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추억을 소환하는 장소가 되길

입력 2026. 07. 07   15:38
업데이트 2026. 07. 0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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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세명대학교 미디어콘텐츠창작학과 교수
김기태 세명대학교 미디어콘텐츠창작학과 교수



현재 운영 중인 책방이 품고 있는 책들은 하나같이 어여쁘다. 내 손길을 거치지 않은 책이 없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오래된 책은 1700년대에 나온 『동의보감』 목판본 전질을 비롯해 육당 최남선 선생이 펴낸 『동국통감』(1함 5책)과 『삼국사기』(2책)가 있다. 그리고 1934년 출판된 ‘일본 가고시마 고등농림학교 개교 25주년 기념 논문집’이 있는데, 여기엔 ‘동양의 파브르’로 불리는 나비학자 석주명 선생의 논문 2편과 우리나라 최초의 조류학자 원홍구 선생의 논문이 실려 있다.

1935년 시문학사에서 펴낸 김영랑의 『영랑시집』과 1939년 문장사 발행의 김상용 시집 『망향』, 1946년에 나온 김기림 시집 『바다와 나비』, 1948년 윤동주 시인의 3주기를 맞아 정지용 시인 등이 참여해 펴낸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최초본도 있다. 1951년 6·25전쟁 중 서울에서 출간된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시의 정수를 느끼고, 1955년 영웅출판사에서 발간한 박목월 시인의 첫 시집 『산도화』를 통해 청록파 시인의 초창기 작품을 볼 수 있다.

책방을 찾아오는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책은 최인훈의 대표작 『광장』 초판본을 들 수 있다. 1961년 ‘정향사’라는 출판사에서 발행된 이 책은 남북 분단이라는 비극을 가장 잘 조명한 문제작으로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여전히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인훈 선생이 생전에 10번 이상 개정을 거듭하는 바람에 개정판이 계속 발간된 터라 초판본의 가치는 더욱 커졌다.

또 하나 박완서 선생의 등단작이자 최초 장편소설 『나목(裸木)』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게 아니라 당시 박완서 선생이 장편소설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여성동아 복간 기념 제3회 50만 원 고료 여류 장편소설 당선작’이라는 표제 아래 ‘여성동아’ 1970년 11월호 별책부록으로 발행된 것이어서 매우 귀한 책이다. 그 밖에 만화 단행본으로 『검정고무신』 초판본 전권과 방학기 원작의 『바람의 파이터』 초판본 전권이 있다. 외국만화 한국어판으로는 『슬램덩크』 『코난』 『드래곤볼』 등의 초판본 전권을 볼 수 있다.

정기간행물의 경우 월간 ‘뿌리깊은 나무’와 ‘씨알의 소리’는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모두 모아 놨으며, 우리나라 최장수 문예지 월간 ‘현대문학’도 1955년 1월 창간호부터 125호까지 약 10년 치 분량을 모았다. 각종 학술지와 기관지·협회보 및 사보(社報) 수천 종과 ‘보물섬’ ‘만화광장’을 비롯한 수백 종의 만화잡지도 누군가의 추억을 소환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책방은 원하는 사람에게 책을 팔기도 하고, 책을 사지 않아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 나갈 예정이다. 또 훗날 연구자들이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책방에 있는 책들의 표지와 간기면 등을 디지털화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한편 첨단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책박물관를 만드는 작업도 계획 중이다.

나아가 이제껏 모은 책이 구경거리로만 그치지 않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정말 좋은 책을 읽고 싶다’는 욕심과 함께 잊었던 추억을 소환하게 하고 싶다. 그리하여 다시 책이 존중받는 날이 오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요즘은 온통 그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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