾는다. 사람들이 야구장을 찾는 이유는 SNS에 공유되는 게시물에서 드러난다. 관중석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 야구경기를 관람하는 수만 명의 관중 등 오프라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사진과 영상에 묻어난다. 경기가 끝난 후 응원팀과 관계없이 ‘합동 떼창’을 부르는 영상에는 ‘인류애가 살아난다’ ‘이게 낭만이다’ 같은 댓글이 달린다. 지금과 같은 디지털 중심 시대에 이러한 오프라인 이벤트는 대체불가능한 경험으로 작용한다.
한국프로야구의 관중은 2024년 1000만 명 돌파, 2025년 1200만 명을 넘어섰다. 관중의 구성도 바뀌었다. 티켓링크 기준 시즌 누적 온라인 예매자의 57.5%가 여성이며, 20대의 경우 63.6%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히 양적 증가가 아니라 소비 문법이 변화함을 의미한다. 실제로 야구장은 복합문화공간이 되고 있다. 야구장 곳곳에 설치된 즉석 사진 기계에서는 선수들과 함께 찍은 듯한 특수 프레임으로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고, 뽑기 매장에서는 야구팬을 위한 키링·배지 등을 뽑을 수 있다. 잠실 구장의 김치말이 국수처럼 일명 ‘야푸(야구푸드)’라 불리는 먹거리도 필수 즐길거리다.
‘소비하는’ 스포츠…IP산업이 되다
팬의 성격이 바뀌면서 스포츠 산업은 IP 산업으로 나아간다. 과거에는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 즉 경기력·순위·기록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경기장 밖에서 전개되는 서사와 커뮤니티가 팬덤을 움직인다. 스포츠 소비문화가 아이돌 팬덤을 닮아간다고 하는 이유다. 물론 경기력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팬덤이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가 산업의 무게중심을 움직인다. 최근 KBO에서 공식 굿즈로 선보인 숄더백도 하나의 사례다. 요즘 젊은 층의 ‘백꾸(가방꾸미기)’ 문화에 맞춰 취향을 전면에 드러낼 수 있는 메시망 포켓과 키링을 달 수 있는 D링을 빠트리지 않았다. 산업 내부에서도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사례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나타난다. 레이싱 스포츠 F1의 흥행요인에는 경기 운영력만 있지 않다. 경기장 바깥을 조명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F1, 본능의 질주’)의 힘이 컸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숨가쁘게 움직이는 팀원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전 세계 20명밖에 없는 F1 드라이버 개개인의 서사를 본 사람들은 단순히 스포츠 경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경기에서 시작해 여기에 얽힌 거대한 세계관에 몰입하고 팬이 돼 문화를 소비하게 된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화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의 변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인공지능(AI)이라는 시대변화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인력을 대체하고 중독적인 콘텐츠를 쏟아내는 시대에 사람들은 AI 세계에서 느낄 수 없는 경험을 갈구한다. 자신의 몸을 움직이면서 얻는 성취의 감각, 수만 명의 사람과 동지애를 느끼는 현장감, 화려한 기술보다 인간적인 서사에 매료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속에는 소비자의 변화를 읽어내고 쇄신하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다. 결국 산업의 성쇄는 트렌드를 읽는 힘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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