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새롭게 창조된다

입력 2026. 06. 30   15:15
업데이트 2026. 06. 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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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의학이 발견한 위대한 생물세포 정화시스템의 이름은 ‘오토파지(Autophagy)’로, 우리말로는 ‘자가포식(自家捕食)’이라고 한다. ‘스스로(Auto)’ ‘먹어 치운다(Phagy)’는 뜻의 이 기전은 척박한 기근 속에서 인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눈부시고 완벽한 재활용 프로그램인 셈이다. 이러한 ‘오토파지’는 벨기에 생물학자 크리스티앙 드뒤브에 의해 1962년 명명됐다. 이후 일본의 생물학자인 오스미 요시노리에 의해 자가소화작용의 작용기작과 중요성이 설명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기에 이른다.

오토파지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 세포들은 매일 숨 쉬고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쓰레기를 배출한다. 임무를 다하고 수명이 끝난 고장 난 단백질, 활성산소의 공격을 받아 찌그러진 미토콘드리아, 사멸되지 않은 채 염증물질만 뿜어내는 이른바 ‘노화세포’들이 세포질 안에서 서서히 쌓여 간다.

만약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먹고 있다면 우리의 세포들은 밖에서 밀려오는 엄청난 양의 포도당과 영양소를 처리하느라 이 내부 쓰레기들을 치울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비유하자면 쓰레기차가 오지 않는 도시에 악취와 오물로 뒤덮여 썩어 가듯이 세포 안에 고장 난 염증세포가 가득 차면 결국 세포는 돌연변이의 일종인 암(癌), 치매 같은 퇴행성 질환의 온상이 되고 만다.

반대로 우리가 음식 섭취를 중단하고 16시간 이상의 공복상태가 경과하면 인체에선 단순히 지방을 태우는 것 이상의 엄청난 생리학적 기적이 일어난다. 수십 개조의 세포가 일제히 스스로 대대적인 ‘대청소’를 시작하는 것이다. 즉 일정시간 단식하면 뇌는 외부에서 땔감이 들어오지 않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세포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당장 에너지가 부족하다! 세포 안에 굴러다니는 쓸모없는 단백질 찌꺼기들과 고장 난 미토콘드리아를 모조리 분해해 연료로 태우고, 남은 아미노산으로는 새롭고 튼튼한 세포를 조합하라!’는 자가포식의 메커니즘이 기적처럼 일어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의 신체에만 국한되겠는가? 우리의 삶도 비우기보다 채우려고만 하기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말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말을 안 해서보다 말을 해 후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끊임없이 내뱉는 말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과 상처를 불러일으키는가? 세포 내 자가포식과 같이 때로는 묵언을 하면서 불필요한 말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생각의 영역에서도 너무 많은 생각, 잡념은 산란한 마음을 일으킨다.

우리는 현재보다 과거의 생각들로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곤 한다. 이런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명상의 영역에선 사마타(그침)와 위파사나(관찰)를 수행한다. 즉 ‘생각의 그침’과 ‘관찰’로 세포 내 자가포식과 같이 의식의 부정적 요소를 제거하고 고요한 마음의 상태로 들어가도록 인도한다.

요컨대 우리는 단식하면서 신체적 정화를, 침묵하면서 말의 정화를, 생각을 그침(명상)으로써 마음의 정화를 창조해 낼 수 있다. 고요한 비움 속에서 내 안의 위대한 의사는 메스를 들고 병든 세포를 도려내며 생명을 재창조한다. 굶주림은 고통이 아니다. 침묵은 단순히 말을 못해서가 아니다. 생각의 그침은 사유의 힘을 잃게 함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맑고 눈부신 지혜의 삶을 열기 위한 거룩한 자기정화의 의식인 것이다. 비워야 새롭게 창조된다.

정연호 중령 공군본부 군종실 법사
정연호 중령 공군본부 군종실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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