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돌아간다.” 지금보다 고달프고 복무기간도 길었던 시절, 옛 병사들은 이 말을 위안 삼아 전역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다 보면 몇 달 차이도 안 나는 선임이 “그날이 오냐”는 놀림조 말투로 속을 뒤집기도 했다. 당시 병사들에게 군 생활은 청춘의 낭비로 여겨졌던 것 같다. 운 좋게 기술을 배우거나 값진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흔치는 않았다. 어제와 같은 오늘과 내일이 그저 무탈하게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옛날보다 기간도 짧고 편해졌다지만 여전히 인생의 공백처럼 느껴지는 게 군 생활이다. 빠른 변화 속에 자칫 도태되기 쉬운 지금은 18개월(육군 기준)도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는 금쪽같은 시간이다. 여기에다 군 가산점 논란에서 보듯이 젠더 갈등까지 더해졌다. ‘병장 봉급 200만 원’ 정도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어떻게든 군 복무 혜택이나 이점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다.
그 대책으로 복무기간 단축이나 심지어 여성 징병제도 거론되지만, 현실적 방안은 아니다. 병력자원 급감과 지정학적 안보 불안은 오히려 기간 연장 필요성을 제기하는 판이다.
실제로 대만은 군 복무를 4개월에서 1년으로 늘렸다. 하지만 기간 연장은 기간 단축만큼이나 격렬한 반발에 부딪힐 게 뻔하다. 여성 징병제도 이스라엘과 북유럽 등의 사례가 있긴 하지만 한국적 맥락에서 현실성이 낮기는 마찬가지다.
남은 해결책은 군 복무를 손해가 아닌 이익으로 여기게끔 하는 근본적 발상의 전환이다. 만약 복무기간을 개인 스펙과 경력 쌓기로 활용 가능하고, 이를 향후 취업과도 연결시킬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각자 임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한다는 전제하에서지만, 군은 더 이상 허송세월의 공간이 아니라 성장의 기회로 일변할 것이다. 이미 군은 병사들의 자유로운 일과시간과 자기계발 여건을 보장하고 있지만 더 과감히 확대·개선할 필요가 있다.
다만 기술군 성격이 강한 해·공군과 달리 육군이나 해병대는 특성상 한계가 있다. 민간에서 스펙이나 경력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단순 경계임무나 인력집약형 작전 비중이 높기 때문에 군 복무와 취업 간 연계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육군이 ‘아미타이거(Army Tiger)’로 진화하고 전문 보직을 확대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기대할 만하다. ‘50만 드론전사’ 양병론도 스마트 강군에 한몫할 것이다.
정책이 성공하고 인식이 바뀌면 부사관을 중심으로 초급간부 확보에도 긍정적 효과가 예상된다. 국방 전반이 고도화되고 있는 가운데 병사보다 오래 복무하고 전문성을 갖춘 부사관의 경쟁력이 전투력은 물론 취업 연계 측면에서 높을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언급한 ‘선택적 모병제’도 이와 맥이 닿는다. 이 제도는 입영 대상자가 단기 징집병과 장기 지원병(기술집약형 부사관) 중 원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일각에선 빈부 격차에 따른 선택과 계층 간 위화감을 우려하지만 전례 없이 거대한 사회 변화를 감안해 보다 크게 볼 필요가 있다.
일시적으론 취업이 어려운 취약계층 청년이 울며 겨자 먹기로 장기 지원병을 택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결과 군에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고 3~4년 뒤 당당하게 사회에 진출할 수 있다면 충분히 해 볼 가치가 있다. 이렇게 ‘군 복무=능력자’ 인식이 자리 잡는다면 장기 지원병은 병역과 취업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좋은 선택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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