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시대에 고전을 읽는 이유

입력 2026. 07. 06   16:00
업데이트 2026. 07. 06   16:14
0 댓글
강용철 경희여중 국어교사 EBS 강사
강용철 경희여중 국어교사 EBS 강사



학교 현장에서는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학생들이 고전 때문에 고전한다.” 말맛은 조금 우습지만, 그 안에는 지금 우리의 독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많은 학생이 고전을 두껍고 낯선 책, 시험에나 나오는 어려운 작품쯤으로 여긴다. 생각해 보면 고전이 어려운 까닭은 그것이 오래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너무 빠른 시대를 사는 우리가 느리게 생각하고 한 문장을 붙들고 버티는 일에 서툴러져서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무엇이든 너무 빠르다.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요약된 정보가 쏟아지고, 영상은 핵심만 잘라 보여 주며, 인공지능(AI)은 묻는 즉시 답을 내놓는다. 정보의 속도만 보면 우리는 전에 없이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의 불안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이 옳은가?” 이런 질문 앞에선 여전히 쉽게 흔들린다. 정보는 넘쳐나는데 생각의 뿌리는 오히려 얕아지는 역설! 빠른 답이 많아질수록 오래 생각하는 힘은 더 귀해진다.

그 힘을 길러 주는 가장 오래된 스승 가운데 하나가 고전이라고 믿는다. 고전은 인류가 오랜 시간 붙잡고 고민해 온 질문을 오늘의 우리에게 다시 건네는 책이다.

『논어』는 사람다움과 관계의 예를 묻고 『맹자』는 인간의 선함과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오디세이아』는 귀환과 인내를, 『돈키호테』는 조롱 속에서도 놓지 말아야 할 이상을, 『레 미제라블』은 법과 정의, 용서와 구원의 문제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시대와 문화는 달라도 고전은 결국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묻는다.

이 점은 다른 나라의 교육을 들여다봐도 흥미롭다. 영국은 여전히 셰익스피어와 주요 세계문학을 학교 독서교육의 중심에 두고, 프랑스는 철학교육을 통해 질문하고 따져 묻는 힘을 길러 왔다. 이탈리아에도 고전문명과 인문문화를 깊이 공부하는 전통이 남아 있다. 어느 나라가 더 낫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빠른 시대일수록 여러 나라가 여전히 오래된 텍스트와 깊은 사유를 교육의 중요 축으로 놓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AI는 답의 속도를 높여 준다. 그러나 고전은 질문의 깊이를 키워 준다. 요약본은 줄거리를 빠르게 알려 줄 순 있어도 인물이 선택 앞에서 머뭇거리던 시간과 흔들리던 마음을 온전히 느끼게 하지는 못한다.

고전 읽기의 가치는 어휘력이나 배경지식에만 있지 않다. 낯선 어휘와 표현을 만나며 말의 폭이 넓어지고, 긴 이야기를 따라가며 이해력과 해석력이 깊어진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자란다는 점이다. 인물의 갈등을 따라가며 선택을 생각하게 되고, 시대의 아픔을 읽으며 타인의 삶을 상상하게 된다. 고전은 머리를 채우는 공부이면서 동시에 마음을 키우는 공부다.

처음부터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한 장면, 한 문장, 한 인물이 마음속에 씨앗처럼 남아 있다가 살아가면서 문득 다시 의미를 틔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고전은 이해할 나이가 돼 읽는 책이 아니라 삶을 더 깊이 이해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빠르게 아는 힘도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깊이 생각하는 힘, 오래 질문하는 힘, 사람과 세상을 넓고 깊게 바라보는 힘이다. 삶이 흔들릴 때 끝내 사람을 붙드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깊이다. 그 깊이는 오래된 문장 앞에서 조용히 고민해 본 사람에게만 천천히 내면화된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