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함이 부른 체념을 뚫고 내 길을 찾아 전진 또 전진

입력 2026. 07. 01   16:27
업데이트 2026. 07. 0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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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페르소나 』
  안주를 거부한다…‘참교육’의 배우 진기주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에서 임한림 역을 맡은 배우 진기주.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에서 임한림 역을 맡은 배우 진기주. 사진=넷플릭스


“저는 대한민국 교육부 산하 교권보호국 감독관 임한림입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소연여고에서 일어나는 모든 교권 침해행위를 철저히 응징 후 그 원점까지 파괴하겠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에서 ‘임한림’(진기주 분)은 처음 파견된 학교에서 선생님을 무시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과장되게 나긋나긋하게 말하던 그녀가 갑자기 선전포고하듯이 외치는 포효 장면은 단박에 특전사 조교를 연상시킨다. 이제 이들 선생님에게 무례하다 못해 폭력적인 학생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그 소개 장면 하나가 쉽게 예감하게 해 준다.

진기주가 임한림이라는 캐릭터를 특전사 조교의 포효하는 목소리로 내세운 건 ‘참교육’이란 드라마에서 자신의 역할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파악하고 이 인물을 준비한 결과다. 그것은 처음으로 이 작품에서 연기 합을 맞춘 배우 이성민의 제안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진기주는 임한림이 과거 학창 시절 학교폭력 피해자였지만, 나화진(김무열 분)을 만나 구원받은 뒤 강해지고 싶어 그를 따라 특전사 요원이 된 다음 교권보호국 감독관으로 들어오게 됐다는 일련의 변화과정을 이 특전사 조교의 목소리 하나로 단박에 설명해 낸다.

절로 군기 들게 만드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이 인물이 그간 특전사가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드러내면서 선생님은 물론 학교장까지 손을 놓은 학생들이 이 인물을 통해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대변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훈육방식이 그저 체벌이 아니라 특전사 훈련을 받으면서 체화됐음을 각 잡힌 목소리 하나가 말해 준다.

진기주는 실제로 이 연기를 소화하기 위해 특전사 대원들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와 ‘강철부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연구했다고 한다. 태어나 처음 듣는 특유의 고성이 낯설었지만, 특전사들의 훈련 강도를 반복 시청하면서 단순한 물리적 소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도 했다. “그 포효가 그분들의 문화나 콘셉트가 아니었어요. 진짜 수년간 인간의 한계, 신체의 한계를 계속 넘었을 테니까! 말도 안 되는 근력과 지구력을 갖기 위해 정신력을 한계 끝까지 끌어올리려 나오는 소리구나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렇게 완성된 진기주의 임한림은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똘기 가득한’ 감독관으로서 ‘참교육’이란 작품이 지나치게 무거워지지도, 가벼워지지도 않게 해 주는 균형추 역할을 했다.

이 작품 속 임한림이란 캐릭터와 진기주라는 배우 사이에는 묘한 연결고리가 느껴진다. 진기주가 이른바 ‘이직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지금껏 살아온 과정이 임한림의 변신과정과 겹치는 면이 있어서다. 진기주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잘 알려진 것처럼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녀는 말 그대로 안주를 거부하는 인물이다. 기자 출신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언론인의 삶을 동경했다. 점수에 맞춰 중앙대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가게 됐지만 신문방송학을 복수 전공한 이유다.

졸업 후 국내 최고 대기업인 삼성SDS에 입사해 정보기술(IT) 컨설턴트로 일했지만, 언론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퇴사한 그녀는 G1강원민방의 방송기자로 전직했다. 그녀의 이직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배우라는 사실을 깨닫고선 이후 슈퍼모델 선발대회를 거쳐 마침내 배우로 데뷔했다. 언론에서 알려진 진기주가 퇴사 당시 선배와 동기들에게 남긴 메일 내용은 이러한 그녀의 변화과정을 공감하게 만든다. 진기주는 “적응은 무서운 체념을 부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라고 메일에 적었다.

◀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에서 임한림 역을 맡은 배우 진기주. 사진=넷플릭스
◀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에서 임한림 역을 맡은 배우 진기주. 사진=넷플릭스


여러 역할을 소화해야 하고, 안주가 아닌 변신이 직업적 정체성인 ‘배우’라는 직업은 진기주에겐 딱 어울리는 마지막 선택의 종착지가 돼 줬다. 2015년 드라마 ‘두 번째 스무살’로 데뷔한 그녀는 조연과 카메오를 거쳐 2018년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로 춘사국제영화제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그 후 ‘미스티’ ‘이리 와 안아줘’ ‘오! 삼광빌라’ 같은 작품들을 거치며 필모를 쌓아 온 그녀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삼식이 삼촌’으로 연기꽃을 피웠다.

그 작품 하나하나의 역할을 보면 최고의 앵커를 꿈꾸며 선배 자리를 위협하는 욕망의 후배(미스티), 사이코패스에게 부모를 잃었지만 상처에 매몰되지 않고 타인을 위로하며 꿋꿋이 사랑을 지켜 내는 생존자(이리 와 안아줘), 가족을 책임지며 가혹한 현실 앞에서도 결코 비관하지 않는 ‘파워 인싸’ 인테리어 기사(오! 삼광빌라!), 현실에 찌든 출판사 직원이었지만 시간여행으로 부모님의 비극을 막고자 각성하고 변화하는 능동적 인물(어쩌다 마주친, 그대), 혼돈의 1960년대 아버지를 잃고 각성해 거대한 역사의 격랑에도 뚜렷한 신념을 지켜 나가는 엘리트 여성(삼식이 삼촌)까지 변신의 변신을 거듭했다. 그리고 만난 ‘참교육’의 임한림은 또 다른 과장되고 캐릭터성이 강한 인물로 진기주의 ‘똘기 가득한’ 변신을 그렸다.

연기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그저 그 역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자신 안에 이미 존재하는 역할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임한림이 뿜어내는 특전사의 포효가 새롭게 보인다. 그건 진기주가 이야기했듯이 그저 외침이 아니라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특전사 특유의 정신력의 발로이자 자신 또한 삶과 연기에서 늘 고수해 온 모습이기도 하다. 적응이란 보이지 않는 감옥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부터 탈주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 나가는 모습인 것이다.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기고·방송·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MBC·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필자 정덕현은 대중문화평론가로 기고·방송·강연을 통해 대중문화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MBC·JTBC 시청자위원을 역임했고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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