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제1·2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전은 교과서나 뉴스 속에서만 접하던 사건이었다. 현재는 해군 부사관으로서 많은 국민과 군인에게 당시의 역사를 생생히 전달하는 서해수호관의 안내 간부가 됐다.
처음엔 수행 중인 역할 중 가장 중요한 일이 좋은 견학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견학의 본질은 관람이 아닌 ‘기억을 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시물 하나하나에는 장병들의 희생과 용기, 서해를 지키고자 했던 사명감이 담겨 있다. 서해수호관의 전시물은 단순한 전시물이 아닌 살아 있는 역사이고, 이를 온전히 보존하고 전달하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고(故) 박동혁 병장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늘 마음이 먹먹해진다. 박동혁 병장은 참수리 357정의 유일한 의무병으로 전우들의 안정과 건강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제2연평해전 당시 박동혁 병장은 본인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포화가 빗발치는 전장에서 다친 전우들을 구조하고 치료하다가 공격을 받아 큰 부상을 입었다.
박동혁 병장은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부상자 치료를 위해 앞장서 전투에 뛰어들었다. 전투가 끝나고 난 뒤에는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돼 83일간 집중치료를 받았다. 정형외과, 외과, 순환기내과, 신장내과 등 당시 모든 군의관이 박동혁 병장의 수술에 나섰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숭고한 희생정신과 물러서지 않는 정신으로 사투를 벌인 진정한 군인을 살리기 위해 모든 군의관이 최선을 다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동혁 병장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게 됐다. 박동혁 병장의 시신에서는 3㎏에 달하는 총탄과 파편이 남아 있었다. 비슷한 나이대여서 그런지 박동혁 병장의 영정을 지날 즈음에 중고생들이 숙연한 표정을 짓거나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공간의 의미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이처럼 용맹하게 맞서 싸웠던 박동혁 병장의 투혼은 군인이 가져야 할 사명감과 용기, 전우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준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희생은 점차 희미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주어진 역할이 바로 서해수호 영웅들의 뜻을 이어 가는 과정이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이 올바르게 전달될 수 있도록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박동혁, 그의 시간은 멈췄지만 우리에게 그의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 그의 군인정신은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될 것이고 계속 대한민국을 지켜 내는 소중한 유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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