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대신 잡은 감시장비

입력 2026. 07. 06   16:01
업데이트 2026. 07. 0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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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민 병장 해병대2사단 정보대대
이준민 병장 해병대2사단 정보대대



어린 나이에 홀로 중국 유학길에 올라 베이징대 의과대학에서 꿈을 이루고자 치열하게 살았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겠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밤샘 공부도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조금 늦은 나이인 스물다섯에 마주한 해병대 입대와 최전방 복무의 현실을 처음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사방이 통제된 해안 경계작전부대에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밤낮없이 감시장비의 스크린을 응시하는 일은 생각보다 외롭고 고된 과정이었다. 동기들은 병원에서 임상지식을 쌓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데, 차가운 새벽 바다를 바라보며 멈춰 서 있는 건 아닌지 조급함과 무력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나마 가진 의학지식이 이곳 최전방에선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공허하던 찰나 부대에서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게 됐다. 이 책은 군대라는 공간을 바라보는 지금까지의 오만한 시선을 부드럽게 만들며 군 생활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 놨다.

저자인 폴 칼라니티는 미국에서 촉망받는 서른여섯의 젊은 신경외과 의사였지만, 의사로서 정점을 앞두고 폐암 4기 판정을 받는다. 매일 죽음을 치료하던 ‘의사’가 하루아침에 죽음을 마주한 ‘환자’로 전락한 것이다. 인생이 통째로 무너질 수 있는 절망 속에서도 그는 원망 대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기록했다. 그는 책에서 의사의 진짜 임무는 단순히 죽음을 물리치는 게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가 다시 일어서 처한 환경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새벽 근무 중 졸린 눈을 비비며 바라보던 감시장비 화면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생명을 살리는 가치’를 좁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수술도를 잡고 환자의 숨소리를 듣는 것만이 의사의 역할은 아니었다. 지상감시중대의 일원으로서 서해 최전방을 감시하는 이 행위가 곧 후방에 있는 수천만 국민의 일상과 평화, 생명을 보호하는 숭고한 ‘생명수호’ 작전이었던 것이다. 의대 강의실에서 치열했던 시간, 이곳 해안경계부대에서 혹한의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시간은 본질적으로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책을 덮으며 앞으로의 군 생활을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꾸기로 다짐했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은 비록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생명의 숭고함은 최전방에서 근무 중인 한 젊은 해병의 가슴에 커다란 이정표로 남았다. 전역 후 다시 청진기를 잡게 되는 날엔 이곳 군대에서 배운 강인한 책임감과 인간을 향한 깊은 이해를 가슴에 품은 훨씬 단단하고 성숙한 의사가 돼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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