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사람, 그리고 세계문화유산』
멕시코시티 아즈텍제국 유적 - 대항해시대 아픈 역사를 반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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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유럽인에게 ‘신대륙’은 단순한 미지의 공간이 아니었다. 신대륙은 막대한 부와 권력을 약속하는 신천지로 떠올랐다. 특히 스페인은 카리브해와 중앙아메리카 일대에서 금·은은 물론 토지와 원주민 노동력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팽창 정책을 추구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정복자들(Conquistadors)이 대서양을 건넜다. 이들 중 가장 극적인 성공을 거둔 인물은 바로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였다. 그는 불과 수백 명의 병력으로 당시 중남미 최강이던 아즈텍제국을 무너뜨렸다. 그 결과는 정복전 승패를 넘어 세계사의 흐름 자체를 바꿔 놓았다.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멕시코시티의 아즈텍제국 유적지는 이를 실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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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엽 코르테스 일행이 멕시코 고원에 도착했을 무렵 중앙아메리카는 이미 고도의 문명을 꽃피우고 있었다. 여러 세기에 걸쳐 발전한 도시문명과 정치체제가 존재했는데, 그 중심에 아즈텍제국이 있었다. 멕시코 북부의 반(半)유목 집단이던 아즈텍인은 13세기 무렵 멕시코 분지로 이동해 정착했다. 그들은 1325년 텍스코코 호수 중앙의 섬 일대에 수도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을 건설했다. 전설에 따르면 이들은 선인장 위에 앉아 뱀을 물고 있는 독수리를 발견한 장소에 도시를 세웠다. 이 상징은 현재 멕시코 국기에 새겨져 있다.
처음에는 약체였던 아즈텍인은 군사력 증강과 동맹정책을 통해 빠르게 세력을 키웠다. 15세기 중반에 이르면 주변 도시국가와 부족들을 정복하거나 조공체제 아래 편입시키며 멕시코 중앙고원 대부분을 지배했다. 피지배 부족민은 자치(自治)의 대가로 막대한 공물과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했다.
이러한 시스템하에서 아즈텍인은 엄청난 부(富)를 축적했다. 바로 그 중심에 수도 테노치티틀란이 있었다. 이곳은 약 2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당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거대 도시였다. 오늘날 멕시코시티 심장부에 해당하는 이곳은 당시 거대한 내륙 호수였던 텍스코코호 중앙의 섬들을 발판 삼아 건설됐다. 14세기 중엽 이곳에 정착한 아즈텍인들은 이후 인공섬과 제방을 축조하며 도시를 확장했다. 도시에는 운하와 제방, 교량, 시장, 그리고 신전 등이 정교하게 배치됐다.
누가 뭐래도 테노치티틀란의 핵심은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였다. 이는 도시 중앙 성역 지구 계단식 피라미드 대신전으로 종교·정치·군사 권력이 집중된 장소였다. 약 50~60m 높이의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태양신과 농경신을 위한 두 개의 신전이 쌍둥이 구조로 배치돼 있었다. 템플로 마요르 인근에는 황제 몬테수마 2세의 거대한 궁전도 자리하고 있었다. 스페인 기록에 따르면 이 궁전은 수백 개의 방과 정원, 연못, 회의실, 무기고를 갖춘 복합 건축군이었다.
아즈텍 사회는 군사적 성격이 매우 강했다. 귀족의 권위는 전공(戰功)과 포로 획득에 따라 결정됐고, 전쟁은 정치와 종교의 핵심 요소였다. 특히 이들의 종교는 태양신과 전쟁신에 대한 인신공양(人身供養) 의식을 중심으로 작동했다. 아즈텍인들은 태양이 계속 움직이기 위해서는 인간의 피와 심장이 필요하다고 믿었기에 대규모 제사와 희생의식을 반복적으로 시행했다. 이는 제국 내부 결속에는 도움이 됐을지 모르나 피지배 부족들에게는 극심한 공포와 반감을 초래했다. 코르테스가 훗날 원주민 동맹세력의 지원을 획득할 수 있던 배경에도 바로 이런 원한 구조가 잠재돼 있었다.
코르테스는 1485년 스페인 남서부 메데인의 몰락한 하급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법률가를 꿈꾸던 그는 당시 유럽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신대륙 모험에 매료돼 1504년 대서양을 건넜다. 정착한 쿠바에서 코르테스는 나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권력자들의 눈에 들었다. 1518년 쿠바 총독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멕시코 본토 탐사를 위해 코르테스를 원정대장으로 임명했다. 이를 자신의 야망을 이룰 기회로 판단한 코르테스는 1519년 2월 11척의 선박에 약 600명의 병력을 싣고 쿠바를 떠났다.
코르테스 원정대는 유카탄반도 해안에 도착한 뒤 현지 부족들과 접촉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뛰어난 언어 능력을 가진 원주민 여성 말린체의 도움으로 아즈텍제국의 정치 상황과 부족 간 갈등을 간파할 수 있었다. 아즈텍제국의 지배에 시달리고 있던 여러 부족은 코르테스 일행을 잠재적 해방자로 여겼다. 원주민 부족과 맺은 반아즈텍 동맹 덕분에 코르테스는 수천 명의 병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아즈텍제국의 황제는 몬테수마 2세였다. 처음에 그는 협상과 선물 공여로 코르테스를 돌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코르테스는 내륙으로 진군을 계속했고, 1519년 11월 마침내 제국의 심장인 테노치티틀란 입구에 도착했다. 코르테스 일행은 멀리서 보이는 도시의 웅장한 규모와 활력 있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자칫 잘못 진입했다가는 거대 도시 한복판에서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코르테스는 황제 몬테수마를 인질로 삼아 도시를 통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곧 원주민의 반발을 초래했다. 거의 전멸할 지경까지 이르렀던 코르테스 일행을 살린 것은 유럽에서 이들과 함께 온 천연두 병균이었다. 천연두는 면역체계가 없던 원주민 사회를 급속히 파괴했다. 1520년 말부터 테노치티틀란에서도 대규모 감염이 발생해 수많은 주민과 전사들이 죽었다. 이러한 혼란 상황을 알아챈 코르테스는 1521년 여름, 육지와 호수에서 동시에 테노치티틀란을 포위하는 대규모 공성전을 전개했다. 아즈텍인들의 맹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전세는 점차 코르테스 진영 쪽으로 기울었다. 마침내 1521년 8월 중순경 마지막 황제마저 사로잡히면서 테노치티틀란은 함락됐고, 아즈텍제국은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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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테노치티틀란은 1970년대 화려하게 부활했다. 1978년 템플로 마요르 발굴은 세계 고고학계를 놀라게 했다. 지하 전선 공사 도중 발견된 코욜샤우키 돌 원반(圓盤) 출토를 계기로 대규모 발굴이 시작됐고, 템플로 마요르 유적과 함께 수천 점의 아즈텍 유물이 출토됐다. 이를 통해 멕시코시티의 중심부가 단순히 스페인 식민도시가 아니라 번성했던 고대도시의 터전이었음이 밝혀졌다.
1521년 코르테스의 테노치티틀란 점령 이후 스페인인들은 기존 도시를 파괴하고 그 위에 식민도시 멕시코시티를 건설했다. 하지만 그 흔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전쟁은 도시를 파괴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삶의 질서를 탄생시켰다. 현재 멕시코시티 중심부에 있는 아즈텍 유적과 식민지 시대 건축물은 바로 그 충돌과 융합의 증거물인 셈이다. 코르테스의 무용담이 오늘날까지도 연구 및 재해석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멕시코시티 방문객들은 소칼로 광장에서 메트로폴리탄 대성당과 함께 아즈텍 신전 유적을 동시에 관람할 수 있다. 멸망의 ‘아픈’ 역사 속에서 정복과 재건, 파괴와 계승이 동시에 이뤄진 공간임을 실감할 수 있다. 사진=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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