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군이 환태평양훈련(RIMPAC) 역사상 최초로 ‘연합해군구성군사령관’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1990년 첫 참가 이후 36년 만에, 그리고 해당 훈련이 처음 시작된 1971년 이후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최초로 다국적 해상 전력을 총괄 지휘하는 사령탑에 오른 것이다. 차세대 이지스함 정조대왕함과 도산안창호함 등 우리 손으로 만든 최정예 전력에 더해 최신형 해상초계기 P-8 포세이돈이 함께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군사훈련 참가를 넘어, 급변하는 글로벌 안보지형 속에서 대한민국의 ‘힘(Power)’ ‘권력(Authority)’ ‘영향력(Influence)’의 상대적 관계를 재정의하는 중대한 전환점이다.
국제 정치와 안보에서 힘과 권력, 영향력은 절대적 수치로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주변국과의 역학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강하는 상대적 개념이다. 그동안 우리 군이 보유한 첨단 무기체계가 물리적인 ‘힘’의 성장을 의미했다면, 이번 림팩에서 다국적 군의 지휘권을 부여받은 것은 국제사회로부터 우리 해군의 작전 역량과 정당성을 공인받은 ‘제도적 권력’의 획득을 뜻한다. 하지만 제도적 권력은 현장을 압도하는 실질적인 힘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이지스함과 잠수함을 다국적 연합 전력의 선두에 세워 지휘하는 이번 경험은, 대한민국이 가진 물리적 힘을 연합작전의 제도적 권력으로 치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힘과 권력의 결합은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전략적 ‘영향력’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 해양 통상 국가인 대한민국의 생명선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인도·태평양의 광활한 해상교통로(SLOC)로 연결돼 있다. 우리의 안보적 시야 역시 한반도 주변 해역에만 머무를 수 없다. 이번 림팩을 통해 우리 해군은 다국적 해양 안보 질서를 주도하는 핵심 축으로 부상하게 되며, 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대한민국의 외교·안보적 목소리를 키우는 상대적 영향력의 자산이 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미래 해군력 발전의 지향점이 바로 ‘함께 또 따로’의 해양 전략이다. 우리는 미·일 등 가치 공유국들과 함께(Together) 다자간 해양 안보 네트워크를 촘촘히 다지며 글로벌 바다의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의 독자적인 작전수행 능력과 전략적 자율성을 바탕으로 ‘따로(Separately)’ 국가의 핵심 이익과 해양 주권을 수호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 림팩에서의 지휘 경험은 미국 중심의 다국적군 체계 속에서 연합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우리 해군이 독자적인 전략적 파트너로서 우뚝 서는 양면의 역량을 모두 키우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아울러 이번 훈련은 한미동맹을 기존의 한반도 방위 중심에서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공고히 격상시키는 계기다. 미 3함대사령관의 지휘 아래서 특정 국면의 기능적 임무를 수행하던 우리 해군이 이제는 동등한 사령관으로서 한 축을 담당하게 된 것은 한미동맹의 진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강한 국방력은 비용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투자다. 군 지휘부는 이번 림팩을 계기로 다국적 연합작전을 주도할 수 있는 전술적·전략적 안목을 한층 끌어올려야 한다. 우리 사회 역시 제복 입은 장병들이 넓은 바다에서 거둬 올릴 권력과 영향력의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하고 지지해 줘야 한다. 세계의 바다에서 당당히 지휘권을 행사할 대한민국 해군의 도약은, 한반도를 넘어 세계 안보의 중심에서 가치와 국익을 수호하는 가장 든든한 방벽이 될 것이다.
림팩에 참가하는 김인호 제독과 휘하 장병들의 멋진 활약과 무사 귀환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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