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에서 취재하고 음지에서 첩보활동

입력 2026. 07. 07   15:25
업데이트 2026. 07. 0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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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그들이 온다 - 최고의 위장 신분은 기자? 

공익 vs 국익…정보 수집 목적 다르지만 외형 비슷
최근에도 체코서 불법 활동 협의로 中 특파원 체포
언론 자유와 국가 안보 두 가치 지키는 기준 필요해


체코, 스파이 혐의 중국 기자 체포

지난 5월 15일 체코 검찰은 중국 기자를 스파이 혐의로 기소했다. 언론과 정보활동의 경계가 얼마나 예민한 문제인지를 다시금 보여주는 사건이다. 체코 당국은 이미 지난 1월 중국 공산당 계열 매체인 광명일보 프라하 특파원인 양이밍을 ‘외국 세력을 위한 불법 활동 혐의’로 체포했다. 지난 2월 발효된 체코 개정 형법은 단순 간첩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외국의 영향력 공작에 대응하기 위해 이 조항을 신설했는데, 이번에 최초로 적용된 것이다.

체코 방첩기관(BIS)은 그가 단순한 취재 활동을 넘어 중국 정보기관과 연계해 현지 인사들을 접촉하며 정보활동을 했다고 보고 있다. 주로 체코 공산당 대표 등 친중 인사를 중심으로 프라하의 주요 인물들을 접촉하며 정보를 수집한 혐의다. 특히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만을 공식 방문한 밀로시 비스트르칠 체코 상원의장과 마르케타 아다모바 전 하원의장 등 친대만 성향 정치인에게 불리한 정보를 수집하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체코의 한 중국 전문가는 양이밍 체포 당시 라디오 인터뷰에서 “광명일보는 중국 공산당과 연계된 신문으로 해외 특파원 중 일부는 정보기관 요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기자라는 신분이 정보활동의 수단으로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기자와 스파이는 본질적으로 다른 직업이다. 기자는 공익을 위해 사실을 확인하고 공개한다. 스파이는 국익을 위해 은밀히 정보를 수집하고 때로는 정보를 조작하거나 자국에 유리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기자는 공개성을, 스파이는 은밀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두 직업의 활동 방식에는 유사성이 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질문하며, 네트워크를 넓혀야 한다. 공개된 내용보다 내부 동향, 분위기, 정책 결정자의 생각, 비공식 발언의 뉘앙스를 중시한다. 그래서 정상적 저널리즘의 취재 행위와 정보요원의 정보수집 행위는 외형만 보면 비슷해 보일 수 있다.

바로 그 유사성 때문에 기자 신분은 정보기관에 매력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기자는 질문할 명분이 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정치인에게 정책 방향을 묻고, 학자에게 국제정세를 묻고, 기업인에게 산업 동향을 묻는 일은 기자의 일상이다. 국경을 넘나들고, 분쟁지역이나 외교 현장에 접근하며, 사회 각층과 접촉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권위주의 국가의 관영매체나 국가가 강하게 통제하는 언론사의 경우 취재와 스파이 활동의 경계가 더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여기서 나온다.


권위주의 국가 정치적 인질 삼을 수도 

역사적으로 정보요원의 최고 위장 신분이 기자인 것도 기자와 정보요원의 활동 양상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의 방향을 바꾼 것으로 유명한 전설적 소련 스파이 조르게는 일본에서 동맹국인 독일의 신문기자로 자유롭게 활동하며, 최고의 정보 소스에 접근할 수 있었다. 1940년대 소련 타스통신 미국 특파원이던 블라디미르 프라브딘도 실제로는 소련 정보기관 KGB의 뉴욕 거점 2인자였다.

냉전기 수십 명의 미국 기자가 기자로 위장한 KGB, GRU 등 소련 정보기관 요원들과 접촉하며 정보를 흘렸다. 기자는 정보요원의 협조자로도 유리하다. 정보의 가치를 잘 알고, 쉽게 정보 소스에 접근하며, 취재원 발굴 및 면담에도 능숙하기 때문이다.

기자로서 고유업무 수행 중 얻은 정보를 정보요원에게 전달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임무를 부여받고 수집에 나서기도 한다. 루머를 퍼트리거나 뉴스를 유포하는 영향력 공작에 동원될 수도 있다. 공무원, 군인, 엔지니어들은 정보를 넘긴 혐의로 체포되기도 하지만 기자들은 취재원이나 오픈 소스를 통해 들었다며 자신들의 행위를 포장하고, 책임을 모면하기도 한다.

실제로 정보기관과 언론의 접점은 여러 차례 드러났다. 1975~1976년 정보기관의 불법행위를 조사한 미국 의회의 처치위원회는 CIA가 언론을 신분위장, 정보수집, 연락책, 선전활동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했음을 확인했다. 1977년에는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보도로 유명한 칼 번스타인이 “25년간 400명 이상의 언론인이 CIA에 협력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후 CIA는 언론인 활용을 제한하는 내부 규정을 만들었다. 이는 언론의 신뢰가 무너지면 실제 기자들의 안전까지 위협받는다는 반성에서 비롯됐다. 스파이가 기자 행세를 하면 독재국가나 분쟁지역 권력자는 진짜 기자까지 간첩으로 몰아갈 명분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파이 활동을 위한 기자 신분 활용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2022년 2월 폴란드에서 스페인·러시아 이중국적 프리랜서 기자 파블로 곤살레스가 체포됐다. 폴란드 당국은 그가 러시아 군 정보기관 GRU와 연계됐다고 주장했고, 그는 2024년 8월 미국·러시아·유럽 국가 간 대규모 스파이 교환을 통해 러시아로 돌아갔다.

반대 방향의 위험도 있다. 2023년 3월 러시아에서 체포된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에반 게르시코비치는 간첩 혐의로 징역 16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역시 2024년 8월 스파이 교환으로 풀려났다. 미국 정부와 언론계는 그를 부당하게 구금된 기자로 규정했다. 이 사례는 기자 신분이 스파이에게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권위주의 국가가 실제 기자를 스파이로 몰아 정치적 인질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줬다.


치열한 정보전 시대의 방첩 감각 키워야

정보기관이 활용할 수 있는 위장 신분은 기자만이 아니다. 학자, 연구원, 기업인, 컨설턴트, 문화교류 인사, 비정부기구(NGO) 활동가, 유학생, 싱크탱크 관계자 등 다양하다. 이들은 자료를 모으고, 반복적 만남으로 신뢰를 쌓으며, 처음에는 사소한 의견이나 설명을 요청하다 점차 민감한 내용을 요구한다. 정보수집 방법은 기밀 문서를 훔치는 것뿐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서 얻은 작은 조각을 합쳐 전략적 그림을 완성하는 방식도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잉 공포가 아니라 성숙한 방첩 감각이다. 외국 기자와 인터뷰한다고 해서 위축될 필요는 없다. 민주사회에서 언론과의 접촉은 정상적이고 필요한 일이다. 다만 정치인, 공직자, 연구원, 기술자, 전직 관료 등 정보를 가진 사람이라면 몇 가지 기본 원칙은 지켜야 한다.

공개 가능한 정보와 기밀 정보를 구분하고, 비공식 대화라는 말에 기대어 민감한 내용을 흘리지 말아야 한다. 상대가 특정 인물의 성향, 내부 동향, 정책 결정 과정, 미공개 일정, 안보·기술 관련 세부 사항을 집요하게 묻는다면 경계해야 한다. 반복적 만남 뒤 선물, 해외 초청, 원고료, 자문료 등 대가가 제공되는 경우에도 위험성을 점검해야 한다.

이번 체코 사건의 교훈은 단순히 “외국 기자를 조심하자”가 아니다. 신분보다 행동을 봐야 한다. 기자는 질문할 권리가 있고, 사회는 그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 동시에 기자 신분을 빌린 위장 활동, 취재를 가장한 접근 등 관계 형성을 통한 정보수집 가능성을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언론 자유와 국가 안보 중 하나를 포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두 가치를 동시에 지키는 정교한 기준이 필요하다.

오늘날 정보요원은 세미나장에서 명함을 건네고,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내며, 커피 한잔을 사이에 두고 가볍게 대화할 수도 있다. 체코의 외국 특파원 스파이 혐의 기소는 단순히 먼 나라의 흥미로운 뉴스가 아니다. 치열한 정보전 시대의 개방사회가 갖춰야 할 방첩 감각을 일깨우는 경고음인 것이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 배정석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국가정보원에서 방첩업무를 담당했으며 현재 국제정보사학회와 한국국가정보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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