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해군교육사령부 교관의 날 행사 때 영화 ‘하와이 연가’(2024) 상영 및 감독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는 1902년 인천 제물포항에서 떠난 102명의 조선인이 사탕수수농장 노동자로 낯선 태평양의 섬에 첫발을 내디디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들이 피워 낸 작은 불씨가 오늘날 재미 한인사회의 기원이 됐다.
올해로 123년, 우리나라와 하와이의 인연은 한 세기를 훌쩍 넘겼다. 이민 1세대가 일군 한인 공동체는 그 후손들을 통해 미국 사회 곳곳으로 뻗어 나갔고, 오늘날 그 연결의 끈은 군사동맹의 언어로 더욱 단단히 묶여 있다. 대한민국 해군의 순항훈련전단은 매년 원양을 항해하는데, 태평양 횡단 시 진주만이 있는 하와이가 가장 중요한 기항지다. 함교에서 진주만의 수면을 내려다볼 때 우리는 단순한 방문객이 아니다. 1941년 그곳에서 산화한 미국 수병들의 희생 위에 오늘의 한미동맹이 서 있음을 되새기는 순례자다.
하와이는 세계 최대 다국적 해상훈련인 환태평양훈련(RIMPAC·림팩)의 본거지다. 격년으로 개최되는 림팩에 해군은 1990년부터 꾸준히 참가해 왔다. 수상함·잠수함·항공전력을 파견해 다양한 연합작전 능력을 갈고닦는 이 훈련은 해군의 위상을 확인하는 장이기도 하다. 훈련기간 미 해군과 전술을 토의하고 항구에서 서로의 갑판을 오가며 우의를 다지는 과정은 동맹의 실질적 내용을 채우는 일이다. 조약서에 적힌 문구가 아니라 바다 위에서 함께 땀 흘린 기억이 동맹을 살아 있게 만든다.
영화 중 하와이 한인 후손들이 6·25 참전용사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참전용사분들 앞에서 그들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Thank you for your service.” 123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낯선 땅에 뿌리내린 이민자의 후손이 그 땅의 군인에게 건네는 말로 담을 수 없는 감사였다.
1950년 6월 대한민국이 붕괴 직전에 놓였을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달려온 젊은이들 중 하와이에 뿌리를 둔 한국계 미국인도 있었다. 1세대 이민자들의 핏줄이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조국을 구하는 전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두 나라의 인연은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나라를 지켜 낸 이들을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군인으로서 그 정신을 이어받는 다짐이기도 하다. 해군으로서 지난 순항훈련 중 함교에서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할 때 미 해군 장병 및 참전용사분과 국제적 교류를 하면서 그 무게감을 체감했다.
우리가 항해하는 태평양은 단순한 수역이 아니다. 123년 전 제물포항을 떠난 조선인이 목숨을 걸고 건넌 뒤 동맹국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려 지켜 냈고, 지금 우리가 책임지고 있는 바다다. 태평양은 넓지만 멀게 느껴지지 않는 건 아마도 그 인연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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